약 4년 전 여러 가지 이유로 폭발적인 양적 성장을 기록한 국내 자전거 시장이 올해 2013년 자전거인구 천만 명 시대를 넘어섰다는 소식을 전했다. 천만 명이라는 수가 무엇을 기준으로, 어떤 근거로, 어떻게 산출된 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외형적으로만 보면 아직도 자전거 시장은 무척이나 화려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막상 실상을 들여다보면 양적인 성장보다 더 중요한 질적인 성장은 오히려 제자리걸음 혹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이미 양적인 시장은 커질 대로 커진 상태이지만 안타깝게도 시장과 문화 모두 양적인 성장에 어울리지 못하는 수준인 셈이다. 라이드매거진이 2013년 자전거 시장을 정리해봤다.
     

국내의 자전거시장 동향이 ‘정권 교체’의 영향을 받는다고 말하면 혹자는 웃을지도 모르지만, 국내 자전거 시장이 지난 정권의 4대강 사업과 맞물린 자전거 저변확대 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록 부실시공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지만, 4대강 자전거 길의 준공으로 레저스포츠로서 자전거의 입지가 커진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국내 자전거시장은 세계적인 녹색 이동수단의 트렌드와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 세계 자전거시장에 전기자전거의 강풍이 불고 있지만, 이를 국내에서는 거의 느끼기 어렵다. 작년 출시된 전기자전거 모델과 올해 출시된 모델 사이에 큰 변화가 없고, 딱히 유행이라 할 만한 것도 없다.
 

세계적으로 전기자전거의 열풍이 불고 있지만, 국내의 자전거 숍에서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전기자전거의 종류는 많지 않다.
삼천리 팬텀 미니 전기자전거(위)와 알톤 유니크20 전기자전거(아래)

자전거 시장의 트렌드를 이야기하기 전 미리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국내의 생활자전거 시장과 레저•스포츠용 자전거 시장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전거의 교통 분담률이 높고 이용 인구가 많은 유럽에서는 많은 자전거 브랜드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유행의 변화가 빠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삼천리와 알톤을 위시한 몇몇 메이커들의 제품이 국내 자전거 판매량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새로운 제품을 내놓지 않으면, 국내 자전거 시장의 트렌드도 큰 변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니아들을 위한 레저•스포츠용 자전거 시장은 다르다. 레저•스포츠용 자전거는 무엇보다 타는 사람이 재미를 느끼고 만족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마니아들은 브랜드 이미지와 성능에 만족한다면 바퀴 하나에 몇 백만 원이 넘는 고가의 제품도 구입한다. 때문에 마니아를 대상으로 한 자전거 모델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출시된 신제품이 발 빠르게 국내에도 수입되어 유행을 주도한다.



하이브리드 자전거
 

삼천리 레스포 바운스21(위)과 알톤 로드마스터 R21(아래).
누가 유행을 선도했고 편승했는지는 소비자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하이브리드 자전거가 강세를 보였다. 하이브리드 자전거도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국내에서 판매되는 모델은 스포티한 로드바이크의 주행감에 MTB의 편안한 포지션을 더한 자전거로 보면 된다.

하이브리드 자전거는 이제 ‘최신 유행’이 아닌 ‘보편적인’ 자전거가 되었다. 거리 어디에서나 하이브리드 자전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 때문에 각 메이커는 다양한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삼천리 자전거만 살펴봐도 알루미늄 바퀴 표면에 컬러 피막을 입히거나, 자전거 프레임을 번쩍거리는 크롬으로 도금하는 등 보다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적용하기 시도했다. 1, 2년 전의 삼천리 자전거와 비교하면 환골탈태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다.

그러나 하이브리드 자전거 자체가 이미 충분히 공급된 시점이기 때문에 내년에도 하이브리드 자전거가 유행할지는 의문이다. 하이브리드 자전거의 ‘어중간함’에 질린 소비자들은 로드바이크를 비롯하여 조금씩 본격적인 스포츠용 자전거로 눈을 돌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큰 바퀴와 작은 바퀴의 대결, 대세는 중간 사이즈?
 

새로운 자전거를 알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프로’가 사용하는 것이다.
MTB 크로스컨트리 세계최강팀 메리다의 팀 바이크가 27.5인치 규격이라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가 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스포츠용 자전거 시장의 절반 이상을 MTB가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MTB에는 대부분 26인치 바퀴가 장착되어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보다 큰 바퀴가 오프로드 주행에 유리하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고, 현재는 29인치가 유행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29인치 MTB가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험로 주행성능만 보면 26인치를 능가하지만, 휠의 크기가 커진 만큼 무게가 무겁고 키가 작은 라이더에게 맞는 29인치 MTB 모델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이 가운데 27.5라는 26인치와 29인치의 중간 사이즈에 해당되는 모델이 등장해 국내에도 출시되었다. 27.5인치 MTB는 처음에는 29인치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자리 잡지 못할 것이라 예상되었으나, 현재 빠르게 정착중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들이 27.5인치 휠의 MTB를 타고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으며,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람의 체형에도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자전거 시장의 다각화 경향
 

BMX나 어번 MTB들은 ‘뛰어오르고, 날고, 뛰어내리기’ 위한 재미를 추구하는 자전거다.
이러한 자전거가 거리에서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국내 자전거 시장은 생활자전거와 MTB, 로드바이크로 삼등분 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픽시와 하이브리드 자전거의 등장을 필두로 BMX, 어번 등의 개성 있는 다양한 자전거들을 거리에서 보다 자주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자전거를 이동수단이 아닌 ‘재미’를 추구하는 아이템으로 여기는 젊은 층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로드바이크 시장을 살펴보면 최신형 카본 자전거와 레트로 스타일의 크롬몰리 스틸 자전거가 함께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일부 마니아들은 클래식 자전거를 복원하여 타기도 한다. 로드바이크 시장은 MTB 시장이 눈에 띄게 성장 둔화된 것과 달리 아직은 성장세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MTB 쪽에서는 국내 MTB 시장 대부분을 장악하던 하드테일 모델 사이로 풀서스펜션 자전거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국내 MTB 라이더 대부분이 순위를 다투는 레이스에 나가기보다는 편하게 즐기는 라이딩을 추구한다. 이 같은 경향을 생각해볼 때 향후 보다 편안하고 재미있게 오프로드 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풀서스펜션 MTB의 수요가 늘어날 것을 짐작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더 나은 2014년 시장을 기대하며

글의 초반에 언급했듯 2013년의 국내 자전거 시장은 이미 크게 성장해버린 양적 시장에 맞춘 질적인 성장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과도기적 상태라 할 수 있다. 이 정도 양적인 성장이 이미 이루어진 시장이라면 해당 관련 문화도, 기형적인 장르의 쏠림 현상도 넘어서며 질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것이 맞다. 2013년의 국내 자전거 시장은 이런 과정을 넘어서기 위한 준비 상태이길 바라며 2014년은 더 많은 내적 성장을 이룩하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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