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카티 스트리트파이터 848
오죽하면 모델명이 스트리트파이터일까? 모르는 사람은 스트리트파이터가 장르가 아니라 모델명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에 소개될 때도 이 장르를 대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이미지를 확보해 온 모델이다. 두카티 전통의 L 트윈 엔진으로 트랙션 필링이 확실한 고동감이 특징이며 기계식 강제 개폐 밸브인 데스모드로믹 엔진을 가졌다. 배기량은 849cc이며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132마력을 발휘하는 매서운 바이크다.
차량중량은 199킬로그램으로 가벼운 수준이며 처음 등장했던 스트리트파이터 1100에 비해 출력 특성이 다듬어졌고 다루기도 쉬워져 사용자 커버 범위도 훨씬 넓어졌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디자인이 스트리트파이터의 존재 이유 중 하나다. 스트리트 파이터 특유의 거칠고 투박한 형태조차도 두카티의 손을 거치면 여성스럽고도 매혹적으로 바뀐다는 사실이 가치 높다. 아무 이유 없이 쇼윈도에 세워놔도 훌륭한 장식품이 될 만한 진짜 '모델'이다.
야마하 FZ1-N
민망할 정도로 오랜 기간을 양산해 온 FZ1-N은 현재 야마하가 연일 광고하는 크로스플레인 크랭크샤프트를 쓰기 이전의 엔진을 실었다. 평범한 4기통 필링을 가진 매끄러운 엔진이지만 슈퍼바이크인 YZF-R1엔진을 디튠했다고 하나 고회전의 특성이 누그러들지 않아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해왔다. 하지만 같은 섀시와 엔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스트리트 파이터로 인정할 수 있다. 다만 FZ1-N이 등장했던 당시에는 스트리트 파이터가 장르로 고착되기 전이기 때문에 형태는 기본적으로 다소 공격적인 네이키드 바이크 정도에 그친다.
배기량은 998cc이며 최고출력 150마력에 221킬로그램의 차량중량을 자랑한다. 무게는 무겁지만 출력이 높은 편이라 고회전으로 돌릴수록 화끈하게 속도가 올라붙는다. S버전도 있는데 이는 투어링 모터사이클로도 손색이 없어 전 세계적으로 애용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어왔지만 이제는 신형 엔진을 장착한 스트리트 파이터가 나와야 판매실적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혼다 CB1000R
우리나라에서 한 번도 볼 수 없던 비운의 CB1000R은 유럽 공략형 모델로 슈퍼바이크 CBR1000RR엔진을 사용했다.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갖췄으며 전통적인 스트리트 파이터의 의미는 있지만 외향은 고성능 네이키드 바이크다. 출력특성은 유순한 네이키드 바이크에 가까운데, 여타 브랜드 스트리트 파이터의 평균 수준인 125마력에 그친다. 이 모델도 당분간 풀 체인지가 되기는 어렵지만 모태가 되는 CBR1000RR이 엔진에 큰 변화를 갖는 시점이 온다면 새롭게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 혼다 다운 모범생 특성이 오히려 스트리트 파이터의 거친 이미지와 상반되므로 ‘미래지향 디자인’의 네이키드 바이크로 이미지를 굳히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
스즈키 B-KING
이 모델의 골격은 그 이름도 유명한 GSX-1300R 하야부사다. 초고속 스포츠 투어러의 대명사인 하야부사의 풀 페어링을 벗긴 B-KING은 'King of Naked'라는 대범한 명제를 들고 나온 스즈키의 간판 스타였다. 하지만 판매 실적은 좋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히 '못 생겨서'다. 가격적인 메리트도 나쁘지 않았지만 외모에 대해 혹평을 아끼지 않은 해외 매체는 물론 심지어 B-KING 오너들도 만족을 못하는 눈치다.
대포 같은 이미지의 부담스러운 머플러와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가진 메인 프레임, 그리고 그 위에 올려진 대형 연료탱크는 시트에 앉은 이로 하여금 압도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물론 이런 점을 매력으로 느끼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181마력을 발휘하는 1,340cc 4기통 엔진은 직결감 좋은 미션과 맞물려 기립박수 칠만한 풍부한 토크를 발휘한다. 그것도 출발하는 순간부터 온 몸으로 느낄 만큼 강력하다. 중량은 240킬로그램이나 되지만 토크가 워낙 두터워 출력 부족을 느낄 일 따위는 전혀 없다. 접근하기 어려운 점이 오히려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 외로 단순한 이유로 태어난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장르는 실상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이륜자동차는 반드시 넘어질 수밖에 없는 특성을 가졌다. 그렇기 때문에 넘어지는 상황을 두려워해서는 본연의 즐거움을 만끽하기가 어려워진다. 넘어지지 않고서 즐기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넘어질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안전장비를 하고 컨트롤 능력을 키우는 재미로 타는 것이 훨씬 보람되고 즐겁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스트리트 파이터가 가지는 속 의미가 멋진 슈퍼바이크를 보는 재미로 ‘예쁘게’타 온 사람들에게 자극됐으면 한다. 깨끗하게 닦고 관리하는 즐거움도 좋지만 때로는 터프하게 몰아붙이며 탈 수 있는 소탈한 장르가 바로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것을 알고 탔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트리트 파이터를 만든 옛날의 많은 서민 라이더들이 슈퍼바이크를 그런 식으로 개조해 즐겼던 것처럼 말이다.
어쩔 수 없이 그랬던 사람들도 있지만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이미지가 맘에 들어서 그런 스타일을 흉내 내는 사람도 있었고, 지금 우리가 흔히 설명하듯 기존의 슈퍼바이크 성능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편안한 포지션으로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는 메리트 때문에 개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필요에 의해 점점 발전해 나간 장르가 지금의 S1000R과 같은 스트리트 파이터다.
S1000R의 이미지가 처음 공개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기도 했다. S1000RR의 디자인을 약간 덜어내고 파이프 핸들을 꽂았을 뿐 달라진 것이 없다며 성의 없는 뉴 모델이라는 푸념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틀렸다. 스트리트 파이터의 원래 의미가 그런 것이라는 배경 지식이 없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한 것이다.
사실상 지금에 와서 모든 모터사이클을 ‘슈퍼바이크’, ‘네이키드 바이크’, ‘듀얼퍼포즈’ 등으로 확연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트리트 파이터 또한 별개의 장르로 봐도 될 만하다. 그리고 이미 많은 모터사이클 메이커가 그에 상응하는 카테고리의 뉴 모델을 만들어오고 있다. 위에 소개한 메이커별 대표 스트리트 파이터들이 그 증거다.
앞으로는 더 많은 모터사이클 메이커가 이 경쟁에 뛰어들 것이다. 한 때 슈퍼바이크 경쟁이 치열했던 것처럼,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장르 또한 비슷한 흐름을 탈 가능성이 충분하다. 특히 슈퍼바이크의 섀시와 엔진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이 큰 이유가 될 수 있다. 기함인 슈퍼바이크가 풀 체인지 됨과 동시에 실용성 높은 스트리트 파이터로의 재구성 가능성도 함께 갖게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선수보다는 일반 도로에서 짜릿한 라이딩을 충분히 즐기고 싶은 일반 소비자들에게 스트리트 파이터의 존재는 더욱 고맙다.
바야흐로 실용성의 시대다. 버블경제가 만연했던 시대에 슈퍼바이크의 발전은 눈부셨다. 지금은 그 때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편안하게 고성능을 맛보고 싶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스트리트파이터는 그런 사람들에게 아주 훌륭한 취미성 도구로 자리 잡아 갈 것이다. 바라건대 이 독특한 장르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으면 한다.
제공 : 임성진 기자 / 라이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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