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바이크란 모터사이클 중에서도 최고 출력이나 건조 중량 따위의 수치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종류다. 태생이 제한된 공간, 이를테면 레이스 트랙과 같은 경기장에서 속도와 컨트롤을 다투는 일이 최우선인 탓이다. 존재 이유부터 숙명적으로 철두철미하고 계산적이며 예민한 특성을 가진다.

 

 

그러나 최근 들어 양상이 바뀌고 있다. 물론 레이스에서 1위, 2위, 3위 등 순위가 중요하듯 출력이 얼마나 높은지, 무게가 얼마나 가벼운지 등에 대한 조건이 기본 되는 것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레이서가 아닌 일반 소비자의 입장에서 수치에 현혹되는 일은 확실히 이전보다 적어진 양상이다.

 

 

이는 예전과 같이 파워가 해당 모델의 가치를 말해주는 듯한 위시의 시대가 지나고, 정작 운전자 본인이 즐거워야 한다는 한 발걸음 나아간 인식이 대중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양산 슈퍼바이크가 최고출력이 180마력, 혹은 200마력이 넘어서는 시대가 되자, 한도 끝도 없이 파워에 중독되어 갈피를 못 잡을 것 같은 소비자들이 생각을 고쳐먹었기 때문이다.

 

 

이런 소비 양상을 예견한 브랜드는 일찍이 레이스 기술을 응용한 다양한 전자 장비를 즉각 투입해 마케팅에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성난 황소같이 힘이 넘치는 괴물 같은 장난감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고삐와 채찍이 생긴 셈인데 이를 반기지 않을 리 없다. 이런 양상은 순식간에 퍼져 이제는 이렇다 할 전자 장비 없이는 모델 설명이 어려울 정도로 각종 보조 장치들이 진화해 오고 있다.

 

 

감성 모터사이클링을 중시하는 야마하도 마찬가지로 대열에 합류했다. 슈퍼바이크 시리즈인 YZF 라인업에 YCC-I(야마하 칩 컨트롤 인테이크), YCC-T(야마하 칩 컨트롤 스로틀)과 같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에 의존하는 시스템을 발 빠르게 구축하는 것이 시작이었다. YZF-R6에 첫 적용된 이 시스템은 호평을 받아 곧 바로 기함인 YZF-R1에도 이식되었다. 곧이어 다단계로 조절 가능한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도 접목되면서 비로소 넘치는 파워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야마하는 대세를 따라 단순히 전자장비에 의존하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병렬 4기통 엔진을 사용해 온 YZF-R1은 두 개씩 짝지어 움직이는 피스톤이 만들어 내는 출력 특성에 원초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내연 기관 특성상 모든 폭발력을 운동에너지로 고스란히 활용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부분을 줄여 파워의 효율을 높이고자 하는데 착안했다.

 

 

단지 레이스 트랙이 아니라 기분 좋은 투어링, 스릴 넘치는 고갯길 와인딩, 심지어 출퇴근 길에서도 스로틀을 이용해 모터사이클이라는 기계와 긴밀하게 교감해야하는 것은 숙명적이다. 단지 무게를 가볍게 하고 출력을 높이거나 맵핑을 고르게 다듬는 것 정도로는 원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에 대한 야마하의 솔루션은 크로스 플레인 크랭크 샤프트 엔진이다. 엔진이 멈춰 있는 상태로 상상하자면, 인접한 피스톤의 1번과 2번, 3번과 4번 크랭크 핀 위치를 각각 90도 돌려놓은 형상과 같다. 이것을 1, 3, 2, 4 점화 순서로 연소 시키면 270도, 180도, 90도, 180도의 부등 간격 폭발이 시작된다. 이런 방법으로 크랭크 주위에 생기는 불필요한 관성 토크가 제거 된 연소 토크만을 발생시킬 수 있다.

 

 

말하자면 엔진 동력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고 순도의 파워만을 꺼내어 쓰는 셈이다. 이것이 계기반 타코미터와 리어 타이어가 1대 1로 연결 된 것 같은 긴밀한 연결감을 만들어 낸다. 운전자는 스로틀을 열 때 뒤쪽 타이어에 걸리는 트랙션 상태를 차체를 통해 곧이곧대로 피드백 받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다양한 상황에서 조종성을 극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된다.

 

 

엔진은 997cc 수랭 4스트로크 DOHC 4밸브다. 기본적으로 타사 슈퍼바이크와 마찬가지로 경량, 콤팩트 화에 중점을 두고 설계된 것은 당연하다. 실린더 바디는 방열성과 강성 밸런스를 확보 할 수 있는 세라믹 복합 도금 실린더로 제작됐다. 또한 폐쇄 갑판 구조, 짧은 실린더, 단조 피스톤, 파단 분할 식(FS) 커넥팅 로드 등을 이용해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난 엔진을 추구했다.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야마하의 양산 리터 슈퍼 스포츠 엔진 중에서 최대의 실린더 구경 78밀리미터를 설계하고 12.7:1의 높은 압축비를 실현했다. 효과적인 배기 맥동을 얻기 위해 1번과 4번, 2번과 3번 배기 파이프를 집합시킨 4-2-1-2 타입으로 마지막 부분은 짧은 듀얼 사일렌서로 마무리 했다. 그 결과로 완성된 배기음은 MotoGP 챔피언 머신인 YZR-M1과 동일한 음색, 부등 간격 폭발 특유의 저주파와 고주파가 혼합 된 야마하만의 강력한 사운드를 연주한다.

 

 

모터사이클은 기본적으로 아날로그 감각을 이용한다. 그러나 야마하는 아날로그에서 달성 할 수없는 영역을 전자 제어에 의해 보완하기 위해 TCS(트랙션 컨트롤 시스템)를 추가했다. 주행 속도를 ECU로 상시 연산하여 전/후륜의 차속 차이에서 점화시기, 연료 분사량, 스로틀 개도를 통합 제어함으로써 최적의 트랙션을 후륜에 전달한다는 시스템이다.

 

 

TCS 덕분에 크로스 플레인 크랭크 샤프트 엔진이 낳는 트랙션 특성을 더 안정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 스로틀을 대담하게 연 경우에도 TCS가 후륜의 공전을 방지하고 적절한 트랙션을 후륜에 계속 보내준다. 그 작동 과정은 민첩하지만 운전자에게 긴장과 불안 등을 느끼게 하지 않는 것이 기술력의 차이다. 또한 취향에 따라 7단계의 제어 개입 정도를 선택할 수 있으며 OFF로 설정할 수도 있다.

 

 

YZF-R1은 이미 오랜 숙성도를 갖고 있는 야마하 전매특허 YCC-T(전자제어 스로틀), YCC-I(전자식 흡기제어)를 바탕으로 보조 인젝터가 있는 퓨엘 인젝션을 채용한다. 배기 보조 장치 EXUP은 1998년 YZF-R1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사용한 저 회전 토크 보정 장비로 신형에서도 여전히 채용하고 있다. YCC-I는 전자 제어에 의해 판넬 길이를 2 단계로 전환해 저 회전 영역에서 고 회전 영역까지 전 영역에 걸쳐 고른 출력 특성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상황에 따라 엔진 특성을 3가지 모드로 선택할 수 있는 D-MODE를 탑재한 것도 특징이다. 일반적인 STD(스탠다드) 모드, 특유의 날카로운 스로틀 응답성을 얻을 수 있는 A 모드, 출력을 낮춰 취급하기 쉽도록 하는 B모드가 준비돼 있다. 특히 A모드로 선택하면 슈퍼바이크 특유의 파워풀하면서도 짜릿한 쾌감을 만끽할 수 있다. 세부 감도를 설정할 수 있는 TCS 커스텀 모드를 연동하면 노면, 날씨, 라이더의 컨디션 등 다양한 주행 조건에 맞게 총 21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이로써 라이더와 기계와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고 있다.

 

 

위화감을 주지 않는 중립적 핸들링 특성 또한 라이더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빼뜨릴 수 없는 항목이다. 기본 골격은 가벼운 고 강성 알루미늄 델타 박스 프레임과 스윙 암이다. 세로 강성과 비틀림 강성을 높이면서도 상대적으로 횡 강성을 유연히 떨어뜨리는 디자인으로 압도적인 엔진 파워와 막강한 제동력에 버티도록 설계했다. 한편으로는 유연함을 갖게 함으로써 높은 코너링 성능을 발휘하도록 했다.

 

 

한편 높은 운동 성능과 안락한 승차감을 양립시키기 위해 엔진 마운트 위치를 최적화하여 전륜 분포 하중을 늘리고 라이더의 착석 위치를 전방으로 설정했다. 라이더의 체중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상적인 분포 하중을 실현하도록 노력한 것이다. 또한 운전자가 느끼는 라이딩 포지션의 자유도를 높이도록 설정해 스포츠 주행에 적합함은 물론 시가지 주행이나 여유로운 크루징 포지션을 잡기에도 손색없도록 했다. 또한 리어 프레임에는 CFRTP(탄소 섬유 강화 열가소성 수지)를 사용하여 경량화에 일조했다.

 

 

YZF-R1이 갖춘 엔진 특성과 운동 성능을 최대한 발휘하기 요건 중 하나는 하체 특성이다. 모터사이클에서는 서스펜션 아래의 움직임이 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리어 서스펜션은 압축 및 신장측 감쇄력을 양방향으로 간단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프론트 포크는 좌우 독립 감쇄 기구를 마련해 운전 특성에 대응해 간단한 조작으로 세팅할 수 있도록 했다.

 

 

브레이크 시스템은 프론트에 외경 310밀리미터의 디스크와 직접 연결식 모노블록 6피스톤 캘리퍼를 장비했다. 6피스톤 캘리퍼로 제동력을 향상함과 동시에 디스크 크기를 줄여 축 회전의 관성을 최소화해 자이로 효과를 억제하고자 하는 설계다. 리어는 외경 220mm 디스크와 1피스톤 핀 슬라이드 캘리퍼를 장착했다. 또한 깊은 뱅크 각에서 강하게 가속하더라도 접지력을 받아낼 수 있도록 190/55ZR17 사이즈의 리어 타이어를 장착했다.

 

 

디자인 면에서도 야마하 특유의 매혹적인 면면을 발견할 수 있다. 얇은 옷을 여러 겹 입은 것 같은 두 개의 카울, 그리고 틈새로 살짝 들여다보이는 엔진은 기계의 아름다움을 음미한다면 너나 할 것 없이 매료되기 십상이다. 풀 카울링이라 하여 엔진의 묵직한 존재감을 일부러 감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듯, 크로스 플레인 엔진 일부를 슬며시 드러냈다.

 

 

운전자 대신 바람을 흘려 넘길 수 있는 작은 프론트 페어링에 자리한 프로젝션 헤드램프도 인상적이다. 미드 카울에서 리어 카울까지 흐르는 역동적인 라인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단단한 응축감을 주는 디자인이 압권이다. 유러피안 디자인이 섹시하고 관능적인 모습이라면 일제 모터사이클 디자인을 대표하는 야마하, 그리고 그 기함인 YZF-R1의 디자인 언어는 단단한 남성미 속 강인한 존재감이다.

 

 

2014년형에 이르러 세부적으로 다듬어진 디테일 파츠도 눈길을 끈다. 프론트 카울은 공력 특성을 향상시키면서도 공격적인 조형미를 갖췄지만, 포인트가 되는 LED 포지션 램프는 아이라인과 같은 감각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다. 또한 MotoGP 머신 YZR-M1을 모티브로 디자인 된 주조 알루미늄 핸들 콕핏이 머신다운 느낌을 준다.

 

 

2014년 모델은 딥 블루 메탈릭이 메인 컬러인데, 새로운 그래픽과 데칼을 채용해 YZR-M1과 같은 레이스 머신 느낌을 잘 표현해 인기 색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화이트 칵테일 컬러는 고급스러운 바탕색과 더불어 비대칭 그래픽 채용으로 그동안 슈퍼바이크에 채용됐던 식상한 컬러와 다른 신선한 감각을 자랑한다. 야마하는 더 이상 YZF-R1이 서킷이나 와인딩 로드에서만 활약하는 스포츠 전담 머신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단지 휴일 오후의 카페 앞에 세워두어도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머신이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야마하 개발진이 YZF-R1으로 하여금 달성하려 했던 포인트는 라이더와 기계의 한 발 더 다가선 상호 작용에 있다. 매 순간, 바이크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타이어의 접지감’이라는 언어로 라이더에게 실시간 피드백 하는 것, 그리고 라이더는 자신의 요구를 스로틀링이나 브레이킹, 핸들링과 몸의 움직임이라는 언어로 바이크에 응답한다. 그리고 바이크는 다시 그에 대한 반응을 정확히 돌려주는 것, 이 대화형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기술의 핵심이라고 믿었다.

 

 

고출력 경량 스펙을 쌓는 것 이전에 크로스 플레인 크랭크 샤프트 엔진을 채용 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라이더의 스로틀 조작에 대해 직관적인 선형 토크를 만들어내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이렇듯 정확한 쌍방향 조율이 이뤄지면 어떤 상황에서도 재빨리 스로틀을 열어 난코스를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이 기본이론이다.

 

 

오버 파워는 필요 없다. 라이더가 원하는 만큼만 파워를 발생시키면 오히려 코스 공략 시간은 줄어든다. 전투에서 마찬가지로 지휘관의 부대가 소유한 전투력을 뜻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단지 기계와의 상호작용이라는 소재가 다를 뿐이다.

 

 

YZF-R1은 하이파워, 초경량의 숫자에 집착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서 슈퍼바이크가 라이더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에 대해 밤낮 고민한 결정체다. 단순히 화려한 홍보효과를 위해 MotoGP 머신 기술을 끌어왔다는 정도로 그치는 것은 오판이다. 이 바이크야말로 스포츠 라이딩의 기쁨을 많은 라이더들과 공유하기 위해 개발됐다.

 

제공 : 임성진 기자 / 라이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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