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 드 코리아 2014의 7번째 스테이지를 하루 앞둔 13일 저녁, 카메라를 챙겨 서둘러 평창으로 출발했다. 목적은 물론 경기 취재지만, 스타트라인에서 배웅한 선수들을 피니쉬라인에서 기다리던 평소의 취재와는 다르다. 다름 아닌 레이스 팀의 서포트카에 탑승하여 선수들을 따라가는 밀착 취재이기 때문이다.

기자가 아니더라도 레이스를 관람하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다. 만약 현장에서 선수나 팀 관계자를 만난다면 궁금한 것을 물어보거나, 그들이 타는 자전거를 가까이서 구경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아마 대부분 친절하게 맞이해줄 것이다. 아직 국내 사이클링 스포츠의 인기가 높지 않아 현장을 찾는 이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지만, 열성 팬이라면 오히려 이런 한적한 분위기가 선수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일단 레이스가 시작되면 현장은 프로들의 세계다. 레이스 운영에는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고, 팀의 모든 것은 규칙과 작전대로 움직인다. 기자 역시 관객이자 한 사람의 아마추어 사이클리스트로서 이 레이스 현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늘 궁금해왔고, 이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사실에는 가슴이 설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자에게 레이스 서포트카의 좌석 하나를 선뜻 내준 팀은 다름 아닌 MTN-큐베카. 모바일통신사 MTN그룹이 메인스폰서를 맡은 아프리카 최초의 프로 콘티넨털 사이클링 팀이다. 모터스포츠 팀이나 축구의 구단처럼, 프로사이클링 팀 역시 스폰서의 이름을 홍보하는 것이 목적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팀 MTN-큐베카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한 모금운동을 펼치는 큐베카(Qhubeka) 재단의 이름을 걸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큐베카 재단( www.qhubeka.org )은 World Bicycle Relief와 함께 아프리카 어린이에게 자전거를 제공하기 위한 모금운동을 펼치고 있는 비영리 기관이다. 월드비전이 아프리카 어린이에게 매일의 식량을 제공하는 닭과 염소 기부 캠페인을 펼치듯, 큐베카 재단은 자전거를 통해 어린이들이 집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학교를 다니고, 하루하루 생활 노동의 무게를 덜 수 있도록 전 세계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모으고자 한다.

어린이에게 자전거를 제공하기 위한 기부운동을 홍보하기에 아마 프로사이클링만큼 적합한 것이 또 있을까? 아프리카에서 몇 만 킬로미터 떨어진 우리나라에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큐베카 재단의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분명 자전거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MTN-큐베카 팀이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기꺼이 팀 서포트카의 좌석을 제공한 것은 레이스에서의 선수들의 활약을 더 가까이에서 보여주기 위함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활동을 조금이라도 더 널리 알리려는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스테이지 7, 아름다운 지옥으로의 초대

스테이지 7은 맑은 여름 날씨가 예상되었다. 푸른 색 차량들은 중립 서포트카로 일본의 자동차 부품 메이커 시마노가 지원했다.

비가 왔던 전날과 달리, 14일 아침은 달리 화창하고 맑은 여름 날씨였다. 레이스에 나가는 선수들은 158.3km의 코스를 달리는 동안 뜨거운 태양과도 한바탕 혈전을 벌여야 할 것이다. 투르 드 코리아 스테이지 7은 알펜시아 리조트를 출발해 진고개 정상까지 평창군 일대를 달리는 코스다. 해발 766m의 고지대를 출발해 완만한 내리막과 오르막이 90km지점까지 이어지다가 약 20km의 급격한 내리막 위주의 코스를 거치며, 완만한 평지를 거쳐 다시 해발 30m에서 960m까지 한 번에 치솟는 까마득한 언덕길을 올라야 한다.

‘강원도 평창 인근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겠지만, 과연 선수들의 눈에는 이런 풍경이 들어올까? 완만하고 긴 내리막과 오르막 구간을 선수들은 집단을 이루어 고속으로 통과할 것이며, 언덕에 강한 선수들은 평지에서 이빨을 숨기다가 마지막 언덕에서 남겨두었던 힘을 쥐어짜며 승부를 걸 것이라 예상되었다.

투르 드 코리아 스테이지 7 고도표. 해발 960m의 진고개 정상에 피니쉬라인이 그어졌다.

게다가 언덕 꼭대기에 피니쉬라인이 그어졌다. 관중으로서는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가까이에서 보며 응원하는 즐거움이 있지만, 사실 선수에게는 무척 잔혹한 코스 구성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을 것이며, 모두가 근육을 비틀어 쥐어짜며 경쟁자보다 1초라도 더 빨리 피니쉬라인을 통과하려 애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경기가 펼쳐졌다.

레이스가 시작되는 시간은 10시 정각. 8시 30분이 지나자 하나 둘 각 팀의 선수들이 대기 장소로 나오기 시작한다.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 둘 눈에 띈다. KSPO의 서준용 선수가 기자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 서준용 선수는 로드레이스, 트랙, MTB 크로스컨트리와 다운힐에 이르기까지 종목을 가리지 않으며, 각 종목 모두에서 정상급의 실력을 발휘하는 독특한 커리어의 베테랑 선수다. 올해 KSPO 소속으로 투르 드 코리아에 참가했지만, 과거 금산군청과 서울시청 팀을 비롯한 국내 사이클링을 대표하는 굵직한 팀에서 실력을 다져왔고 투르 드 코리아에도 몇 차례나 참가했다. 늘 웃는 명랑한 모습으로 기억되는 선수인데, 그의 얼굴에도 지난 6일간의 레이스에서 쌓인 피로가 역력히 드러난다.

투르 드 코리아는 8일간 펼쳐지는 투어 레이스인 만큼, 하루하루의 승부도 중요하지만 최종적으로 ‘마지막 날까지 살아남는 자’가 승리하게 된다. 특히 MTN-큐베카 팀은 팀 종합 2위의 성적을 내었고, 개인의 우승보다 팀의 우승을 생각한다면 팀을 구성하는 선수 전체의 컨디션이 중요하다.

게다가 MTB-큐베카 팀의 크리스티안 스바라글리 선수는 스테이지 6까지 가장 많은 스프린트 포인트를 모은 선수에게 주어지는 스카이블루 저지를 입고 있다. 스바라글리 선수의 ‘베스트 스프린터’의 자리를 지켜내는 것도 스테이지 7의 중요한 목표다.

스테이지 7과 같은 ‘남은 힘을 끝까지 쥐어짜는 산악 코스’에서 마지막까지 리타이어 하지 않고 살아남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닌데, MTN-큐베카는 평지에 강한 스프린터 위주의 팀이기 스테이지 7이 더욱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피해갈 방법은 없다. 언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니까.

 

팀 감독, 캐빈 캠벨

9시가 조금 넘어 MTN-큐베카 팀의 선수들이 대기 장소에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도착한 선수들은 레이스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현황을 표시한 스타트 사인 보드에 가서 서명을 해야 한다. 투르 드 코리아 첫 날에는 스타트 사인보드에 이름이 적힌 196명의 선수 전원이 레이스에 참가를 했겠지만, 6일간의 험난한 레이스에서 21명의 선수가 경기를 포기했다. MTN-큐베카 팀은 아직 한 명의 선수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은 상황. 반면 말레이시아 대표 팀과 크리스티나워치-쿠마 팀의 경우 6명의 선수 중 4명이 리타이어 하여 2명만이 남았다.

사인보드를 살펴보니 하트와 같은 제법 장난스러운 사인도 남아있다. 좋아하는 문구를 쓰거나 여자 친구의 이름을 적는 선수들도 간혹 있다고 한다. 사인을 마친 선수들은 장비를 점검하거나 출발지점 주위를 자전거를 타고 돌며 몸을 풀기 시작한다.

MTN-큐베카 팀 서포트카가 위치한 곳으로 가보니 케빈 캠벨 감독이 선수들의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교환하는데 기자의 이름을 보고 웃는다. 40대 중반의 나이라는데 "We will rock you!" 라고 외치며 뮤지션처럼 제스처를 취하며 장난을 치는 것이 영락없는 젊은이다. 팀 코치인 안드레아스 백와트와 함께 자전거를 점검하고 물과 예비 휠을 챙기는데, 두 사람의 나이차이가 20년이라지만 마치 친구 같다.

MTN-큐베카 팀의 자전거는 2014 트렉 마돈7 팀 이슈 모델이다. 사실 MTN-큐베카 팀은 프로 콘티넨탈 급 팀으로, 세계 최정상급 프로 사이클링 팀과 비교하면 등급과 인지도가 떨어진다. 보통 트렉과 같은 대형 자전거 메이커가 프로 사이클링 팀을 후원할 때, 세계 최정상급 팀이 아닌 이상은 기성품과 똑같은 디자인의 자전거를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당 팀만의 전용 디자인을 자전거에 적용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렉은 MTN-큐베카 팀에게 팀 전용 컬러와 디자인을 적용한 자전거를 제공한다. 이 자전거는 트렉의 커스텀 바이크 제작 프로그램인 프로젝트 원(Project One)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트렉이 MTN-큐베카 팀에게 이런 특별한 자전거를 후원하는 것은 큐베카 재단의 자선활동에 대한 지원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트렉 프로젝트 원 프로그램을 통해 MTN-큐베카 팀과 같은 디자인의 자전거를 주문하면 자전거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큐베카 재단에 기부하는 방식이다.

자전거의 부품은 스램(SRAM)의 레드22 2×11단 그룹셋과 집(ZIPP) 카본 휠세트, 슈발베 원 타이어를 장착했다. 로드바이크 마니아라면 팀의 스페어 휠에 장착된 PG1170 11단 스프라켓의 톱니 수에 주목할 만하다. 11-28T의 가벼운 기어비를 가진 산악용 카세트 스프라켓을 사용한다. 프로 선수들이라도 힘든 산악구간에서는 피로를 줄이기 위해 가볍고 조금이라도 더 편한 기어를 쓰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하지만 과연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달리기 위해 온 몸의 에너지를 불사르는 레이스에서 편안한 기어를 고를 여유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레이스를 준비하는 크리스티안 스바라글리. 발치에 놓인 것이 보급낭과 물병이다.

레이스가 시작되기 직전 기념품으로 팀 킷을 받았다. 얇은 천으로 만들어진 보급낭(Bonk bag)에 물병과 쪽모자 하나씩이 들어있다. 천으로 된 가방은 장거리를 달리는 선수들에게 중간 보급 시 물과 도시락을 건네줄 때 사용하며, 물통과 모자는 실제 선수들이 쓰는 것과 같은 것인데 팀 카 탑승 기념품이라 한다. 감독과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중 “레이스를 즐겨요!”라는 말을 들으니 긴장이 조금 풀렸다.

레이스가 시작되기 직전, 전날까지의 레이스 기록을 합산한 종합 1위와 스프린트 1위, 산악 1위를 발표한다.

경기가 시작되기 약 5분 전 캠벨 감독이 차에 타라는 사인을 보낸다. 폭죽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되고, 각 팀의 서포트카도 하나 둘 펠로톤(Peloton : 선수들이 모인 집단)의 뒤를 따른다. 서포트카의 순서는 매일 바뀌는데 MTN-큐베카 팀의 서포트카는 9번을 배정받았다.

레이스가 시작되기 직전, 캠벨 감독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서포트카의 오디오 블루투스 기능을 이용해 아이팟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각 팀의 서포트카로 현대 아반떼 차량이 배정되었는데 핸들의 버튼으로 오디오를 간편하게 조작할 수 있어 무척 마음에 든다고 한다. 레이스가 빠르게 전개되는 구간, 산악구간, 보급구간을 지나면서 분위기에 맞는 곡을 즉석에서 고르는 센스가 놀라울 따름이다. 아마 투르 드 코리아에 참가한 모든 팀을 통틀어 노래를 틀며 달리는 팀은 MTN-큐베카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캠벨 감독이 몇 가지 간단한 주의사항을 일러준다. 첫째, 좌석 측면의 라디오 볼륨다이얼을 팔꿈치로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할 것. 둘째, 무전 청취에 방해될 수 있으니 시끄럽게 웃거나 떠들지 말 것. 하지만 노래는 괜찮다고 한다. 그리고 프링글스 감자 칩 한 통을 건네준다. "이건 그냥 자전거타기야." 이런 것을 흔히 대범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케빈 캠벨 감독의 플레이리스트. 왠지 의미심장한 제목들이 보인다.
- Map of the problematique (muse)- I might be wrong (Radiohead)
- Wheel in the sky (Joney)
- Born to run (Bruce Springsteen)
- Time to pretend (MGMT)
- The Eton rifles (The Jam)
- Karmacoma (Massive Attack)
- Ratamahatta (Sepultura)
- Everyday I love you less and less (Kaiser Chiefs)
- Compliment (Collective Soul)
… and etc.

팀 서포트카를 운전하는 캠벨 감독은 레이스 내내 음악을 들으며 손장단을 맞추는데, 카메라를 가까이 대면 얌전해진다. ‘나쁜 사진'을 찍히지 않기 위해서라고. 뒷좌석에 타고 있던 미캐닉 겸 코치 안드레스가 장난치면 차에서 내리겠다고 말해도 캠벨 감독을 말릴 수는 없었다.

문득 차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서 뒷좌석을 돌아보니 안드레스가 무언가를 먹고 있다. 물어보니 김이라고. 캠벨 감독이 깜짝 놀라며 외친다. "바다 풀(seaweed)을 먹는다고? 말도 안 돼!" 안드레스가 김이 맛있고 채소를 먹는 것과 똑같다고 응수하자 캠벨 감독의 말이 걸작이다. “사람은 채소를 먹지만 풀(weed)을 뜯어먹지는 않잖아?”

 

글 : 장낙규 기자
사진 : 문인영 기자, 장낙규 기자, 국민체육진흥공단, 대한사이클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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