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동호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레이서가 되어 라이벌과 겨루며 달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 적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전거 대회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과 빠른 속도, 빽빽하게 어깨를 맞대고 달리는 그룹은 대회에 익숙하지 않은 동호인이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가혹하다. 그러나 오늘 소개할 힐 클라임 대회라면 이런 부담을 덜고 대회에 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힐 클라임(Hill Climb), 말 그대로 고갯길에서 열리는 ‘자전거로 산을 오르는’ 경기다. 힐 클라임은 평지에서 열리는 경기에 비해 속도가 빠르지 않고, 국내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힐 클라임 대회들이 피니쉬라인을 통과한 순서가 아니라 기록 계측을 통한 ‘넷 타임’ 방식으로 순위를 정하기 때문에 선두를 차지하기 위한 자리싸움도 적다. 그렇다고 해서 힐 클라임 대회가 만만한 것은 아니다. 10km 이상의 긴 오르막길을 정복해야 한다. 하지만 코스가 어려울수록 완주했을 때의 성취감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국내에서는 미시령과 대관령에서 열리는 힐 클라임 대회가 대표적이다. 두 대회 모두 강원도 험준한 태백산맥을 넘는 코스로 10년이 넘게 개최된 국내 동호인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대회다. 지난 주말 강원도 강릉에서 열린 ‘2014 대관령 국제 힐 클라임 대회’에 참가한 필자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전국에서 모인 동호인들의 축제



대관령 정상에서 볼 수 있는 비석, 거대한 풍력발전기와 더불어 대관령을 상징한다.




이번 대회는 필자가 3번째 참가하는 대관령 힐 클라임 대회(이하 대관령 힐 클라임)다. 대관령 옛길을 강릉에서 서울 방향으로 오르는 대회 코스는 길이가 약 17km이며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다른 힐 클라임 대회들과 비교하면 난이도는 낮은 편이다. 하지만 순위권 입상을 노린다면 그 만큼 경쟁이 치열할 것임을 의미한다. 매년 날씨의 기복이 심한 편인데, 올해는 아침부터 기온이 높고 햇살이 강했다. 더운 날씨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음료수를 충분히 섭취하지 않으면 힘든 날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대관령 힐 클라임은 드물게 오후에 시작하는 대회다. 오전에 행사장에 도착하면 여유롭게 대회 준비를 마칠 수 있다. 10시경 도착한 행사장에는 벌써 많은 인파로 북적인다. 순위를 겨루는 경기라고 해서 모든 참가자들이 경쟁을 위해서 모인 것은 아니다. 대관령 힐 클라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자전거 행사 중 하나이며 동호인들의 축제이기도 하다.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자전거 동호회들이 참가하여 행사를 즐기고, 서로의 기록을 비교하거나 완주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기록측정용 칩을 정확히 장착하지 않으면 제대로 기록측정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대회가 끝나면 반납해야 하니 분실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 가장 먼저 할 일은 대회본부에서 배번과 기록 칩을 수령하는 것이다. 옷과 자전거에 번호표를 부착하고 자전거의 앞바퀴 허브에 기록측정용 칩을 장착하여 준비를 마쳤다. 행사장을 둘러보니 전국에서 수많은 동호인들과 자전거들이 모인 만큼 구경할 것도 많다. 후원 업체들의 제품 전시와 이벤트도 장내에 볼거리중 하나다. 큰 규모의 자전거 대회는 동호인들 간에 만남의 장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 많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인사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개회식을 알리는 방송이 들려온다.



욕심을 내기보단 정정당당히 즐기자




안전한 대회를 위해 참가 선수들을 연령, 부문별로 나뉘어 출발시킨다.



이날 대관령 힐 클라임에 참가한 선수가 무려 2,900여명이라 하니 굉장한 숫자다. 이 인원이 한꺼번에 대회코스를 달리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연령별, 부문별로 그룹을 나누어 출발을 한다. 필자가 소속된 그룹은 사이클 남자 1그룹이다. 내년에는 2그룹으로 편성 될 것이다. 아직은 1그룹에 포함된다는 사실에 흐뭇해하며 집합장소로 이동했다.

개회식이 종료되고 나면 그룹별로 출발선으로 이동 후 퍼레이드 출발을 한다. 매년 이 순서에서 눈살 찌푸리게 하는 일이 발생하곤 하는데, 기록에 욕심을 가진 일부 참가자들이 주최 측의 방송은 들은 채 만 채 통제에 따르지 않고 개회식장을 이탈하여 먼저 출발선의 앞자리를 차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다른 참가자들과 전체 행사진행에 해를 끼치는 행동이다. 더 좋은 기록을 내고자 한다면 정정당당히 경기에 임하고 실력을 기르는데 더 집중했으면 한다.

출발을 알리는 신호가 울리고 강릉 시내를 통과하는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앞서 독자들에게 힐 클라임 대회에서는 빽빽하게 뭉쳐서 달리지 않는다고 언급했는데, 다소 예외적인 상황이 있었다고 설명해야 할 것 같다. 필자가 속해 있던 가장 앞 그룹에는 우승을 토리는 선수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달려 몇몇 참가자들의 불안한 경기진행 모습이 목격되었다.







만일 이런 상황을 피하고자 한다면 기다렸다가 어느 정도 참가자들이 빠져나가고 난 후 여유를 두고 출발하는 것도 방법이다. 넷 타임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기에서 시간계측은 출발선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개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늦게 출발한다고 해서 남들보다 기록이 저조하게 나오진 않는다.



라이벌과의 경쟁, 자신과의 승부








본격적인 언덕 등판구간에 들어서니 선두그룹의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속도가 늦추어진 만큼 그룹이 안정화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필자의 등판능력이 뛰어나지 못한 탓에 선두 그룹의 속도를 맞추기에 너무나도 힘이 든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느라 가랑이가 찢어진 것인지 필자의 페이스는 점점 떨어져 간다. 더군다나 찌는 듯한 날씨와 내리쬐는 햇빛은 평정심을 찾기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허덕거림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물 보급소가 보인다. 자원 봉사자가 쥐어주는 시원한 물을 몸에 끼얹고 나니 조금은 활력이 되살아난다. 하지만 이미 많은 경쟁자들을 앞으로 보내버린 상황이다. 이럴 대는 침착하게 남은 코스를 계산해보고 최대한 안정적인 자신만의 주행 페이스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주변에 자신과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선수가 있다면 호흡을 함께 맞춰 달려보는 것도 좋다. 만약 체력에 여유가 있다면 더 빨리 오르는 선수를 찾아 호흡을 맞추거나, 앞을 달리는 선수의 등을 목표삼아 이를 따라잡는 자기 자신만의 레이스를 마음속으로 즐기는 것도 언덕의 고통을 잊고 기록을 향상시키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어느덧 주변 참가자들과 페이스를 맞춰 오르다 보니 피니쉬라인까지 1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벌써 끝나고 말았구나!’ 하는 아쉬움과 안도감이 몰려오지만 조금이라도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남은 1km에서 다리에 최대한 힘을 쏟아 붇는다. 대관령 정상의 상징과도 같은 거대한 프로펠러의 풍력 발전기가 보이고, 코너를 따라 돌자 ‘FINISH’ 라고 적힌 풍선 게이트가 눈에 들어온다.













피니쉬라인 앞으로 길가에 서있는 많은 갤러리와 참가자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듯 응원과 성원을 보낸다. 마치 투르 드 프랑스에서나 보던 클라이밍 피니쉬 스테이지를 옮겨놓은 것 같은 멋진 광경이다. 길가의 펜스를 따라 갤러리들이 너무 많아 촬영을 위해 동행한 동료기자의 얼굴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 엘리트 경기에서도 이런 장면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과 함께 앞바퀴가 피니쉬라인을 넘었다.








피니쉬 라인을 넘은 참가자들은 완주의 기쁨부터 기록의 아쉬움 까지 다양한 감정과 서로의 무용담을 풀어놓기 바쁘다. 어느새 대관령 정상 휴게소는 자전거들로 가득 들어찬다. 시상식을 비롯한 나머지 행사는 출발지였던 강릉 종합운동장에서 진행된다. 대관령 정상 휴게소에 많은 화물차와 대형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데, 주최 측에서 참가자와 자전거들을 안전하게 행사장까지 수송하기 위해 마련한 차량들이다. 대회가 한창 진행 중인 코스를 자전거로 역주행하여 내려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즐기고 많이 얻어가자








남은 행사에 참가하지 않고 대관령 정상에서 곧바로 서울 방향으로 출발하는 참가자들도 적지 않다. 대회 시작 전 주차장에 미리 차량을 가져다 둔 것인데, 시상식에 참가하지 않고 교통체증이 시작되기 전 가급적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 이들을 위한 대회 유경험자들의 요령이다. 반면 토요일 오후에 종료된 행사이기 때문에 모처럼 강원도에 온 김에 여유를 가지고 강릉시내와 바닷가에서 관광을 즐기는 참가자들도 적지 않다.








자전거를 열심히 타고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고 싶으나 대회 참가가 아직 망설여진다면, 힐 클라임 대회에 먼저 나가보길 권한다. 안전에 대한 부담이 적은 힐 클라임 대회에서 분위기를 익히고 나면, 다른 여러 대회에 참가하더라도 어렵지 않게 현장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완주의 기쁨은 물론이요 함께 자전거를 타는 동료 간의 단합과 우정까지 얻어간다면 참가를 위한 경비보다 더 귀중한 것들을 가지고 돌아가는 셈이다. 좋은 기록과 상장보다도, 대회를 즐겼다면 가장 많은 것을 얻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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