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인터바이크 국제 자전거박람회는 유로바이크와 함께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자전거·부품 전시회다. 자전거와 부품들을 만드는 많은 메이커가 신제품을 내놓아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데, 사실 그 중에서도 독창적인 디자인과 기술력으로 주목받는 메이커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불과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잠깐 자전거 산업 붐이 일었다. 정부가 적극 지원했기에 유행처럼 여러 기업들이 자전거 부품과 신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는데 쓸 만한 결과물을 내놓은 곳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세계 최초 특허’만 넣으면 팔린다는 아마추어적 발상은 세계무대에서 통하지 않는다. 기술력이 뛰어나다고 자화자찬하면서 상품성 있는 제품은 내놓지 못하는 것이 Made in Korea의 현주소다.






인터바이크에서 가장 주목받는 브랜드는 오랜 기간 동안 기술력을 축적해온 곳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인터바이크에 올해 처음으로 참가한 'Road Not Taken(이하 RNT)'이라는 브랜드가 많은 관객들과 자전거 전문 매체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RNT는 티타늄 프레임과 부품을 비롯한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는데 그 중에서도 알루미늄을 정밀 가공해 만든 컴포넌트들은 하이엔드라는 이름에 아깝지 않은 높은 품질과 독특한 디자인으로 핑크바이크나 MTBR과 같은 해외 매체들로부터 ‘가장 혁신적인 제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RNT가 순수 우리나라의 기업이라는 점,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뜨거운 열정을 가진 한 자전거 마니아가 있었다는 것이다.






RNT 플렉스 핏 플랫폼 페달






RNT 플렉스 핏 페달은 올해 인터바이크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제품 중 하나였다. 그 이유는 하나다. 꼭 필요한데, 지금까지 없었던 제품이기 때문이다. 자전거의 페달은 단순한 구조 때문에 그 중요도가 낮게 평가되곤 하는 부품이다. 하지만 산에서 자전거를 타본 사람이라면 마치 날뛰는 말처럼 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안정감 있는 자세를 유지하기위해 페달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것이다.






특히 다운힐과 프리라이드, 최근 떠오르는 장르인 엔듀로 라이딩용 MTB에는 발이 미끄러지지 않고 확실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여러 개의 핀이 돌출된 플랫폼 페달을 사용한다. 이런 산악자전거용 플랫폼 페달은 발을 무척 단단하게 고정해준다. 미끄럼 방지용 핀이 신발 바닥의 틈에 파고들어 꽉 잡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페달을 밟은 상태에서 발목을 비틀어 발을 돌려보아도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산악 라이딩 중 발목을 비틀어야 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 발목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무릎이 부자연스럽게 비틀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 플랫폼 페달의 문제는 해외 프로 라이더의 라이딩 모습만 보아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발이 페달에 고정되어 좌우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발목과 무릎을 부자연스럽게 비틀며 자세를 취한 것을 볼 수 있다. 당연히 몸에 큰 무리가 가고, 심하면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MTB는 당연히 그렇게 타야한다’고 생각했을 뿐 문제 해결을 위한 정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RNT의 자전거 컴포넌트 디자이너 이호남 씨의 생각은 달랐다. MTB 라이딩 중 페달에서 발이 미끄러지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페달이 발에서 안 떨어지게 하면서, 좌우로 비틀리게 디자인하면 된다.

원초적인 아이디어지만 현실에서 구현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온 몸의 체중이 실리는 페달은 움직임에 유격이 있어서는 안 되고, 가벼워야 한다. 그리고 멋진 디자인도 중요한 부분이다. 자전거 산업에 뛰어들어 실패한 국내 기업들이 자주 해왔던 실수가 ‘자전거를 타지 않는 디자이너’들에게 제품 설계를 맡긴 것이다. 일반인의 눈에 멋져보여도 라이더가 보기에 괴상한 제품이라면 운명은 뻔하다. 일단 열성적인 자전거 마니아인 이호남 씨 스스로가 자신의 자전거에 장착해 직접 사용할 부품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디테일이라도 부족한 부분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페달을 두껍게 만들고 그 안에 경첩을 집어넣는 것은 해답이 아니었다. 일단 최근의 유행은 페달을 점점 얇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페달 두께가 얇아진 만큼 라이더의 무게중심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호남 씨가 생각한 방법은 페달의 중앙에 둥근 디스크를 장착하고, 이 디스크를 페달 플랫폼이 샌드위치처럼 위아래로 감싸도록 했다. 발목이 비틀리면서 페달에 하중이 실리면 페달의 플랫폼이 디스크를 중심으로 좌우로 조금씩 움직인다. 페달 내부에는 스프링이 들어있어 페달을 비트는 힘이 줄어들면 다시 원상 복원된다.






페달의 디스크와 플랫폼을 비롯한 주요 부품은 7075 알루미늄 합금을 정밀하게 깎아서 만들었다. 항공기 등에도 사용되는 가볍고 단단한 고급 소재다. 플랫폼을 고정하기 위한 나사의 끝부분은 위아래로 돌출되어 페달에 튀어나온 핀의 역할을 겸하도록 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불필요한 부품을 하나라도 줄이려는 디자이너의 고집이 보이는 부분이다.



RNT 타이거 크랭크






RNT가 내놓은 작품은 페달이 전부가 아니다. 3장의 체인링을 장착하고도 무게가 700g이 채 안 되는 ‘타이거’ 경량 홀로우 크랭크도 주목할 만한 제품이다.






자전거를 오랫동안 가까이 해온 골수 마니아들은 알루미늄이나 티타늄 같은 금속으로 만든 부품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카본과 같은 복합소재로 만든 부품들은 무게가 가볍지만, 틀에서 찍어내고 다듬어낸 부품들이기에 정밀하게 가공된 부품들이 보여주는 예리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타이거 크랭크는 7075 알루미늄 합금을 정밀하게 깎아 만들었다. 금속 특유의 차갑고 단단한 질감과 광택, 그리고 정밀하게 가공된 부품들이 보여주는 에지(edge)라 표현될만한 예리한 느낌이 아름답다. 하지만 이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보다 가볍게, 기존의 알루미늄을 깎아서 만드는 크랭크의 한계를 초월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을 적용했으니, 바로 속을 텅 비게 만들어 무게를 줄이는 홀로우 크랭크 암 디자인이다.






자전거에 대한 지식이 있는 분이라면 시마노, 그리고 과거의 캐논데일 같은 대형 메이커가 이미 홀로우 크랭크 암을 생산했다는 부분을 지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시마노와 같은 메이커가 엄청난 규모의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홀로우 크랭크와 관련된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RNT는 기존 메이커들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약 10분의 1의 비용으로 홀로우 크랭크를 생산할 수 있는 금형과 기술을 개발해냈고, 그 결과 소량생산 제품 특유의 정밀함을 유지하면서 가벼운 무게와 내구성을 가진 제품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타이거 크랭크다.






700g이 안 되는 가벼운 무게에도 불구하고 EN규격 테스트를 모두 통과할 만큼 뛰어난 강성과 성능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이호남 씨의 설명. 크랭크의 축은 직경 30mm의 BB30 규격을 접목했지만, 기존의 나사산 방식 BB를 사용하는 프레임에도 장착할 수 있다. 최신 규격을 접목했음에도 클래식 자전거 프레임에 장착할 수 있을 만큼 높은 호환성을 보여준다. 게다가 최근 유행하는 2장, 혹은 1장의 체인링을 장착하는 방식으로 세팅할 경우 무게는 더욱 가벼워진다.






현재 전 세계 자전거시장은 한마디로 ‘격변기’라 표현할 수 있다. 전기자전거나 팻바이크 같은 새로운 자전거의 장르, 새로운 규격의 부품들이 등장하며 매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를 이해하고 시장의 흐름을 읽는 눈이다. 자전거 산업에 뛰어들었던 여러 국내 기업들이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물건 생산에만 집중한 결과 실패의 고배를 마셨다.

이번에 소개한 RNT 플렉스 핏 페달과 타이거 홀로우 크랭크는 프로토타입 모델이다. 아직 출시되지 않은 제품인데, 아마 국내의 라이더들은 해외 매체를 통해 이 제품들을 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고품질의 대량생산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지만, 사람들은 고품질 그 이상의 ‘톱-엔드’에 위치한 차별화된 제품을 원한다. 앞으로는 이런 제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과 메이커를 ‘장인’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이런 장인들을 더욱 많이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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