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브 싱클레어 경(Sir Clive Sinclair, 1940~)은 지금도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휴대용 계산기에서 컴퓨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발명품을 선보였고, 전부가 성공적이었던 것만은 아니지만 발명품 중에는 세상을 바꿔놓을 정도로 대단한 것들도 있었다.



클라이브 싱클레어의 발명품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은 1982년 창립자의 이름을 딴 회사인 싱클레어 리서치가 출시한 가정용 컴퓨터 스펙트럼 ZX 시리즈였다. 스펙트럼 ZX는 당시의 컴퓨터 열풍을 이끌어나가는 모델이었는데, 스펙트럼 ZX의 인기를 배경으로 다양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회사들이 생겨나면서 영국 IT산업이 시작되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 싱클레어 C5의 TV 광고 ()

그런데 클라이브 싱클레어의 관심이 컴퓨터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에도 런던의 교통체증은 심각한 수준이었고, 싱클레어는 이를 해결하기위한 ‘아주 작고 저렴하면서 누구나 탈 수 있는 차’의 개발에 뛰어든다. 싱클레어가 개발하던 자동차는 출시되기 전부터 영국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그리고 1985년, 세상을 바꿀 혁신적인 탈것인 ‘싱클레어 C5’가 세상에 그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미래에서 온 듯한 멋지고 세련된 디자인, 가볍고 콤팩트한 구조는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미래의 탈것을 지향하다



싱클레어 C5의 디자인은 지금 봐도 나쁘지 않다. 고전 SF영화에 등장하는 셔틀 우주선이 여전히 우리에게 미래적이라는 느낌을 준다면, 싱클레어 C5 역시 마찬가지다. 옆에서 보아 삼각형의 차체는 제법 날렵한 느낌이다. 마치 우주선처럼 조용히 가속하며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싶다고 보는 이를 유혹한다.



싱클레어 C5의 동체는 심플한 Y형태의 금속 프레임에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든 바디를 얹었다. 바디는 여러 개의 부품이 아닌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인데, 무게를 가볍게 하면서 동시에 대량생산에 유리한 구조다. 폴리프로필렌 바디는 약간의 탄성이 있어 가벼운 충격을 흡수하고 쉽게 부서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유선형과 디스크 휠, 각진 로고 같은 부분에서 미래적인 디자인을 지향했지만, 지금 보면 다소 투박한 부분도 보인다. 곡선을 살리는 요즘의 디자인 트렌드와 달리 딱딱한 선과 면으로 이루어졌고, 흰 색 바탕에 회색, 노란색 포인트가 들어가니 ‘80년대’의 향수가 묻어난다. 당시의 자동차 디자인과 비교해보면 각진 모양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리라.



싱클레어 C5는 개발될 당시 ‘전기 자동차’로 불렸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운전석에는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페달이 아닌, 자전거의 그것과 똑같은 페달이 있다. 전기모터와 브레이크는 핸들의 레버로 조작하는 방식. 아마 독자 여러분도 눈치 채셨겠지만, 오늘날의 전기자전거와 비슷한 구조다.



싱클레어 C8에는 250W 출력의 전기모터가 장착되었다. 운전석의 페달을 굴리면 체인을 통해 뒷바퀴로 동력이 전달되고, 여기에 전기모터의 힘을 더할 수 있다. 당시 영국에서 최고 속력이 시속 24km/h를 넘지 않는 탈것은 운전면허가 없어도 탈 수 있었기 때문에, 싱클레어 C5는 시속 24km/h의 최고 속력을 낼 수 있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페달과 연동되어 전기모터가 자동으로 작동하는 기능은 탑재되지 않았다.

아마 개발자인 클라이브 싱클레어는 원래 순수하게 전기모터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당시에는 오늘날 전기자전거에 사용되는 리튬전지와 같은 고효율의 배터리가 없었다. 순수하게 전기의 힘으로만 달리는 자동차를 만들었을 경우, 배터리 때문에 덩치가 크고 무거워져 원래의 목적인 도시형 소형 자동차 콘셉트와는 멀어지게 된다. 고심 끝에 사람의 힘을 더하는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만들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오늘날과 비슷한 전기자전거를 이미 30여 년 전에 만들어낸 셈이니, 그의 재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출시 전에는 엄청난 기대와 시선을 받았던 싱클레어 C5지만 출시된 이후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최고속도가 24km/h라는 것을 감안해도, 가속이 너무 느렸다. 아무리 가벼워도 자전거보다는 무거웠으니 그 주행감은 자전거보다 답답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시원시원하게 페달을 밟으며 달리기엔 운전석이 너무 좁았다. 자전거와 달리 신장에 따라 시트와 페달의 위치를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키가 큰 사람이 탔을 때는 웅크린 자세 때문에 다리의 힘을 제대로 쓸 수 없었던 것도 문제점의 하나.



명색이 ‘자동차’인 만큼 비오는 날에도 탈 수는 있었다. 일반적인 자전거와 달리 바퀴가 3개이기 때문에 미끄러져 넘어질 염려는 없었고, 싱클레어 C5에는 비오는 날의 주행을 위한 전용 덮개도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마 자전거를 너무나 좋아하는 독자 여러분이라도 비오는 날 싱클레어에 덮개를 씌우고 달리느니, 그냥 우산을 쓰고 나가 버스나 택시를 타는 편을 선택하지 않을까?

결국 싱클레어 C5는 약 17,000대 정도가 만들어지고 생산이 중단된다. 클라이브 싱클레어 경은 싱클레어 C5를 개발하는데 무려 700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140억 원 가까이를 쏟아 부었다고 하니 이 또한 놀랄만한 일.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싱클레어 C5는 실패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에 엄청난 돈을 쓴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기록도 있다. 싱클레어 C5는 아무리 봐도 전기자전거지만, 어쨌거나 ‘자동차’라는 이름을 가진 탈것이었다. 덕분에 2011년까지 ‘가장 많이 판매된 전기자동차’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기도 했다. (이 기록은 닛산의 전기자동차 리프에 의해 깨진다.)


: 싱클레어 C5는 ‘오늘, 그리고 미래를 위한 탈 것’이 되고자 했다.

싱클레어 C5는 분명 시장에서 실패한 모델이다. 하지만 한 괴짜 발명가가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노력의 산물이다. 그리고 실패해서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 모델이기 때문에 오히려 자동차/자전거 수집가들이 한 대쯤 갖고 싶어 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지금도 영국에는 싱클레어 C5를 타는 사람들이 남아있고, 만들어진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며 달리는 C5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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