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바이크 쇼에서 팻바이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 2000대 중반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몇몇 특이한 자전거 메이커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만든 자전거라고 생각했지만, 북미를 중심으로 팻바이크는 높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며칠 전 미국에서 팻바이크 내셔널 챔피언십이 열려 전설적인 MTB 레이서 중 한 사람인 네드 오버랜드가 첫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시승차를 살펴보기 전 ‘팻바이크가 무엇인가?’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이름 그대로 뚱뚱한(Fat) 타이어를 장착한 자전거가 팻바이크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과거 잠시 유행했던 ‘벌룬 타이어(Balloon Tire)’를 장착한 비치크루저와 최신 유행의 팻바이크는 전혀 다른 자전거다. 초광폭 타이어를 장착해 눈과 진흙, 모래사장 같은 오프로드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자전거 지금의 팻바이크이기 때문이다. 팻바이크는 MTB의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장르로 봐야할 것이다.


팻보이(Fatboy)는 스페셜라이즈드가 선보인 팻바이크 모델이다. 다른 메이커에서도 팻바이크를 내놓고 있지만 이 자전거가 스페셜라이즈드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브랜드에 대한 지나친 편애일까? 하지만 팻보이는 충분히 기대해볼만한 자전거다. 북미 팻바이크 챔피언 네드 오버랜드가 탔던 자전거가 바로 스페셜라이즈드 팻보이 SL이고, 이번에 시승할 팻보이 역시 같은 프레임과 포크, 타이어를 장착한 자전거니 말이다.
 

‘캡틴’ 네드 오버랜드
 

: 약 25년 전 / 지금

네드 오버랜드는 90년대 팀 스페셜라이즈드의 주장이자 간판스타로, 지금의 MTB 세계선수권대회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NORBA(북미산악자전거연맹) 선수권 챔피언을 몇 번이나 차지한 전설적인 선수다. 스페셜라이즈드의 기술이사이기도 하며, 현재 60세가 넘었지만 여전히 활발한 레이스 활동을 하고 있다.


 

MTB의 유전자에 팻 타이어를 이식하다
 

앞에서 잠시 팻바이크의 계보가 MTB와 이어진다고 말했다. 팻보이의 특징을 이야기하는데 있어 무척 중요한 부분인데, 팻보이 프레임은 스페셜라이즈드 하드테일 MTB의 프레임 지오메트리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프레임 소재는 과거 스페셜라이즈드의 상급 MTB에 사용되었던 M4 프리미엄 알루미늄을 버티드 가공한 튜빙이며, 용접부위를 샌딩 해 매끄럽게 마무리했다.


포크는 풀 모노코크 구조의 스페셜라이즈드 FACT 카본소재. 서스펜션이 아닌 리지드 포크지만 본격적인 산악주행에도 문제없는 내구성과 가벼운 무게를 자랑한다. 미국 팻바이크 챔피언 네드 오버랜드는 서스펜션이 아닌 이 포크를 장착하고 레이스에 출전했고 포크의 성능을 증명했다.


팻보이에는 26×4.6인치 타이어가 장착된다. 규격만 놓고 보면 26인치 휠처럼 보이지만, 이 두꺼운 타이어를 장착하고 나면 실제 팻바이크 휠의 직경은 MTB의 29인치 휠과 맞먹는다. 스페셜라이즈드는 29인치 MTB의 명가이며 레이스에서 많은 경험을 축적한 메이커다. 라이더가 자전거를 가장 편하게 다룰 수 있을 때 최고의 주행성능을 낼 수 있다는 스페셜라이즈드의 철학, 설계 노하우가 팻보이의 프레임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실제로 팻보이는 육중해 보이는 덩치에 비해 무척 다루기 쉽고 누구나 재미있게 탈 수 있는 자전거였다.


컴포넌트는 MTB용을 장착했다. 스램 X7을 베이스로 2×10단 구동계를 탑재했는데, 크랭크는 스램이 아닌 사목스(SAMOX)의 팻바이크용 100mm 광폭 스핀들 크랭크를 장착했다. 팻바이크의 BB 폭이 넓어 기존의 MTB 부품과 규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프터는 스램 트리거(방아쇠 형태의 레버) 방식이 아닌 핸들 그립 전체를 회전시켜 변속하는 그립시프터를 장착했다. 눈밭을 질주하는 겨울철 라이딩을 즐길 때 두꺼운 장갑을 낀 손으로도 변속을 쉽게 하기 위함이다.

휠은 스페셜라이즈드가 팻보이 전용으로 개발된 폭 90mm의 팻보이 SL 알루미늄 림과 팻바이크용 폭 135/190mm 하이로 디스크허브로 빌딩 되었다. 육중한 바퀴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림의 안쪽부분을 삼각형의 패턴으로 잘라냈다. 지나치게 경량화 해서 내구성이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타이어 내부 공기압이 20psi로 일반적인 MTB의 절반 수준이기 때문에 림 안쪽에 질긴 나일론벨트를 덧대는 것으로 충분히 공기압을 견디며, 바퀴가 충격을 받았을 때 유연하게 반응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핸들바와 스템은 스페셜라이즈드 제품. 프레임을 비롯하여 팻보이에 장착된 여러 컴포넌트에 산을 형상화한 무늬가 페인팅 되어 멋스러움을 더했다. 라이드매거진이 시승한 팻보이에는 텍트로 드라코 디스크 브레이크가 장착되었지만, 실제로 판매되는 2015 팻보이에는 이보다 상급의 컴포넌트인 텍트로 제미니 디스크브레이크가 장착되었다.


자전거 부품 중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스페셜라이즈드 팻보이를 가장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부품은 역시 타이어다. 팻보이에는 스페셜라이즈드가 직접 개발한 그라운드컨트롤 팻(Ground Control Fat) 타이어가 장착되는데, 오프로드에서의 주행성능이 아주 훌륭하다. XC용으로 적합한 패턴이지만 워낙에 직경이 크기 때문에 타이어 노브 사이의 간격이 넓어 진흙이나 눈이 끼어 뭉치지 않는다. 여름과 겨울 산을 달리기에 모두 적합한 타이어다. 게다가 개당 무게는 1450g ‘가벼운’ 타이어다.

‘1450g짜리 타이어가 가볍다고?’라며 놀라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인 MTB용 경량타이어 중에는 무게가 300g밖에 안 나가는 것도 있으니 이에 비하면 무거운 게 맞지만, 저가형 팻바이크에 장착된 타이어의 무게는 2kg이 넘는 것도 있다. 스페셜라이즈드 그라운드 컨트롤 팻 타이어는 충분히 경량이라 부를 만하다. 앞뒤 타이어 무게에서만 1kg이 가볍다는 것, 실제 자전거를 탔을 때의 가속성능 차이가 어마어마할 것이다. 게다가 스페셜라이즈드 팻보이는 바퀴도 경량화 했다. 휠과 바퀴는 내구성에 문제가 없다면 무조건 가벼울수록 좋다.


 

예상보다 뛰어난 성능, 빼놓을 수 없는 재미
 

팻보이를 끌고 산으로 갔다. 서울 근교 우면산 능선 길을 따라 달렸는데, 간혹 마주치는 등산객들마다 두꺼운 타이어를 보고 깜짝 놀란다. 팻바이크치고는 가볍다고 해도, 일반적인 MTB와 비교하면 묵직하기 때문에 힐 클라임에서 엄청난 성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비에 젖어 미끄러운 진흙이 덮인 언덕은 바퀴가 잘 미끄러지지 않아 일반적인 MTB보다 훨씬 잘 올라간다. 타이어 폭이 넓어 옆으로 잘 넘어지지 않기 때문에 가벼운 저속기어로 천천히 언덕을 오르더라도 보통의 MTB보다 균형 잡기가 훨씬 쉽다.


팻보이의 진가를 느낄 수 있는 길은 다운힐이다. 낙엽과 진흙이 덮인 미끄러운 길, 나무계단, 돌덩어리가 굴러다니는 거친 길을 거침없이 질주해도 불안하지 않다. 두꺼운 타이어가 서스펜션처럼 노면의 충격을 흡수해 승차감이 부드럽다. 사실 이 타이어는 세팅이 중요한데 공기압이 지나치게 높으면 충격을 받을 때마다 자전거가 통통 튀어 오른다. 반면 지나치게 공기압이 낮으면 노면저항이 높아져 땅이 타이어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처럼 무겁게 느껴질 것이다. 적정 공기압은 라이더의 체중에 따라 다른데 대략 10~15psi 전후로 원하는 승차감이 나오도록 조절하는 것이 무난하다.

예전에 저가형 팻바이크를 시승했을 때 ‘코너에서 회전하는 방향 안쪽으로 상체에 체중을 실어’ 핸들을 돌렸다고 쓴 적이 있었다. 저가형 팻바이크의 타이어와 휠 무게가 워낙 무거웠던 탓이다. 하지만 팻보이는 그럴 필요 없다. 그냥 일반적인 MTB 같은 기분으로 타면 된다. 핸들링이 가볍고, 장애물 앞에서 자전거를 공중으로 띄워 올리기도 쉽다.


넓은 타이어 덕에 잘 미끄러지지도 않아 거친 싱글트랙에서도 안정적인 주행성능을 느낄 수 있다. 평소라면 피해 다녔을 나무뿌리 앞에서 그냥 앞 타이어를 밀어 넣었지만 아무 일 없이 타고 넘어간다. 자신감이 붙으니 노면의 장애물이 만만해보이기 시작하고, 스피드를 높이는데 무서움이 없다. 코뿔소처럼 거침없이 달리지만 주행감을 놓고 보면 날뛰는 망아지에 가깝다. 육중한 덩치에 비해 가볍고 신나게 탈 수 있는 자전거다.


상상력이 풍부한 MTB 라이더라면 이미 팻보이의 주행감이 어떨지 ‘감’을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기회가 되면 꼭 시승해보라 말하고 싶다. 특히 MTB 초보자에게 권한다.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에 환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평소 가지 못했던 험한 길을 ‘너무나 쉽게’ 주파하는 모습에 충격 받을지도 모른다. 스페셜라이즈드 팻보이는 기대 이상의 성능과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주는, 라이더를 흥분시킬만한 멋진 자전거다.




 

스페셜라이즈드 팻보이 제원
 

프레임 : 스페셜라이즈드 M4 프리미엄 알루미늄 버티드, 190mm 허브 스페이싱
포크 : 스페셜라이즈드 FACT 카본 풀 모노코크, 테이퍼드 스티어러, 135mm 허브 스페이싱
크랭크 : 커스텀 사목스, 2×10, 100mm CNC 스핀들
시프터 : 스램 S-시리즈 그립시프트 10단
앞 디레일러 : 스램 X7, 로우 다이렉트 마운트
뒤 디레일러 : 스램 X7 타입2
카세트 : 선레이스 11-36, 10단
체인 : KMC X10L, 미싱링크
브레이크 : 텍트로 제미니 유압 디스크
타이어 : 스페셜라이즈드 그라운드컨트롤 팻, 26x32“, 120TPI, 폴딩비드
허브 : 스페셜라이즈드 MTB 하이로 디스크, QR, 32h
림 : 스페셜라이즈드 팻보이 SL, 90mm 싱글월, 32h
스템 : 스페셜라이즈드 3D단조알루미늄, 6도 라이즈
핸들바 : 스페셜라이즈드 로우라이즈 더블버티드 6061
헤드셋 : 1-1/8, 1-1/2 테이퍼드, 실드카트리지 베어링
안장 : 스페셜라이즈드 보디지오메트리 마운틴, 143mm
시트포스트 : 알루미늄 2-볼트 헤드, 30.9mm, 12.5mm 오프셋
사이즈 : S, M, L, XL
색상 : 글로스 블랙/골드/화이트, 새틴 아미 그린/포레스트 그린
가격 : 247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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