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가 다수를 대변할 수 있을까. 적어도 인터넷 속 세상에선 가능해 보인다. 여러 정보와 생각이 모이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개인의 ‘주관적인’ 의견이 많은 까닭에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차에 대한 평가, 기업에 대한 평가가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실제로 문제가 있느냐”며 묻는 사람도 꽤 있고, 인터넷 여론을 무작정 믿고 차를 샀다가 후회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자동차 회사 외에도 차 구매를 앞둔 사람들 입장에서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기아자동차가 내놓을 ‘신형 K5(프로젝트명 JF)’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일부 네티즌들은 디자인 변화폭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런 와중에 기아차의 CDO(최고 디자인 책임자)인 피터슈라이어 사장은 구형의 헤리티지를 계승하고 디테일의 완성도를 높여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디자인을 완성했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은 2015서울모터쇼에서 겉모양이 공개돼 무대 위에 올려진 것을 봤을 뿐, 일반적인 눈높이와 일반적인 환경에서 꼼꼼히 따져본 사람은 기아차 관계자 말곤 없을 거다. 인테리어도 그렇다. 북미형 제품의 인테리어 이미지가 공개됐지만, 실제로 타본 사람은 기아차 연구원 외엔 없지 않을까.
그래서 <라이드매거진>은 기아자동차와 함께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신형 K5의 디자인 품평회를 진행했다. 디자인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잠재적 소비자들이 모인 집단을 찾던 중 홍대 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낙점됐고, 설문조사(정량, 정성)에 응한 학생들은 총 43명으로 2학년 22명, 3학년 15명, 4학년 4명, 무응답 2명이다.
여전히 ‘얼굴 값’ 하는 구형 K5…
품평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신형 K5를 어떻게 봤을까. 지난 5월16일, 이들을 대상으로 신형 K5의 외관을 직접 살펴보게 한 뒤 소감을 물었다.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신형 K5의 가장 큰 걸림돌은 구형의 명성이다. 구형 K5 (외관)디자인에 대한 정성평가(주관식)에서 대부분 참가자들은 깔끔하고 질리지 않는, 시간이 지나도 변함 없는 디자인(Timeless) 디자인이라 답했고, 혁신성을 높게 평했다. 그야말로 호평 일색. 새로 출시될 모델로선 넘어야 할 산이 꽤나 큰 셈이다.
여러 세대에 걸쳐 비슷한 생김새를 이어온 브랜드를 떠올린다면 단연 포르쉐가 으뜸이다. 이 회사의 디자인 총괄 마이클 마우어 부사장은 몇 년 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포르쉐를) 차라리 새로 디자인하는 편이 더 쉽지 않겠느냐”면서 “정해진 틀 안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 작업은 디자이너들에겐 큰 도전이자 고충”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 신형 K5의 디자인에 참가한 기아차 디자이너도 “신형 K5는 ‘숙제’ 이자 ‘도전’”이었다고 전했다. 디자인에 있어 ‘전통’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결코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서 기아차는 구형 K5의 모양을 이어가는 대신 두 가지 디자인을 함께 운영하는 새로운 전략을 편다. 모던함을 강조한 MX와 스포티함을 강조한 SX 모델이 예다.
신형 K5의 듀얼 디자인, 디자인 정체성 계승에 만족
신형 K5에 대한 정량평가(객관식)에선 5점 만점에 3.95점으로 대체로 만족한다는 답이 많았다. 차가 길어지며 달라진 비례감 변화에도 긍정적인 답(3.8점)을 내놨고, 기아차 아이덴티티의 핵심인 ‘타이거 노즈 그릴’에 대한 평가도 4.0점으로 좋게 평했다.
듀얼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3.8점으로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세부 모델 평가에선 MX가 67%의 선호도를 보여 33%의 SX보다 높은 만족도를 얻었다. 신형 K5는 후면부 디자인 만족도가 높았고, MX가 SX보다 전면부 디자인 조화가 좋다는 평이 많았다.
아울러 학생들은 디자인 정체성 계승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4.3점)을 보였다. 구형과 비교해 신형의 디자인이 변화가 크지 않다고 평가하기도 했지만, 디테일과 볼륨감, 비례감 변화로 구형의 전통을 잘 계승했다는 평이 많았다. 특히 앞모양 변화와 사이드 글라스의 위치 변화에 대한 긍정적인 언급이 많았다.
‘헤리티지’의 시작 K5, 새로운 도전
2010년, ‘K5’가 처음 출시된 이후 국내외에서 디자인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고, 소비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결국 기아차는 새 차를 준비하며 이런 구형의 성과를 계승, 발전시키는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또한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이번 평가에 참가한 참가자들도 이런 노력을 공감하고, 인정하며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물론 아직 출시되지도 않은 새 차의 성패를 속단하긴 이르다. 인테리어와 파워트레인 등 여러 요소가 남아있다. 특히 기아차는 정제된 조형 요소로 무장한 인테리어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학생들도 외장 디자인을 제외하고 신형 K5에 가장 기대하는 요소(복수응답)로 ‘내장 디자인’을 꼽았다. 그 다음이 ‘안전’이었다. 결국 두 요소가 구형보다 얼마나 발전했는지 여부에 따라 신형의 성패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운송기기디자인 전공자 5인방 인터뷰
- 한국적인 디자인 정체성 찾길…
Q. 신형 K5를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드나.
-왕현민(4학년): 비례감이 좋다. 휠베이스가 늘어나면서 존재감도 커졌다. 사진으로 표현이 안 되던 부분이 있는 거 같다. 실물로 보니 다르다. 아마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리라 본다.
-이계용(4학년): 트렌드 측면에서 봤을 때 볼륨감이나 디테일 강조를 잘 한 거 같다. 스탠스 봤을 때 후드, 리어 볼륨도 커지고 오버행도 달라졌다. 그래서 자세가 좋아 보인다. 볼륨이 극대화돼 한층 중후해진 느낌이다. 듀얼 디자인 전략도 좋아 보인다. 타깃이 늘지 않겠나.
-박찬현(3학년): 구형 K5의 명성이 자자해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모델을 놓고 기아차가 고민 많이 했을 거 같다. 솔직히 처음엔 멀리서 한눈에 (신형 K5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는데. 가까이 보니 디테일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이상석(3학년): 구형이 명작이라 신형이 부담 컸을 듯싶다. 실제로 보니 여러 문제들이 잘 해결된 것 같다. 안 바뀐 거 같으면서도 바뀌었다. 더 커 보이고 길어 보인다. 잘 정돈 된 거 같다.
-정하운(2학년): 사이드 글라스가 뒤로 이동하고, 후드 높아지고, A필러 라인도 벌어졌다. 차가 더 커 보이고, 듬직해 보인다.
Q. 신형 K5는 디테일에 신경 많이 썼다는데.
-왕현민: 평소에 스케치 하다 보면 양산형 디자인으로 넘어갈 때가 힘들었다. ‘정해진 틀 안에서 어떻게 새로운 것 표현할 수 있을까’라고 한다면 그게 정말 어려운 작업이 아니겠나. 신형 K5는 그래서 디테일에 더 집중한 것 같다.
-박찬현: 듀얼 디자인, 즉 MX, SX로 나눴는데 조금 더 과감했어도 좋았을 거 같다. 문득 든 생각인데, 메르세데스-벤츠의 전략도 참고하면 어떨까 싶다. 아방가르드(과감하고 공격적인 AMG 스타일링)와 엘레강스(전통적인, 중후함을 강조한 스타일링)로 스타일을 크게 구분하고 있어서다.
-이상석: 구형 K5 는 매우 공격적인 차 디자인에 비해 패밀리 세단 성격을 버리지 못했었다. 이번 신형은 차이가 줄어들었을 거라 기대하고 있다. (실내공간이 넓어지면서) 거주성도 좋아졌을 거 같다.
Q. 디자인 특징을 꼼꼼히 살펴 봤을 텐데.
-왕현민: 신형은 글라스 면적이 넓어지고 위치도 바뀌었다. 그리고 그동안 세단은 완만한 지붕 선을 보였는데, K5는 A필라부터 시작해 B필라를 정점으로 길게 뻗어 내려오는 지붕의 선은 스포츠카의 요소다. 패밀리 세단으로선 처음일 것. 분명 구형의 디자인은 아이코닉한 디자인이다. 이를 다듬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 소비자 평가는 어떨지 모르겠다. 1세대만큼 성공하지 못한다면, 다음 K5는 핵심 요소만 골라서 그거 위주로 디자인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상석: C필러 쿼터글라스가 인상적이다. 리어 글라스와 이어지는데 깔끔해 보인다. 마치 지붕이 떠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차가 길고 커졌는데도 가벼워 보이게 만드는 요소다. 기아 GT 컨셉트에서 본 거 같다. 그리고 구형에 비해 바뀌는 게 없다는 평가는 ‘국내시장’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이 높아서 차 판매대수도 그만큼 많다. (디자인이) 그만큼 쉽게 질릴 수 있다는 얘기다. 아마 미국이나 유럽에선 질리지 않을 거다.
-박찬현: 현대 쏘나타도 YF에서 LF로 넘어가며 외관을 싹 정리 해서 출시했다. K5는 외관을 살짝 바꿔서 나왔다. 각자의 전통을 잇는 게 아닌가 싶다. 세대를 이어가는 느낌은 줘야 한다고 본다. 헤리티지를 만들 필요가 있지 않겠나. 이런 작업은 중요할 거 같다.
Q. 디자이너 지망생으로서 자동차 디자인에 대해 각자 한 마디씩 해 달라.
-박찬현: 한국 자동차 디자인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국 라이선스에 의존하지 않았나. 최근엔 기아가 디자인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우며 주목 받았다. 앞으로 한국적인 디자인에 대해 고민해보고, 그걸 이어가야 하지 않나 싶다.
-왕현민: 기아 K 시리즈는 유럽차 이미지를 너무 강하게 부각시키지 않았나 싶다. 인테리어 레이아웃 하나하나가 유럽차 느낌을 받는다. 우리나라만의 요소가 무엇인가 생각하면 좋겠다. 선을 그어놔도 사람마다 다르게 본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반영하면 좋겠다.
-이상석: 벤츠 고든 바그너 디자인총괄 부사장이 전에 얘기한 “기아차 디자인은 멋있지만 유럽차 같다”는 말이 생각난다. 이건 앞으로 과제다. 한국적인 게 무엇인지 생각해야 할 시기다. 단순히 난을 치는 등의 것은 1차적인 거다. 조형적인 거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한다거나 어느 쪽이든 우리나라니까 가능한 걸 찾아야 한다. 일본은 80년대에 이미 해내지 않았나.
-정하운: 많이 배우는 중이고, 차 좋아하는 입장에서 흥미로운 시기다.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가 짧은데도 생산량도 많고, WRC같은 대회도 참가하고, 점점 발전하는 거 보니 뿌듯하다.
-이계용: 디자인적인 거 말고도 문화(예를 들어 술과 춤)를 다양하게 체험하고, 디자인으로 반영할 수 있는 부분 찾아내고 싶다.
글
박찬규 star@ridemag.co.kr
제공
라이드매거진(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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