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라이즈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 대부분의 사이클링 팬들은 스프린터를 위한 레이스바이크 벤지나 에어로 다이내믹 헬멧인 이베이드처럼 프로 레이스에 등장해 승리를 이끌어 냈던 영웅들의 강력한 무기들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영웅들의 승리 뒤에는 숨은 공신이 있다. 바로 타이어다. 오늘날 최고의 스프린터로 불리는 마크 카벤디쉬(Mark Cavendish)와 개인독주 월드챔프 토니 마틴(Tony Martin) 모두 스페셜라이즈드의 에스웍스 터보(S-WORKS Turbo) 타이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토니 마틴은 에스웍스 터보 클린처 모델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 2013 개인 타임트라이얼 월드챔피언 토니 마틴의 자전거에는 터보 타이어 클린처 프로토타입이 장착되었다.

자전거는 가히 ‘기승전 타이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이어는 라이더가 다리로 뿜어내는 출력의 전부를 지면에 전달해 자전거가 땅을 박차고 나가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아무리 뛰어난 실력과 장비를 갖추 라이더도 결국 마지막 방점을 찍는 타이어가 좋지 못하면 라이더와 자전거 모두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지면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접촉이 이루어지는 타이어는 승차감에 영향이 가장 큰 부품이기도 하다.

 

산악자전거의 넓은 타이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얇은 로드바이크의 타이어는 빠른 속도를 대변하는 상징과 같이 느껴진다. 얇은 타이어가 빠를 것이라는 맹신은 거기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드바이크 타이어들은 더 넓어지길 원하고 있다.



먼저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라도 노면은 불규칙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리 몸이 체감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노면의 충격은 끊임없이 타이어의 모양을 찌그러트리고 여기서 에너지의 손실이 발생한다. 라이더는 타이어의 변형에 의한 저항을 극복하고 자전거를 계속 앞으로 주행시키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타이어의 변형이 적은 것이 곧 라이더가 에너지를 절약하는 길, 즉 더 빠르게 더 멀리 달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변형을 최소화 하기위해 공기압을 최대까지 주입한다면? 돌덩이 마냥 단단해진 타이어를 100km 이상 긴 거리를 달려야 하는 로드레이스에서 사용한다면 골인지점에 다다르기도 이전에 온갖 노면의 충격을 그대로 전달 받은 레이서의 몸은 녹초가 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튜브 파손의 위험도 높다. 아주 짧은 단거리 경기가 아닌 이상 노면의 충격을 흡수하는 승차감을 유지하는 것 또한 타이어의 중요한 역할이며, 최근에는 좁고 단단한 타이어 대신 상대적으로 공기압을 조금 낮춘 폭이 넓은 타이어가 대두되고 있다.



넓은 사이즈의 타이어는 앞뒤는 짧고 옆으로 넓은 모양으로 지면과 접촉이 이루어진다. 불규칙한 노면에서도 구조의 변형이 적어 에너지 손실을 줄일 뿐 아니라 좁은 타이어보다 더 낮은 공기압에서도 주행이 가능한 이점도 있다. 더 낮은 공기압은 뛰어난 승차감을 제공 한다.

레이스용 타이어가 주행성능을 위한 사이즈 확장과 저항을 주지 않을 정도의 무게 사이에서 찾은 절충안은 바로 폭 24mm와 26mm의 타이어다. 현재 프로 펠로톤에서 폭 20mm 타이어는 멸종하였다. 24C가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고 파리-루베(Paris-Roubaix)와 같은 거친 노면을 달리는 원데이 클래식에서는 28C, 심지어 30C 타이어까지 등장한다. 스페셜라이즈드의 혁신적 제품에 대한 정신, 과연 어떤 타이어가 좋은가에 대한 물음 그리고 현장에서의 과학적인 접근이 넓은 타이어가 더 빠르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게 되었다.

 

‘더 넓은 타이어가 빠르다’는 것이 구조적 측면에서 타이어를 이해한 새로운 제안이라면 그립톤 컴파운드는 화학적으로 타이어의 성능을 설명하는 제안이다. 컴파운드는 타이어를 구성하는 고무와 각종 약품을 일정비율로 배합한 물질을 의미한다. 낮은 구름저항과 높은 접지력 그리고 내구성, 이 세 가지 요소를 하나의 컴파운드에 모두 담아내는 것은 타이어 개발자들의 영원한 숙제와 같다.



2015년 스페셜라이즈드가 새롭게 리뉴얼한 에스웍스 터보 타이어는 그립톤이라는 새로운 컴파운드를 사용해 만들었다. 이전 버전의 터보 타이어 보다 30% 가량 구름저항을 줄인 그립톤 컴파운드는 기존의 컴파운드와 비교시 40km 거리의 타임트라이얼 경기에서 70초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한다. 단 1초 차이로 순위가 뒤바뀌는 타임트라이얼에서 1분 10초를 줄인다는 것은 엄청난 결과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월드챔피언을 세 번 차지한 독주 전문가 토니 마틴 선수가 스페셜라이즈드 터보 타이어를 선택한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반면 젖은 노면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Grip, 즉 접지능력은 30% 향상되는 동시에 내구성을 그대로 유지하는데 성공하였다. 앞서 설명한 낮은 구름저항, 높은 접지력, 내구성 이 세 가지 지표는 서로 상반되는 반비례적인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이같은 스페셜라이즈드 타이어의 개선은 놀라운 것이다.



블랙벨트(BlackBelt)는 타이어의 내구성을 높이는 벨트 구조로 일종의 보호 장치로 볼 수 있다. 이 '검정 안전벨트'는 유리조각이나 못 같은 날카로운 물질이 타이어를 뚫고 들어와 튜브를 파손시키는 것을 막는다. 방탄복을 비롯하여 강한 내구성이 필요로 되는 직조물에 사용되는 아라미드 섬유로 만들어진 블랙벨트는 타이어 트레드와 카커스 사이에 깔려 있다.

 

안정적인 주행은 라이더의 자신감에서 나온다. 자전거와 하나가 되어 내 몸의 일부처럼 컨트롤 하는 것은 믿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내리막과 코너링 같은 까다로운 조건에서 타이어를 신뢰하는지 여부는 더욱 중요하다.



700X 24C 사이즈 터보 타이어를 장착하고 라이딩을 나섰다. 오늘의 목표는 과감한 코너링과 내리막을 통해 터보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이다. 아직도 22C 사이즈 타이어가 익숙하지만 24C의 외관은 부담스럽게 넓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타이어의 변화와 체감은 안장에 올라 페달을 밟기 시작하면 바로 느낄 수 있다. 22C와 비교했을 때 무겁거나 답답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거친 도로를 지날 때 주는 안정감이 만족감을 준다.    



본격적인 속도가 붙기 시작하는 가파른 내리막과 곧바로 이어진 급격한 코너링이 시작되는 구간에 왔다. 짧은 고갯길을 여러 번 왕복해 가며 테스트 라이딩을 진행하였다. 오르막을 오를 때마다 반복하여 급격한 가속을 해도 타이어가 미끄러지지 않는다. 24C가 주는 넓은 접촉면적과 접지력이 뛰어난 크립톤 컴파운드는 노면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점점 코스와 타이어의 감각에 적응해 가며 자전거를 눕히는 기울기와 코너링에 진입하는 속도를 늘려보았다. 뒷바퀴가 노면에서 미끄러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터보에겐 기우에 불과하다. 코너링에 진입 하면서 자전거를 기울일 때부터 다시 직선도로로 복귀하면서 자전거가 반등할 때 까지 깔끔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자동차가 한계를 만날 때 타이어의 능력이 시작된다는 광고 문구가 떠오른다. 자전거 역시 타이어는 라이더의 한계 그 이상을 이끌어내 줄 장비다. 믿을 수 있는 타이어는 자신감을 준다. 그리고 자신감은 라이더에게 내면의 불안감으로 극복하지 못했던 한계를 뛰어넘게 해줄 것이다.

아직 코너링과 내리막길에 자신감이 없는 라이더라면 내 로드바이크에 달려 있는 타이어를 확인해 보자. 강렬한 붉은 'S'가 적혀 있지 않다면 스페셜라이즈드 스토어에 달려가 타이어를 교체하자. 자전거는 터보차저를 장착한 듯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