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바다가 한눈에 펼쳐지는 강원도 양양. 이곳에 가려면 서울부터 춘천까지 곧게 뻗은 고속도로와 한계령을 휘감는 와인딩 코스를 지나야한다. 차의 성능을 체험하기에 제격이다. 이번 여행, 아니 시승은 푸조의 해치백 308과 함께했다. 꽤 매력적인 차다. 세련된 디자인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수년간 모터스포츠를 통해 축적된 기술력은 탄탄한 주행성능을 뽐낸다. 또 지난해엔 ‘2014 유럽 올해의 자동차’에 선정되기까지 했다. 이런 차와 함께하려니 아침부터 눈이 절로 떠졌다.

 

푸른 바다를 앞두고

 

 

여행을 떠나기 전 해야 할 일이 있다. 코스 확인이다. 컴퓨터를 켜고 지도를 찾아봤다. 서울에서 양양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타다 44번 국도로 빠지는 길이었다. 머릿속으로 코스를 상상해봤다. 생각만으로도 짜릿했다.

 

주말 아침 일찍부터 잠들어 있던 308을 깨웠다. 신호등이 많은 시내를 벗어나 서둘러 올림픽대로에 올랐다. 다행히 차가 많지 않았다. 쭉쭉 뻗은 아스팔트를 보니 절로 발에 힘이 들어간다. 기분마저 상쾌하다. 하지만 들뜬 기분을 자제시키는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과속에 주의하세요!”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다소 거친 시멘트 바닥이 308을 맞이한다. 길은 여전히 뻥 뚫려있다. 일찍 나오길 잘했다. 내비게이션을 힐끔 쳐다보니 고속도로가 끝나는 춘천까지 정체 구간이 없다. 기분이 좋다. 가속 페달을 깊숙이 밟았다. 힘이 좋다. 30.6kg·m의 최대토크가 앞바퀴를 강하게 굴린다. 시속 100km, 120km, 속도계 바늘이 계속 변한다. 때마침 오디오에선 신나는 걸그룹 노래가 흘러나왔다. 음이탈도 두렵지 않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여행 분위기를 한껏 냈다.

 

얼마나 달렸을까. 아침 일찍부터 일어났을 때의 뻐근함이 느껴진다. 가평 휴게소에 들렀다. 군것질을 하려다 음료만 하나 사서 차로 돌아왔다. 양양의 푸른 바다를 조금이라도 더 즐기려면 시간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지루한 고속도로. 슬슬 운전이 질려올 때쯤, 갑자기 하늘에서 장대비가 쏟아져 내렸다. 비 소식이 있었지만 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다. 들떠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이런. 비는 어느새 우박으로 바뀌어간다. 하늘에서 왕소금이 쏟아지는 듯했다. 굵은 알갱이들이 앞 유리와 파노라마 선루프를 때린다. 소리가 시끄럽다. 유리가 깨지진 않을까 두려움이 밀려왔다. 도로는 이내 물바다로 변했고,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세워진 차가 점점 늘어갔다.

 

다행히 소나기였다. 괴팍했던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파란 하늘을 드러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날씨가 잠잠해지니 노면도 서서히 말라갔다. 거북이처럼 느렸던 차의 속도가 토끼처럼 재빨라졌다. 어느덧 차는 고속도로의 끝인 동홍천 IC에 다다랐다. 이제 반 정도 왔다.

 

와인딩 코스에 던져진 308

 

 

쭉 뻗은 고속도로와 달리 뱀처럼 구불구불한 44번 국도가 눈앞에 보인다. 이 길은 양양으로 가까워질수록 더욱 굽이졌다. 도로 양 옆에 있는 푸른 나무들은 점점 우거졌다. 강원도 스타일이다.

 

이 도로는 아름다운 산세를 등진 와인딩 코스가 펼쳐져 있다. 308의 코너링을 체험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이곳에서 꼭 한번 달려보고 싶었다. 주행 모드도 스포츠로 바꿨다. 버튼에 주황색 불이 들어오고, 인스트루먼트 패널 컬러가 흰색에서 강렬한 붉은색으로 변했다. 달릴 준비가 됐다고 알리는 것 같다.

 

 

가속 페달이 민감해졌다. 살짝만 밟아도 움찔움찔 속력을 내달라고 교태를 부린다. 차를 거세게 몰아붙여봤다. 6기통 스포츠카를 타는 착각이 들 정도다. 엔진-배기 사운드가 기가 막혔다. ‘분명 1.6리터 디젤엔진인데 이런 소리가 나다니...’ 계속 들어보니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다.

 

멋진 길과 풍경 탓일까 점점 심장 박동 수가 빨라졌다.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번갈아 밟아댔고, 스티어링 휠을 좌우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308의 정교한 핸들링이 빛을 발한다. 부드러운 하체와 좋은 타이어 덕에 도로에 찰싹 붙어 달리는 듯하다. 연속 헤어핀 구간에서도 망설임이 없다.

 

 

주변의 빼어난 풍경은 점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308의 짜릿한(?) 주행감각 때문이다. 앞을 바라보며 손과 발을 연신 움직여댈 뿐이었다. 순간 귀가 먹먹해져왔다. 어느새 고도가 높은 곳까지 올라왔다. 해발 1,004m에 위치한 한계령 휴게소(44번 국도 정상)에 다다랐다. 이곳의 자랑은 산수화에서나 볼법한 첩첩산중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구름만 잔뜩 껴 있었다.

 

이제 내리막이다. ‘내리막길 브레이크 파열사고 주의’란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괜스레 겁이 났다. 속도를 최대한 줄였다. 오르막을 올라올 때완 다르게 얌전한 고양이가 됐다. 그러다가도 한두 번씩 가속 페달을 밟아댔다. 속도가 순식간에 높아졌지만, 308의 강한 제동력덕분에 코너를 안정적으로 돌아나갔다. 긴장과 집중이 계속되자 손에 살짝 땀이 차올랐다.

 

 

탁 트인 도로가 308을 맞이한다. 양양에 도착했다. 바다가 가깝다. 오랜만에 볼 풍경이라 그런지 마음이 들떴다. 그렇다 해도 일은 해야 하니 백사장에 차를 올려봤다. 단단치 못한 모래바닥에 차를 빠트리고 싶진 않아서 아주 살짝 들이댔다. 때마침 하늘을 뒤덮고 있던 짙은 구름이 걷히고 따스한 햇살이 땅을 비췄다. 하얀 308이 밝게 빛났다. 아담한 차체 덕분인지 차의 전체적인 생김새가 귀엽게 느껴졌다.

 

프랑스산 해치백을 살펴보다

 

 

목적지에 오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제야 양양까지 든든한 발이 되 준 308이 눈에 들어왔다. 좌우로 널찍한 그릴과 날렵한 헤드램프를 지닌 앞모양이 꽤 멋스럽다. 리어램프 디자인도 독특하다.

 

 

실내도 자세히 살펴봤다. 푸조 아이-콕핏(PEUGEOT i-Cockpit)이라 불리는 독특한 인테리어 디자인이 보기 좋다. 한계령을 통과할 때 만족스런 그립감을 줬던 작은 스티어링 휠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깜찍한 휠은 처음이다. 불쑥 솟은 ‘헤드업 인스트루먼트 패널’은 독창적인 생김새다. 계기반을 위로 옮기고 대신 휠 사이즈를 줄인 거다. 운전의 즐거움을 추구하면서도 안전을 고려한 배려다. 센터페시아는 다양한 기능이 들어간 9.7인치 터치스크린 덕분에 생김새가 간결하다.

 

불필요한 버튼도 싹 사라졌다. 에어컨, 오디오, 내비게이션 등 각종 편의 장비는 스크린 안에 깔끔한 그래픽으로 구현되어 직관적이다. 각 시스템은 모두 한 번의 터치로 작동된다. 검은색 직물시트는 화려하진 않지만 담백한 맛이 있다.

 

다시 일상으로...

 

 

하루를 푹 쉬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 이번 여행엔 운이 따른 걸까. 올 때와 마찬가지로 시원하게 뚫린 도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서울을 향해 달리고 또 달린다.

 

이틀에 걸쳐 경험한 푸조 308은 훌륭한 여행 파트너였다. 약 600km이상을 함께 달렸다. 한참을 달려도 쉽게 줄어들지 않는 연료 게이지, 답답함 없는 가속력과 안정적인 코너링, 그리고 단단하지만 딱딱하지 않은 서스펜션 세팅이 유쾌한 여행길을 만들어줬다.

 

비록 홀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오히려 차와 더욱 긴밀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거기다 막힘없는 도로 상황, 양양의 훌륭한 자연 경관, 그리고 308의 감칠맛 나는 주행성능이 더해져 짧지만 즐거운 시간을 만끽했다. 추억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저작권자 © 라이드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