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이 섬이고 도로와 골목은 강과 운하라면, 푸른 하늘과 반짝거리는 햇살아래 작은 배를 타고 섬 사이를 유유히 흘러가는 상상을 해보지만 팍팍한 일상에서 이런 여유를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시간이 없는 것보다 뭘 할지 망설이고 준비하는 사이에 여유가 흘러가버린다.
자전거의 안장에 앉아 페달을 밟는 데는 거창한 준비가 필요 없다. 그저 거리를 나가 도로 위를 활강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자극이 된다. 몸에 달라붙는 스포츠웨어와 장비로 온 몸을 감싸지 않더라도 자전거와 함께라면 일상 속 평범한 순간들을 더욱 멋지고 아름다운 시간으로 바꿀 수 있다.
문득 자전거 욕심이 났다. 오후 간식을 위한 커피숍과 도넛가게 테이크아웃, 우체국 택배발송이나 은행 공과금 납부에 이르기까지 잠시 집이나 사무실을 벗어나 거리를 누비는 시간들이 제법 된다. 걸어서 다녀오기엔 멀지만 차를 타고 가기엔 복잡하고 로드바이크나 MTB를 타고선 ‘몸만’ 다녀와야 하니 불편하다. 이런 일상 속 장소들을 편하게 누비기 위한 자전거 한 대가 필요했다.
스타일리시하면서도 실용적인 자전거를 찾아보았다. 이왕이면 클래식한 스타일이 더 좋겠고 평상복과 잘 어울리는 캐주얼한 자전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하이브리드 자전거에 어울리지도 않는 바구니나 짐받이를 달기는 싫고, 특별한 디자인의 모델을 찾다보니 트렉의 시티바이크 라인업이 눈에 들어왔다.
첼시 9, 믹스트 스타일의 캐주얼한 시티바이크
트렉의 시티바이크 라인업은 캐주얼한 스타일의 디스트릭트, 출퇴근과 같은 이동에 초점을 맞춘 링크, 보다 스포티한 성능의 크로스립 3가지 모델이 있다. 이번에 시승하고자 하는 모델은 멋지면서도 실용적인 일상용 자전거였기에 디스트릭트 모델을 선택했다. 디스트릭트는 탑튜브가 낮은 믹스트 스타일 프레임의 첼시 9(Chelsea 9)와 다이아몬드 프레임의 스틸 디스트릭트 두 모델이 국내 출시되는데 부품사양과 가격이 같지만 프레임의 모양이 다르다.
트렉코리아를 방문하니 담당자가 다이아몬드 프레임의 스틸 디스트릭트 스틸을 기자에게 권했다. 첼시 9는 여성용 자전거라는 이유다. 하지만 기자의 눈에는 차분한 아이보리컬러에 갈색 가죽느낌으로 포인트를 준 첼시가 훨씬 예뻐 보인다. 딱딱하고 스포티한 디스트릭트보다 첼시 9의 디자인에서 여유가 더 느껴지는 듯하다.
흔히 바구니 달린 자전거라고 하면 여성용 자전거를 떠올린다. 그런데 국내에서 판매되는 여성용 자전거는 대부분 속도를 내지 않고 달릴 것을 감안해서 만든 모델이다. 무척 무겁기 때문에 속도를 내기 어렵고 브레이크를 잡으면 삑삑거리는 소리를 내며 멈추는데,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즐거움을 누리기에는 성능이 많이 아쉽다. 하지만 첼시 9는 보기엔 얌전해도 제법 스포티한 성능을 지녔다.
프레임은 크롬몰리 스틸 소재로 만들어졌다. 일반적인 자전거보다 프레임을 구성하는 튜빙(금속 관)의 두께가 얇고 직선과 매끄러운 곡선이 조화되어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디자인이지만 굉장히 튼튼하다. 앞에서 언급했듯 첼시 9의 프레임은 믹스트 스타일인데, 가느다란 두 개의 경사진 튜빙이 탑튜브의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다이아몬드 형태의 프레임보다 자전거에 타고내리기 쉬운 것이 특징이다.
비가 내린 후의 젖은 길을 달릴 때도 흙탕물이 튀어 옷이 지저분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전거의 앞뒤 바퀴에는 펜더와 머드플랩을 장착했다. 일반적인 자전거에도 펜더를 따로 구입해 장착할 수 있지만, 첼시 9의 펜더는 프레임과 같은 컬러로 깔끔하게 도색되어 통일감을 이룬다. 아마 예전의 클래식 자전거라면 여기에 긴 치맛단이 바퀴에 걸리는 것을 막기 위한 커버와 체인가드가 설치되었겠지만 첼시 9에는 이 부분이 생략되어 심플한 느낌이다.
바구니는 낮고 넓은 타입으로 철사 망의 간격이 넓은 편이다. 가방이나 상자 같은 부피가 큰 물건들을 담고 이동하기에 편리할 것 같다. 물건을 간단히 고정할 수 있는 고무 밴드가 달려있지만, 아무래도 별도로 짐을 고정하기위한 고리가 달린 끈을 휴대하는 편이 편리할 것 같다. 헤드튜브에는 금색의 엠블럼이 달려있는데, 자세히 보면 클래식한 트렉의 옛날 로고를 재현했다.
클래식 스타일을 담긴 했지만, 구동계와 브레이크는 예전의 자전거들과 비교가 안될 만큼 성능이 우수하다. 헤이즈 CX 익스퍼트 기계식 디스크브레이크와 직경 160mm의 로터를 장착했다. 디스크브레이크를 사용해보지 않은 라이더들이 간혹 지나친 제동력에 대해 걱정하지만, 림브레이크보다 더 부드럽고 제동력을 가감하기가 쉬우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도 비온 뒤의 길을 달리며 자전거의 바퀴가 젖은 상태에서도 브레이크가 밀리는 일 없이 안정적이며, 긴 내리막길을 브레이크를 잡으며 천천히 내려가더라도 강한 제동력을 꾸준히 유지하기 때문에 초보자라도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구동계는 시마노 아세라 9단을 장착했다. 체인링이 한 장이지만 크기가 작고, 뒷바퀴에 장착된 9단 카세트스프라켓의 기어비 변화폭이 크기 때문에 평지에서의 경쾌한 주행과 언덕을 가볍게 오르는 등판력까지 도심을 쾌적하게 달리는데 충분한 주행성능을 갖췄다.
안장과 핸들그립은 가죽과 비슷한 질감의 소재를 사용했다. 본트래거 네뷸라 안장은 허리를 세우고 편안한 자세로 달릴 때 엉덩이 아랫부분을 넓게 받쳐주기 때문에 피로가 적으며, 핸들그립의 감촉은 부드럽고 안쪽에 쿠션이 있어 편안하다. 게다가 페달까지도 클래식한 스타일의 톱니모양 날과 캡으로 마무리된 제품을 장착해 멋스러움을 더했다. 이런 디테일한 부분의 마무리야말로 저가형 자전거와 고급 자전거의 가장 큰 차이다.
스튜디오 촬영을 위해 사무실에 세워둔 자전거를 보고 ‘이 자전거 한번 타볼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는 직원들이 제법 많았다는 것도 다른 자전거와 트렉 첼시 9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필자만 이 자전거가 예뻐 보였던 것은 아니었나보다. 사무실 바깥으로 타고 나가니 사람들의 시선을 제법 모은다.
물살을 가르는 배처럼 부드럽고 매끄러운 주행감
활처럼 뒤로 완만하게 휘어진 핸들바를 오랜만에 잡았다. 일반적으로 이런 타입의 자전거는 핸들바를 높게 세팅해서 타는 경우가 많지만, 로드바이크와 같은 스포츠용 자전거에 익숙한 필자에게는 다소 낮은 세팅이 더 익숙하게 다가온다. 일단 안장과 핸들바의 높이가 비슷하게 세팅하니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핸들 그립의 위치가 몸 쪽으로 가깝기 때문에 허리를 펴고 달리는 포지션을 취하게 되는데 상당히 편하다.
스포츠용 자전거를 주로 탔던 사람이라면 출발이 제법 묵직하다고 느낄 것이다. 스틸로 만든 프레임에 펜더를 비롯한 편의장비가 부착된 만큼 가벼운 자전거는 아니다. 그러나 톱니수 45T의 크랭크와 투어링바이크에 주로 사용되는 11-32T 카세트스프라켓의 기어조합은 자전거를 가속하는데 충분한 토크와 스피드를 제공한다.
자전거의 가속은 다소 더딘 편이지만 승차감에는 놀라게 된다. 자전거도로와 인도, 도로의 경계를 지나면서도 주행감의 변화가 크지 않다. 로드바이크나 미니벨로를 탈 때와 달리 인도 보도블록의 요철정도는 전혀 거칠게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핸들링의 느낌이다. 외관을 보았을 때는 전혀 스포티한 자전거라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포크레이크가 큰 편이며 무척 안정적인 주행감을 주지만, 의외로 핸들링에는 제법 민첩하게 반응한다. 허리를 세운 자세에서 높은 시야로 사방의 풍경을 바라보며 달리는 기분은 속도를 내기위한 스포츠용 자전거와 다른 새로운 상쾌함을 느끼게 해준다. 주행 성능에 대해 한마디로 평가하라면 편안하면서 무척 다루기 쉬운 자전거라 하겠다.
바구니의 유용성에 대해 말하라면 ‘평소 타고 다니던 로드바이크에도 바구니를 달고 싶다’ 이 한마디면 충분할까? 자전거를 타고 쇼핑을 한 다음 봉투를 핸들바에 주렁주렁 매달고 달리거나 한 손에 봉투, 남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달려본 라이더라면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문득 바구니 위에 동그란 구멍을 낸 판을 고정하고, 여기에 테이크아웃 커피 컵을 꽂아 배달하던 해외 라이더의 사진이 생각났다.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으니 커피와 간식 배달용으로 바구니를 개조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사무실에서 사용하기에 굉장히 유용하고 편리할 것 같다.
트렉 첼시 9는 평소에 자주 접하기 어려웠던 종류의 자전거였기 때문일까, 생각했던 것만큼 편안했고 상상했던 이상으로 재미있는 자전거였다. 어떤 길에서도 편안하고 느긋하게 달릴 수 있지만, 원한다면 속도도 낼 수 있다. 무엇보다 휴일에서 업무시간 중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가까이 둘 수 있는 자전거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첼시 9의 가격은 79만 9000원, 자전거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납득이 가지만 우연히 본 자전거가 예쁘다는 이유로 구입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럽다. 하지만 아주 특별한 사람에게 자전거를 선물한다면 트렉 첼시 9를 고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동안 했다. 남녀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세련되고 편안한 자전거를 원하는 이에게 트렉 첼시 9를 추천한다.
트렉 첼시 9 제원
프레임 : 트렉 커스텀 스틸 믹스트
포크 : 고장력강
크랭크 : 단조 알루미늄 3피스, 45T 체인링
시프터 : 시마노 아세라 M390, 9단
뒤 디레일러 : 시마노 아세라 M390, 9단
카세트 : 스램 PG-950 11-32T 9단
체인 : KMC X9
브레이크 세트 : 헤이즈 CX 엑스퍼트 기계식 디스크 브레이크, 160mm 로터, Tektro 알로이 레버
타이어 : 본트래거 AW1 하드케이스 라이트, 700x28c
허브 : 포뮬러 DC20/DC22
림 : 알루미늄 32h 더블월
스템 : 본트래거 레이스 라이트, 31.8mm, 7도
핸들바 : 본트래거 어반, 31.8mm, 25mm 라이즈
그립 : 커스텀 디스트릭트, 락온
헤드셋 : 1-1/8 스레드리스
안장 : 본트래거 H1 WSD
시트포스트 : 본트래거 알루미늄, 2-볼트 헤드, 27.2mm, 8mm 오프셋
사이즈 : 49, 53, 56(cm)
색상 : 카나리 옐로우, 화이트 골드
가격 : 79만 9000원
글
장낙규 rockyou@ridemag.co.kr
제공
라이드매거진(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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