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은 자전거의 스피드를 결정하는 것이 바퀴의 크기라고 믿었다. 국내의 한 의류브랜드 로고로 잘 알려진 앞바퀴가 큰 자전거 역시 큰 바퀴가 빠르다는 믿음에서 탄생한 자전거였다. 그러나 자전거에 변속기가 장착되면서 작은 바퀴로 얼마든지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 작은 바퀴를 장착한 자전거인 ‘미니벨로’를 고속주행용으로 꾸민 ‘미니스프린터’ 타입의 자전거는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미니스프린터는 비록 바퀴는 작지만 빠르게 질주하기 위해 태어난 자전거다. 미니벨로의 가장 큰 특징인 작은 바퀴를 제외하면 스포츠용 고성능 로드바이크와 같은 부품을 사용해 꾸민 자전거로, 빠르게 달리는 날렵함과 귀여운 외모를 겸비한 것이 특징이다.



2000년대 중반, 미니스프린터가 큰 인기를 얻었을 무렵 자전거를 즐겼던 라이더라면 이른바 ‘곰간지’나 ‘경량덕후’ 같은 칭호(?)를 기억할 것이다. 작은 자전거에 덩치 큰 라이더가 타고 질주하는 모습이나, 조금이라도 더 가벼운 고급 부품을 장착해 콤팩트하면서도 고성능의 자전거를 꾸미고자 했던 미니벨로 마니아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자전거는 가벼울수록 빠르게 달리기에 유리하다. 하지만 의외로 미니스프린터는 바퀴가 큰 자전거들과 비슷한 무게를 가졌다. 작은 바퀴를 장착해 크기가 작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프레임의 크기는 로드바이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보다 빠른 미니 스프린터를 만들기 위해 가벼운 프레임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 메리디안은 미니스프린터 붐의 중심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베스트셀러 모델이다. 사진은 2010년 출시 당시의 모습.

그리고 2010년, 국내 자전거 메이커 첼로가 국내최초로 카본 모노코크프레임의 미니 스프린터인 ‘메리디안(Meridian)’을 출시했다. 당시 풀 카본 미니벨로 프레임은 구하기 쉽지 않았고 가격도 비쌌다. 하지만 첼로 메리디안은 합리적은 가격과 뛰어난 부품구성으로 국산 카본 제품이라는 편견을 뛰어넘어 연일 계속되는 재고부족현상을 겪을 만큼 큰 인기를 얻었던 국산 미니스프린터의 대표 주자였다.


 

돌아온 2016 메리디안

로드바이크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미니벨로의 붐은 급격히 사그라졌다. 미니스프린터를 타고 스피드를 맛본 라이더들이 대부분 로드바이크로 자전거를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메리디안 역시 한동안 첼로의 라인업에서 그 모습을 감췄고, 일부 열성적인 미니벨로 마니아들의 기억에 남아있지만 실제로 그 모습을 보기 어려운 모델이 되었다.



그런데 국내외 여러 메이커들이 2016년 모델을 발표하고 있는 요즘, 첼로의 자전거 라인업에 그리운 모습이 등장했다. 2013-2015년 라인업에서 사라졌던 메리디안이 복귀한 것이다. 묵직한 매트 블랙 컬러를 입고 다시 돌아온 메리디안은 기존의 귀엽고 톡톡 튀는 이미지를 걷어냈다. 마치 지금의 주류를 이루는 로드바이크에게 정면승부를 거는 듯한 진지함이 묻어난다.



넓고 각진 에어로다이내믹스 디자인에 익숙해진 탓인지 메리디안의 곡선으로 연결된 프레임은 오히려 새로운 디자인을 보는 듯한 신선함이 묻어난다. 프레임 전체가 이음새 없이 부드러운 곡선을 띈다. 또한 이음새가 없이 하나의 덩어리라는 사실은 힘 손실 없이 더 효율적인 주행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2015 메리디안의 프레임 디자인은 이전의 것을 물려받았다. 프레임의 특징 중 하나는 브레이크 케이블이 탑튜브 내부를 통과하며 변속 케이블은 다운튜브를 따라 BB셸 하단을 지난다. 케이블의 큰 꺾임 없이 브레이크와 변속기로 연결된 케이블은 부드러운 작동감을 보이며 정교한 브레이킹과 빠른 변속, 미세한 장력 조절의 편리함을 제공한다. 이 같은 특징은 실제 시승에서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메리디안은 입문용 부품을 장착했음에도 예상 이상의 부드러운 변속과 브레이킹 성능으로 높은 만족감을 주는 자전거다.



위시본(Wishbone) 타입 시트스테이도 메리디안 프레임의 특징 중 하나다. 허브에서 두 갈래로 올라오는 시트스테이가 하나로 합쳐진 후 프레임과 연결되는 Y자 형태의 구조를 위시본이라고 부른다. 이 같은 구조는 프레임의 강성을 높이는데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가속 시 프레임이 단단히 받쳐주는 느낌과 함께 브레이킹 시에도 프레임의 떨림 없는 높은 안정감을 보여준다.



메리디안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정면으로 마주치자 스프린터였다는 사실이 확 와 닿는다. 얇은 헤드튜브와 에어로 타입의 포크, 미니벨로 타이어치곤 얇은 편인 20(451) X 1.00인치 타이어가 주는 날렵함이 경주마의 혈통을 지닌 스프린터임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2016 메리디안에 장착된 구동계는 클라리스 8단 그룹셋이다. 캘리퍼 브레이크와 크랭크세트는 시마노 R451 브레이크와 트루바티브 ISOFLOW 로드 2.0 크랭크로 제법 알찬 구성이다. 클라리스 듀얼 컨트롤레버에는 브레이크레버를 핸들바 쪽으로 4도 기울여주는 스페이서가 기본 장착되어 손이 작은 여성들도 쉽게 브레이크레버를 잡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첼로의 카본 미니 스프린터 메리디안은 보면 볼수록 다양한 매력을 뽐내는 자전거다. 가벼운 무게를 위해 풀 카본으로 만들어진 프레임과 포크, 강성을 높이기 위한 프레임 구조, 로드바이크를 따르는 구동계와 컴포넌트를 보면 역시 작지만 빨리 달리기 위해 만들어진 스프린터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렇다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실제 도로 위에서의 메리디안은 과연 어떨까?




 

시승

시승을 앞두고 자전거를 살펴보며 어떤 특성을 가진 자전거일지 상상해보지만, 오래간만에 만난 미니스프린터가 어떤 느낌일지 좀체 감이 오지 않는다. 미니벨로보다 ‘20인치 휠의 로드바이크’라고 부르는 편이 메리디안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다. 프레임 사이즈나 구동계, 타이어를 보아도 바퀴 크기를 제외하고 로드바이크 세팅이다.



시승을 위해 로드바이크용 클립리스페달을 장착했기에 클릿슈즈를 신고 메리디안에 올랐다. “딸깍” 페달에 슈즈가 결합되고 페달링을 시작하니 로드바이크에 오른 느낌과 큰 차이가 없어 조금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현재 타고 있는 로드바이크의 프레임 지오메트리와 비교해도 핸들과 안장, 그리고 탑튜브의 포지션에 큰 차이가 없다.

경사가 심하진 않지만 꾸준한 언덕과 내리막, 짧은 평지구간을 조금은 높은 기어비로 일부러 거칠게 달렸다. 로드바이크와 비교할 때 미니스프린터의 작은 바퀴가 지닌 상대적인 약점인 직진성과 주행 안전성을 중점으로 테스트해보기 위함이다.



오르막을 오르기 위해 드롭바 하단을 잡고 댄싱으로 페달을 찍어 누르니 작은 바퀴의 특징인 경쾌한 가속이 인상적이다. 700C 바퀴를 사용하는 로드바이크가 이정도의 가속 순발력을 가지려면 경량의 카본 로우 프로파일 림 정도는 장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 메리디안의 20인치 휠은 로드바이크보다 직경이 작은 만큼 회전관성의 영향이 적기 때문에 초반 가속성능이 좋다. 교통신호에 따라 자주 멈추고 달리기를 반복하는 도심라이딩에 유리한 요소가 아닐까 생각된다.



순정사양으로 장착된 1인치 폭의 벨로또 루트 타이어가 상당히 좋은 접지력을 보여주는 점도 놀랍다. 으레 미니벨로를 구입하면 타이어부터 바꾸기 마련인데 그런 번거로움 없이 달리기에만 집중할 수 있겠다. 



이제 안장에 앉아 내리막길을 꾸준히 달려본다. 시승을 위해 자동차 뒤 트렁크에 실을 때에도 느낀 사실이지만 로드바이크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조금 더 긴 휠베이스(앞바퀴와 뒷바퀴의 허브 사이의 간격, 보통 휠베이스가 길수록 직진 주행성능이 높다)로 인해 직진주행성능은 충분하다는 느낌. 다만 크기가 작은 휠의 특성상 로드바이크보다 노면의 저항에 민감한 편이다. 빠른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조금 더 부지런히 페달링을 해야 한다.



코너링이나 댄싱을 위해 일어서서 주행할 때와 같이 자전거를 옆으로 기울일 때는 미니벨로라는 특성상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로드바이크처럼 다뤘다간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직경이 작은 20인치 휠, 가속성능이 우수한 대신 코너링 시의 안정감이 로드바이크에 비해 낮은 편이다. 또 노면의 요철을 지날 때 지면에서 오는 충격으로 자전거가 통통 튀는 느낌이 강한편이다.



미니 스프린터 메리디안은 미니벨로와 로드바이크의 장점을 고루 가진 팔방미인 같은 자전거다. 귀여우면서도 민첩한 미니벨로를 원하는 라이더나, 도심 라이딩에서 로드바이크를 이용하기 부담스러운 라이더에게 2016 첼로 메리디안의 등장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가운 소식이 아닐까? 첼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2016  메리디안은 클라리스 급 구동계 장착 단일사양으로 출시되며, 가격은 98만원이다.


 

첼로 메리디안 제원

프레임 : 메리디안 미니스프린터 모노코크 카본
포크 : 카본 리지드
시프터 : 시마노 클라리스 2400
스템 : 모나키 AL6061, 1-1/8인치 X 31.8mm, 7도
핸들바 : 모나키, 31.8mm
브레이크 : 시마노 R451
프론트 디레일러 : 시마노 클라리스 2400
리어 디레일러 : 시마노 클라리스 2400 SS
크랭크 : 트루바티브 ISOFLOW ROAD 2.0, 53 X 39T, BSA
카세트 : 시마노 HG50 8단, 11-28T
체인 : KMC Z72
휠 : 첼로 알루미늄 림, 시마노 클라리스 허브
타이어 : 벨로또 ROUTE MINI, 20 X 1.00
안장 : 메리디안 전용 안장
시트포스트 : 모나키 알루미늄 31.6mm
시트클램프 : 첼로 알루미늄 34.9mm
무게 : 8.9kg (실측치/페달제외)
색상 : 블랙(매트), 화이트/스카이블루
가격 : 98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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