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싹할 만큼 공격적이다. 으르렁대는 소리는 소름이 돋을 정도다. 순식간에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풍경. 원하는 대로, 생각한 만큼 움직여주는 민첩함과 정교함까지. 게임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RC F가 현실 속 슈퍼카인 이유
렉서스 F 시리즈의 최고봉은 LFA다. 이 회사 기술력의 정수를 담아낸 차지만 딱 500대만 만들어진 탓에 일반인들에겐 여전히 낯설다. 이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선 현실적이면서도 LFA 계보를 이을 만한 ‘강력한’ 차세대 주자가 필요했고, RC F는 이런 요구에 딱 맞아떨어지는 차다.
V10 엔진을 얹은 LFA와 달리 V8 엔진으로 타협했다. 많이 팔려면 가격을 낮춰야 하고, 환경규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5.0리터 V8엔진은 7,100rpm에서 최고출력 473마력(PS), 4,800~5,600rpm에서 53.7kg.m의 최대토크를 뿜어낸다. 8단 스포츠 다이렉트 시프트(SPDS) 변속기가 맞물리며 힘을 빠르게 전달한다.
최적의 주행성능을 유지하기 위해 토크 벡터링 디퍼렌셜(TVD)이 탑재됐고, 탄소섬유로 만들어진 여러 아이템까지 갖췄다. 이쯤 되면 렉서스의 자신감을 보여준다는 측면과, 라인업 내 RC F의 포지션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겠다.
RC F의 개발 목표 중 하나는 운전 실력에 상관 없이 모든 운전자가 운전의 재미와 성능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거다. 이 차를 몰 때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어도 누구나 한계까지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요즘 슈퍼카들의 개발 방향과도 일맥상통한다. 예전엔 슈퍼카를 타기 위해선 꽤 많은 준비를 해야 했다. 운동도 많이 해야 하고, 신발과 장갑 따위의 카레이서 뺨칠 만큼 다양한 아이템도 필요했다. 그렇지만 요즘엔 적당히 편안한 옷과 신발이면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있다. 타이어도 이런 추세에 맞춰서 개발되고 있다. 정리하면, 예전엔 야생마를 길들이듯 차를 타야 했지만, 요샌 반대로 잘 조련된 경주마 위에 타기만 하면 되는 셈이다. 부족한 실력은 알아서 채워준다. 그래서 현실적이란 말을 꺼낼 수밖에 없다.
‘누구나’ 탈 수 있지만, ‘아무나’ 탈 수 없는 차
이런 현실 속 슈퍼카들은 운전자를 착각하게 만든다. 굳이 표현하자면 악마의 유혹이랄까. 웬만큼 잡아돌리고 페달이 부러져라 밟아대도 다 받아준다. 그럼에도 더 달려보라고 끊임없이 유혹한다. 분명한 건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차가 운전자를 지원해준다지만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게임이 아니다. 어쨌든, 자신의 한계를 알고 나면 차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RC F는 다루는 사람의 실력에 따라 성격이 바뀐다. 누군가 에겐 단순히 멋지고 잘 달리는 쿠페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 에겐 궁극의 ‘머신’이 될 수도 있다. 운전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건 차의 기능을 잘 활용하는 거다. 이 차는 주행 모드와는 별도로 운전 상황에 맞춰 설정된 세부 옵션을 활용할 수 있다.
주행모드는 에코, 노멀, 스포츠 S, 스포츠 S 플러스로 구분된다. 모드에 맞춰 계기반 디자인도 함께 달라진다. 달릴 때 느낌은 에코와 노멀에서도 충분히 공격적이지만, 두 가지 스포츠 모드는 아예 고삐를 풀어버리는 듯하다. 그리고 커다란 미터계 옆 다중 정보 디스플레이엔 G센서, 랩 타이머, TVD 토크 분배 상황, 연료효율이 표시된다. 이런 정보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기서 TVD는 RC F의 특징을 만들어내는 핵심이다. 토크 벡터링 디퍼렌셜(TVD) 덕에 운전대를 돌리면 바퀴 구동력도 함께 반응한다. 운전대를 왼쪽으로 돌리면 오른쪽 뒷바퀴에 엔진 힘을 더 전달하고, 반대로 오른쪽으로 돌리면 왼쪽 뒷바퀴에 힘을 더 줘서 속도에 관계 없이 빠른 핸들링을 가능케 한다. 특히 코너링 시 차가 코스 바깥으로 밀려나려는 현상인 언더스티어를 줄여줄 수 있어서 안전하면서도 빨리 달릴 수 있다. 요즘 유행은 브레이크를 활용한 방식이지만, RC F는 구동력을 활용한 토크 벡터링 방식을 쓴다. 그래서 보다 공격적으로 몰아붙일 수 있다. 그리고 뒷바퀴 굴림 방식 차종에다 TVD를 적용한 건 RC F가 최초다.
TVD 모드는 세가지로 스탠다드, 슬라럼, 트랙으로 나뉜다. 슬라럼은 빠른 스티어링 반응과 차의 민첩성에 중점을 둔 모드며, 트랙은 고속 서킷 주행시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모드다. 얌전히 타면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지만 최선을 다해 달린다면 차이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바퀴에 힘을 얼마나 주는지는 다중 정보 디스플레이에서 볼 수 있다.
온 몸이 즐거운 차 RC F
과격하게 몰아붙여도 안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고, 운전자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준다. 온 몸이 즐겁다. RC F의 많은 요소가 감동을 주지만, 무엇보다 감동적인 건 ‘소리’다. 엔진 회전수에 따라 소리가 확 달라진다. 일상주행 영역인 3,000rpm 부근에선 낮고 깊은 소리가 들린다. 여기까진 일상적인, 고배기량 차에서 흔히 나는 소리다. 조금씩 회전수를 높이면 점점 들리는 음이 높아지며 성격이 달라진다. 특히 6,000rpm을 넘어가면서 들리는 소리는 듣는 사람의 이성을 빼앗아가는 악마의 목소리다. 폭발하는 샤우팅은 정말 매력적이다.
이런 감동은 ASC(액티브 사운드 컨트롤) 시스템 덕을 많이 본 것 같다. 실제 소리에 보조 출력 사운드를 섞어서 훨씬 듣기 좋은 소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렉서스는 LFA의 소리를 연상시킨다고 하는데, 그 소리는 직접 들어본 적이 없어서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음역이 높아질수록 창 밖을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도 점점 흐릿해진다. 한계속도에 가까워지면 핸들링보다 걱정인 건 멈춰 서는 능력이다. 얼마나 빠르게 원하는 속도까지 낮출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RC F는 프론트에 6피스톤 캘리퍼와 380mm 통풍 디스크 로더를 쓰고, 리어에 345mm 디스크와 4피스톤 캘리퍼를 쓴다.
프론트 범퍼에서 이어지는 브레이크 냉각 덕트는 브레이크 내구성을 높이는 작은 노력이다. 그리고 브레이크 시스템은 종가속도 센서의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장애물을 넘은 다음 차 무게가 타이어에 다시 실릴 때 브레이크를 컨트롤 하는 방식이다. 접지력이 확보됐을 때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이고, 결국 ‘자세유지’에 큰 도움을 준다고 보면 된다.
스릴과 위험의 경계를 달리다
오랜만에 느끼는 짜릿함이었다. 처음엔 잘 길들여져 순한 것처럼 보였지만, 본성을 버린 게 아니었다. 잠깐 감춰뒀을 뿐이다. 씩씩대며 숨을 몰아 쉬는 녀석을 마주하니 두려움마저 들었다. 웬만큼 몰아붙여도 버텨내는 이런 녀석을 제대로 다루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RC F의 성능을 한계에 가깝게 끌어내보니 그동안의 조심스러움과는 다른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감춰진 본성을 드러내는 모드가 생겼다. 너무 통제를 많이 하니 렉서스 차는 ‘재미’가 없다는 평이 이어지자 ‘위험’에 대한 선택권을 운전자에게 줘버린 거다. 물론 무책임하게 떠넘긴 건 아니다. 실력과 취향에 맞춰 단계적으로 안전장치를 해제할 수 있도록 했다. 스릴과 위험은 아주 가까이 있다. 그리고 렉서스는 그 경계를 찾으려 많은 노력을 한 것 같다. 렉서스 F 라인업의 새로운 최강자 RC F는 ‘누구나 탈 수 있는’ 친절함을 갖췄지만, ‘아무나 다룰 수 없는’ 도도함을 겸비한 녀석이다.
글
박찬규 star@ridemag.co.kr
제공
라이드매거진(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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