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디젤 파문’ 탓이다. 최근 몇 년간 ‘수입차=디젤차‘라는 공식이 생길 만큼 쏠림이 심했다. 디젤차는 기술 발전 덕에 시꺼먼 매연을 내뿜던 불편한 모습이 사라졌고, 경유를 연료로 쓰니 효율마저 좋다. 고유가와 경기 불황 속 ‘현실적인 친환경 고효율차’라는 이미지가 생기며 쏠림 현상이 시작됐다. 업체 입장에선 강력해진 환경규제를 충족시킬 수 있는데다 소비자 입장에선 뛰어난 효율 덕에 주머니에서 돈이 덜 나가니 사람들의 디젤차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그렇지만 항상 어느 한 쪽으로 쏠리면 문제가 생기게 마련. 디젤 이슈 이후 무조건적인 찬양에서 조금이나마 냉정하게 바라보려는 분위기로 바뀌는 중이다.
요즘 하이브리드 트렌드는 ‘즐거움’
그동안 하이브리드는 ‘뛰어난 연비’와 ‘적은 배출가스 양’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요샌 단순히 연비만 좋은 게 아니라 퍼포먼스도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들의 방향성 중 하나다.
자동차가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순간은 정지상태에서 움직이기 시작할 때다. 높은 엔진 회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을 변속기가 재빠르게 바퀴에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큰 힘을 낼 수 있도록 기어비가 정해진다. 기어 단 수가 낮을수록 엔진 회전수 대비 속도가 낮다. 특히 요즘처럼 엔진 다운사이징 트렌드를 따르려면 연료를 실린더 내에 직접 분사하는 방식과 더불어 터보차저 따위의 과급기를 써야 ‘적은 배기량으로 큰 힘을 내는 차’를 완성할 수 있다. 힘이 세니 운전이 즐거울 수밖에 없다. 업체들이 “실용 영역에서 큰 힘을 낸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기름을 덜 먹지만, 잘 나간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그렇지만 터보차저는 배기가스로 터빈을 돌려 들이마시는 공기를 압축하는 시스템 특성상 초기 반응속도가 느리다.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움찔하다가 뒤늦게 힘을 내기 때문에 이런 ‘터보랙’을 줄이는 게 관건이다. 그래서 업체들이 주목하는 건 이런 전기 모터의 특성이다. 전기 모터는 낮은 속도에서부터 높은 토크를 낼 수 있다. 전기 모터가 엔진을 보조해주거나 때론 대신하기까지 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엔진이 할 일을 전기 모터가 대신해주니 배출가스 양도 줄어든다. 엔진 힘을 쥐어 짤 필요가 없고, 방식에 따라 전기(EV)만으로도 차를 움직일 수 있으니 소음과 진동으로부터도 훨씬 자유롭다.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한 기술이다.
스포츠카 메이커들도 전기 모터의 힘을 빌려 쓰고 있다. 페라리 FXX K, 맥라렌 P1, 포르쉐 918 스파이더가 대표적이다. 양산 브랜드도 비슷한 흐름이다. 인피니티는 F1 월드챔피언 세바스찬 베텔이 개발에 참여한 스포츠세단 ‘Q50S’을 이미 내놨고, 혼다는 새로운 스포츠카 ‘NSX’를 내년 초 출시 예정이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하이브리드 차의 매력
하이브리드 차는 조용하다. 방식에 따라 전기만으로도 달릴 수 있는 경우도 있으니 소음과는 거리가 꽤 멀다. 이땐 엔진이 쉬고 있으니 불필요한 진동 또한 적다. 자연스레 피곤함이 덜하다. 단순히 연비만을 따지던 사람들도 여러 효용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은 최근 하이브리드 자동차들의 판매량으로 나타났다. 주요 차종의 지난 10월 국내 판매량을 살펴보면 현대 그랜저와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판매량은 9월보다 각각 25.4%, 14.9% 늘었다. 기아차도 신형 K5 하이브리드 출시를 앞두고 잔뜩 벼르고 있고, 수입 브랜드 인피니티와 렉서스의 하이브리드차도 뜨거운 인기를 체감하고 있다. 인피니티 Q50S는 올해 초 월 판매가 한 자리수에 머물렀지만 6월, 가격을 낮춘 에센스 트림을 추가한 뒤 디젤 이슈와 맞물려 판매량이 수십 배나 늘었다. 지난해 28대가 팔렸지만 올해는 10월까지 142대가 팔렸다. 렉서스 볼륨 모델 ES와 NX도 하이브리드 모델의 판매가 많다.
가장 먼저 소비자를 만나는 영업사원들에 따르면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산 사람들은 ‘연비’와 ‘조용함’을 매력으로 꼽았다고 한다. 저유가 기조가 이어지며 조용한 가솔린 차종에 관심이 늘었는데, 최근 디젤 이슈로 효율성에 대한 시각이 하이브리드로 일부 옮겨왔다는 평이다.
하이브리드를 다시 볼 때
지금껏 나온 하이브리드 자동차(HEV)들이 대부분 ‘친환경’에 초점을 맞춰왔고, 높은 연료효율과 적은 배출가스가 평가의 척도였다. ‘하이브리드 차’라는 얘기를 들으면 왠지 힘이 부족해 보이고, 재미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게다가 차 값도 저렴하지 않았다. 그래서 힘 좋고, 효율 좋고, 가격도 착한(?) 디젤차에 관심이 쏠렸지만 이젠 달라졌다. 요즘 출시되는 하이브리드 차들은 운전의 즐거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높은 효율을 느낄 수 있도록 발전했다. 게다가 하이브리드 차의 가격 거품이 많이 줄은 데다, 저공해차로 인정받으니 주차료와 통행료 할인 혜택도 누릴 수 있다. 이젠 하이브리드 차를 다시 볼 때가 아닐까 싶다.
글
박찬규 star@ridemag.co.kr
제공
라이드매거진(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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