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이 기회가 돼 자동차를 타고 독일 도로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들의 도로환경을 보고 느끼기엔 적지 않은 시간이었다. 베를린 테겔 국제공항에서 시승차를 몰고 낯선 환경으로 나아갔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가기 위해 올라탄 도로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 ‘차를 받자마자 아우토반이라니’ 걱정이 앞섰다. 기본 속도가 시속 200km에 가깝다는 얘기를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겁먹지 말자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러면서도 '정말 독일인들은 고속도로를 시속 200km 가까이 달릴까?'란 궁금증이 몰려왔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아우토반에 차를 올렸다.

첫 느낌은 두려움보다는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한국에선 접할 수 없는 속도가 눈 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와, 저 속도가 가능해?' 맹렬한 속도로 도로를 내달리는 차들을 보며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역시 아우토반은 소문 그대로였다. 독일의 발 빠른 흐름에 합류했다. 이런 속도감은 처음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자석이 차를 빠르게 끌어 당기듯 정신 없는 속도로 앞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말 원없이 달렸다. 그런 와중에도 불안감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신기했다. ‘고속은 사고의 원인’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서 깨지는 순간이었다. 흔히들 아우토반을 '한 편의 잘 짜인 도로 위의 오케스트라'라고 표현하는데, 정말 그랬다. 결국, 고속의 향연 속에서도 안전을 위한 서로 간의 룰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추월은 무조건 좌측 차선을 이용하고, 모두의 안전을 위해 개인의 독단적인 주행은 삼가했다. 간단했다. 굉장히 단순한 룰이지만, 서로 간의 배려가 없으면 지켜지기 힘든 규칙이기도 했다. 이런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이런 고속도로환경이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우토반은 기본 3차선으로 구성되어 있고 1차선은 추월 차로, 2차선은 주행 차로, 3차선은 화물차 및 버스와 같이 덩치 큰 자동차가 이용한다. 1차선의 평균 속도는 시속 180km에서 시속 220km 사이고, 2차선은 시속 140km에서 시속 160km 사이다. 3차선은 승용차가 다니는 차선이 아니며, 상용차 대부분이 시속 100km를 유지하며 달린다. 참고로 아우토반 전구간이 속도 무제한인 것은 아니다. 중간중간 속도 제한이 존재하긴 한다. 다만, 우리나라처럼 과속 단속 카메라가 일일이 있진 않기에 속도 제한이 잘 지켜지지는 않는다.

도심 지역의 도로환경은 또 어땠을까. 복잡하다면 복잡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가 따로 없다는 건 충격적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전방과 좌회전 신호가 동시에 켜지는데, 그 과정이 양방향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 정신 없어 보이는 신호 체계가 무색할 만큼 작은 접촉 사고 한번 나는 걸 보질 못했다. 독일 운전자들의 신호 준수 및 양보 의식이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데에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의 운전 성향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일단 옆차가 방향 지시등을 켜면 무조건 양보다. 예외는 없다. 무리한 곡예 운전도 하지 않는다. 모두 차선을 유지하며 최대한 방어운전을 한다. 당연히 신호는 칼같이 지킨다.

경적도 웬만해선 울리지 않는데, 경적은 신호를 어겨 도로 규칙을 위반하는 차를 향해서 주로 사용된다. 즉, 나 자신을 위해 경적을 울리는 것이 아닌 모두의 안전을 위해 경적을 울린다. 이런 모습은 분명 우리나라 운전자들이 본받아야 할 운전 문화였다. 이처럼 독일의 도로환경은 분명 국내 도로환경과 달랐다. 그들의 몸에 베여 있는 양보 의식과 준법 정신은 정말이지 배울 점이 많아 보였다.

우리나라 도로환경은 분명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진 않을 것이다. 주관적인 입장에서 우리 모두는 어렸을 때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고, 기본적으로 여유가 없으며, 남을 쉽사리 신뢰하지 않는데 그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결과적으로, 이런 사회적 풍토가 도로에서도 나타는 것이 아닐까. 안타깝고도 씁쓸한 현실이다. 아울러 이런 관습이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면 쉽게 고쳐질 것 같지 않아 더욱 답답할 따름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나라 도로는 무의미한 경쟁을 위해 내달리고 있을 거다. 독일의 도로환경을 보며 우리의 도로환경을 되돌아본다.

<저작권자 © 라이드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