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선수들도 안장통을 경험하나요?” 한 유명 프로 사이클리스트에게 동호인 사이클리스트가 던진 질문이다. 과연 대답은 어땠을까?

당연히 프로 선수도 안장통을 경험한다. 오히려 자전거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만큼 더욱 안장에 민감하고 심지어 ‘자신의 엉덩이에 잘 맞는’ 안장을 사용하기 위해 상표를 가리고 자전거에 장착하는 편법마저 쓴다. 엉덩이에 맞지 않은 안장을 사용할 때 고통을 겪고, 자신의 엉덩이에 맞는 안장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모든 사이클리스트의 숙제다.

많은 자전거 부품 메이커들이 보다 편안한 안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라이딩 자세와 신체구조를 분석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안장을 디자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안장에 센서를 장착해 라이더가 앉았을 때의 압력분포를 조사하는 등 다각적인 방법으로 안장을 연구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일찌감치 해부학적인 관점에서 ‘라이더의 편안함’에 대해 연구해온 선구자적 자전거&부품 메이커가 있으니 바로 스페셜라이즈드(Specialized)다.

스페셜라이즈드는 ‘라이더가 편안함을 느낄 때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철학으로 ‘바디 지오메트리(Body Geometry) 핏’이라는 이름의 피팅 프로그램과 함께 자전거를 라이더의 몸에 맞추기 위한 다양한 컴포넌트를 직접 개발하고 제공해왔다. 특히 스페셜라이즈드의 안장 제품들은 편안함과 뛰어난 기능성으로 스페셜라이즈드 이외 다른 브랜드 자전거를 타는 라이더들 사이에도 입소문을 타며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할 스페셜라이즈드 에스웍스 로민 에보(S-WORKS ROMIN EVO) 안장 역시 이러한 인체공학적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디자인된 최신 제품이다. 에틱스-퀵스텝의 마르셀 키텔이 테스트용 모델을 사용해본 후 ‘실제 레이스에서도 사용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고, 실제로 프로토타입 모델을 사용하는 모습이 목격되며 큰 관심을 받았다.

 

최고급 소재 사용한 경량 레이스 안장

테스트를 위해 라이드매거진이 제공받은 모델은 스페셜라이즈드 에스웍스 로민 에보. 다른 에스웍스 등급 안장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셜라이즈드의 최상급 라인업에 속하는 모델이다. 일단 안장의 기본 제원을 살펴보면 기존 에스웍스 안장 라인업과 공통점이 많이 보인다.

안장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살펴볼 부분은 물론 디자인이지만, 일단 기본 제원을 먼저 살펴보자. 참고로 스페셜라이즈드 ‘로민’과 ‘로민 에보’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안장이다. 로민 에보 안장은 현재 콤프 젤(COMP GEL, 할로우 크롬몰리 레일/PU폼+젤 인서트), 익스퍼트 젤(EXPERT GEL, 할로우 티타늄 레일/카본강화플라스틱 셸/PU폼+젤 인서트), 프로(PRO, FACT 카본 레일/카본강화플라스틱 셸/PU폼)의 3가지 모델이 이미 출시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출시된 에스웍스 로민 에보 모델은 그 최상위에 해당한다.

바로 아래등급인 프로 모델과 비교해 에스웍스 로민 에보의 가장 큰 특징은 레일 뿐 아니라 안장의 골격이라 할 수 있는 셸까지 카본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당연히 더 가벼울 뿐 아니라 라이더의 하중에 잘 버티고 더 강한 지지력을 갖게 된다.

스페셜라이즈드의 안장은 ‘패딩 레벨’로 안장 패드의 두께를 표시한다. 에스웍스 로민 에보의 패딩 레벨은 2, 6단계 중 2번째로 얇은 패딩 레벨로 쿠션이 거의 필요 없는 레이서들에게 맞게 디자인되었다. 안장이 노면의 충격과 진동을 흡수해주기를 원하는 라이더에게는 레벨 2 패드가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얇은 패드는 안장과 몸의 밀착감을 높여준다. 안장의 셸과 좌골의 궁합이 좋은 라이더라면 장시간의 꾸준한 라이딩에서 자전거와 몸이 하나가 된 듯한 일체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레일은 에스웍스 FACT 카본으로 7×9mm 타원형의 오버사이즈 타입이다. 견고하며 카본 셸과 함께 무게 200g 이하 초경량의 안장을 완성한다. 라이드매거진이 테스트한 안장의 크기는 길이 260mm, 폭 143mm의 모델로 기존의 로민 안장과 비교해 길이가 약 10mm 짧아진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파워와 로민 에보 안장 - 서로 닮은 첫인상

하드웨어 사양을 먼저 살펴보았지만 사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제품의 방향성이다. 스페셜라이즈드 ‘로민’은 로드레이스에 초점을 맞춰 개발된 안장이었다. 라이더가 앞으로 숙인 상태로 페달링 할 때 회음부 압박을 줄이고 혈류량을 늘리기 위해 중앙에 넓은 공간(바디지오메트리 채널)이 마련된 것이 로민 안장의 기본 콘셉트다.

제품의 모델명을 생각할 때 ‘로민 에보’ 안장은 로민 안장의 후속모델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에스웍스 로민 에보 안장의 실물을 처음 보았을 때 기존의 로민 보다는 오히려 스페셜라이즈드가 작년 공개한 ‘파워(POWER)’ 안장에 더 가까운 제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파워는 스페셜라이즈드가 타임트라이얼용 안장과 로드레이스용 안장의 장점을 취해 개발한 독특한 디자인이 특징으로, 안장 중앙에 길고 넓은 마름모꼴의 채널이 마련되어 앞으로 숙인 ‘공격적인’ 자세를 취한 상태로 장시간 달리기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 모델이다.

로민 에보 안장의 외형적인 실루엣만을 본다면 기존의 로민 안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안장을 앉았을 때 엉덩이뼈를 지탱하는 가운데 부분을 보면 기존의 로민보다 길고 넓은 바디  지오메트리 채널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장의 바디 지오메트리 채널을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는 단순한 구멍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각선으로 바라보았을 때, 구멍 주변부가 움푹 들어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안장에 앉았을 때 엉덩이뼈의 돌출된 부분이 바디 지오메트리 채널의 함몰부에 걸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파워 안장과 무척 흡사한 형태다. 바디 지오메트리 채널의 형태가 닮았다는 점에서 안장을 개발할 때의 설계 목표와 앉았을 때의 효과 역시 비슷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

라이더가 앞으로 숙인 공격적인 자세에서는 골반 아래 두덩뼈가 앞으로 기울어지게 되는데, 이때 회음부 혈관을 압박해 안장통을 유발하는 경우가 있다. 앞쪽으로 길게 파인 바디 지오메트리 채널은 숙인 자세에서 회음부의 압박을 줄이고 혈류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으며, 이미 실전에서 그 효과를 증명한 바 있다. 로민 에보 역시 앞으로 숙인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는 라이더에게 적합한 레이스용 안장이다. 사용 목적을 생각하면 바디 지오메트리 채널의 형태가 파워 안장과 비슷한 이유가 쉽게 이해된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파워가 마치 가오리에 가까운 독특한 형태의 안장이라면, 로민 에보는 전통적인 스타일의 로드레이스용 안장에 더 가깝다. 파워와 비교해 안장의 길이가 더 길고 안장 위에서 앞뒤로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넓어 라이더는 보다 자유로운 포지션을 취할 수 있고 다양한 라이딩 상황과 지형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테스트라이딩

필자는 개인적으로 스페셜라이즈드 에스웍스 파워 안장을 구입해 사용 중이다. 자전거에서 파워 안장을 제거하고 에스웍스 로민 에보 안장을 장착 후 앉아본 첫 느낌은… ‘서로 닮았다!’. 일단 안장에 앉아 체중을 실었을 때의 느낌이 서로 비슷하다. 로민 에보와 파워 안장의 중앙부 바디 지오메트리 채널의 모양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리라.

하지만 에스웍스 로민 에보 안장 쪽이 다양한 포지션을 취하는 데는 더욱 유리할 것이다. 파워 안장의 경우 앞으로 숙인 자세에 최적화된 모델이며, 사용할 때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안장 뒷부분에 앉아 페달링 할 때 허벅지와 엉덩이 사이가 안장과 맞닿으며 저항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로민 안장은 안장의 앞뒤로 엉덩이 위치가 이동하더라도 어떤 포지션에서나 페달링이 편하고 다리를 압박하는 느낌이 없다. 정리하자면 앞으로 숙인 공격적인 자세에서는 파워와 비슷한 편안함, 그러나 전체적으로 포지션이 보다 자유로운 느낌을 주는 안장이 바로 로민 에보다.

90분 가까이 휴식 없이 안장에 앉아서 페달을 밟았다. 3-6%정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코스, 평균 케이던스 70 정도의 비교적 빠른 템포의 페달링. 앞으로 숙인 자세에서 파워 안장에 비해 엉덩이를 지지하는 부위의 면적은 줄어든 느낌이다. 회음부에 약간의 압박과 감각이 조금 둔해지는 느낌은 있지만 마비나 저림은 없다. 장시간 라이딩에도 아프거나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핸들바의 톱을 잡고 높은 포지션으로 휴식하며 달리거나, 드롭을 잡은 낮은 자세로 다운힐을 할 때처럼 극단적인 포지션 변화에도 큰 불편함이 없다는 점은 그야말로 올라운드 레이스 안장으로서 합격점을 줄 수 있겠다. 패딩이 얇고 셸이 딱딱하기 때문에 분명 장시간의 라이딩에서 노면 충격의 누적으로 인한 피로감은 있다. 그러나 페달링을 하는 동안 자전거 위에 몸이 안정적으로 고정되는 느낌, 특히 강한 토크로 페달링하며 언덕을 오를 때 몸이 앞뒤로 밀리는 증상 없이 자전거와 한 몸이 된 듯한 기분 좋은 일체감을 느끼게 해준다.

에스웍스 로민 에보는 엉덩이 쿠션의 편안함을 즐기는 라이더에게 적합한 안장이 아니다.  아마 로드바이크에 갓 입문한 라이더가 사용하기엔 지나치게 단단할 것이다. 그러나 안장의 견고한 지지감과 일체감을 원하는 라이더라면 스페셜라이즈드 로민 에보를 추천한다. 장거리를 쉬지 않고 달린 다음, 자전거에 내렸을 때 고통 없는 기분 좋은 피로감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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