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자전거 동호인들에게 엘파마(ELFAMA)와 같은 ‘믿을만한 국내브랜드’가 있다는 것은 무척 든든한 일이다. 과거 수입 고급 브랜드와 국내 브랜드로 자전거시장이 양분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엘파마와 같은 토종 사이클링 브랜드가 해외 유명 자전거 브랜드와 경쟁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특히 해외 브랜드보다 뛰어난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고급 기술과 소재를 아낌없이 투입해 만든 플래그십 모델의 성능은 레이스에 내보내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아직까지 해외 수입 브랜드의 자전거 모델이 토종 브랜드보다 우월한 성능을 낼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진 라이더가 적지 않다. 물론 많은 해외 자전거 메이커들이 유명 레이싱 팀과 선수들을 후원하고, 매년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 메이커의 자전거들 역시 최신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일 뿐 아니라 오히려 경쟁 메이커대비 우수한 소재와 기술력을 투입한 고성능 모델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급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엘파마는 오랜 기간 동안 고성능 로드바이크를 만들어내기 위한 프로젝트를 수면아래에서 진행시켜왔고 그 결과 탄생한 모델이 바로 2015년 엘파마가 공개한 로드바이크 플래그십 ‘FR1’과 에어로 로드바이크인 ‘퀀텀(QUANTUM)’ 시리즈다.

특히 FR1은 장거리 주행과 스프린트, 공기역학적 디자인의 합리적인 밸런스를 추구해 하나의 프레임에 담아낸 레이스 올라운더 모델이다. 산악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변화무쌍한 국내지형에 적합할 뿐 아니라 최근 동호인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벤트인 ‘마스터즈 사이클링 투어’와 같은 레이스에서 상위권을 노리는 플레이어가 타기에 충분한 성능을 제공하며, 해외브랜드의 최상급 모델과도 견줄만한 뛰어난 퍼포먼스를 자랑한다.

엘파마의 최신 플래그십 FR1 시리즈, 그 중 라인업의 최상위 모델인 FR1 F9000을 라이드매거진이 시승했다. 2016 FR1 프레임의 전체적인 형상은 작년 모델과 비교해 큰 변화가 없지만 세부사양의 개량이 이루어졌다. 또한 플래그십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하이엔드 부품으로 사양의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진 것에 주목할 만하다.

 

최고의 소재와 기술을 아낌없이 투입

최근에는 입문자들도 카본 프레임의 로드바이크로 사이클링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카본프레임의 로드바이크라고 해도 그 성능은 자전거마다 큰 차이가 있다. 단순히 카본소재를 사용했다고 해서 고급 자전거라 볼 수는 없다. ‘가벼운 무게’와 동시에 라이더가 내는 파워에 견디는 ‘높은 강성’과 강도를 모두 갖출 때 비로소 고성능 자전거의 대열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가볍지만 강하다는 것, 서로 상충되는 두 조건을 충족하기위해서는 고성능의 카본소재와 프레임 제조 기술이 필요하다. 엘파마 FR1의 프레임은 여러 자전거 메이커의 레이스 프레임에 널리 사용되는 일본 토레이사의 T800/T700 카본원사를 사용해 가벼운 무게와 높은 강성을 이끌어냈다.

특히 FR1의 프레임에는 성능의 최적화를 위해 프레임의 부위별로 카본의 결 방향을 다르게 적층하는 U.U.D.(Ultimate Uni Directional Carbon fiber layer)라는 기술을 적용했다. 카본의 밀도를 높이고 불필요한 레진을 줄여 프레임무게 800g대의 경량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이전모델인 FCR의 우수한 승차감을 이어받으면서도 추진효율은 높였다.

엘파마의 FR1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국내 자전거 동호인들 사이에서 스캇(SCOTT)의 에어로 바이크 포일의 프레임 디자인과 비슷하다는 의문이 제기된 적도 있었다. 물론 엘파마 FR1의 프레임 디자인은 스캇 포일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는 두 자전거가 공기역학적 디자인을 접목한 올라운더 프레임으로, 특히 튜빙의 단면에 ‘캄테일’이라는 디자인을 적용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생긴 오해다. 최신 디자인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한 결과 발생한 해프닝으로도 볼 수 있다.

엘파마 FR1의 프레임은 바람과 정면으로 마주치는 부위인 다운튜브와 시트튜브에 앞부분이 둥글고 뒷부분이 납작한 ‘캄테일(Kamm tail)’ 단면형태가 적용되었다. 공기역학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튜빙 단면은 납작한 물방울 형태의 ‘에어포일(Airfoil)’ 형상으로 알려져 있지만, 가벼우면서 높은 강성을 가진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로세로의 비율이 동일한 원형에 가까운 튜빙이 훨씬 유리하다. FR1의 프레임은 올라운더 타입 레이스 로드바이크로 공기역학적 이점과 높은 강성이라는 특징이 균형을 이루도록 디자인 되었다.

탑튜브는 지면과 거의 수평을 이루지만 약간의 경사가 가미되었다. 로드바이크의 전통적인 프레임 형태라 할 수 있는 호리전틀(Horizontal) 디자인을 추구하지만 헤드튜브 높이가 낮고 핸들에서 시트포스트까지의 거리가 짧은 엘파마 특유의 ‘K-FIT’ 지오메트리를 적용했다. 가장 작은 사이즈인 480사이즈 모델의 경우 유효탑튜브길이 510mm로 신장 160cm 전후의 라이더도 부담 없이 탈 수 있다.

탑튜브는 헤드튜브 쪽이 두껍고 뒤쪽으로 갈수록 얇아진다. 두꺼운 다운튜브를 적용했는데 공기역학적 튜빙 형상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인지 전체적인 튜빙의 두께는 균일한 편이다. 일반적인 로드바이크 프레임 디자인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크랭크가 장착되는 BB(Bottom Bracket) 셸과 체인스테이는 특별히 두껍거나 얇지 않은 무난한 형태이며, 시트스테이는 상대적으로 얇다. 어떤 의미에선 최신 로드바이크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전형적인’ 올라운더의 특징을 보여준다.

하지만 공기역학적 디자인이 가미된 데다가 800g의 경량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사실 이것만으로도 FR1의 특장점이라 말하기에 충분하다. 시트튜브의 단면이 원형이 아닌 캄테일 형상이기 때문에 시트포스트 역시 기성품이 아닌 FR1 전용을 사용한다. 2015년 모델과 비교해 시트포스트를 고정하는 방식이 바뀌었는데, 좌우에서 고정하는 클램프 타입이 아니라 시트포스트 앞쪽에서 세로방향 대각선으로 압박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시트포스트에 체중이 실렸을 때 고정부와의 마찰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고정 볼트가 살짝 죄어진 상태에서도 쉽게 내려앉거나 세팅이 틀어지지 않아 안정적이다.

작은 차이지만 헤드튜브 상단 헤드셋 베어링을 덮는 캡의 형태도 바뀌었다. 2015년 모델의 경우 FR1 전용의 헤드셋 캡을 사용했는데, 2016년 모델은 범용성이 높은 부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자전거의 성능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이지만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즉각 반영해 1년 만에 업데이트 된 결과물을 내놓는 엘파마의 적극적인 대응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프레임의 페인팅은 매트 블랙 바탕에 글로시 블랙/로얄 레드로 포인트를 주는 기본 디자인에는 큰 변함이 없다. 사실 블랙/레드 컬러조합은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국내 라이더들에게 사랑받아왔다. 하지만 엘파마만의 색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역대 최강 컴포넌트로 무장한 플래그십

작년 모델과 마찬가지로 올해의 최상위 모델인 2016 FR1 F9000 모델 역시 시마노 듀라에이스 기계식 구동계를 장착했다. 그러나 DT스위스 RC38T 스플라인 휠세트가 동사의 RC28C 스플라인 C ‘몬 체세랄(Mon Chasseral)’로 바뀌었다. RC28C 스플라인 C 몬 체세랄은 올해 DT스위스가 처음으로 출시한 최상급 라인의 휠세트로 신형 카본 허브와 SYNC 세라믹 베어링으로 무장한 초경량, 고성능 휠이다. 무게는 1250g에 불과하며 클린처/튜브리스타이어를 장착할 수 있는 튜브리스 레디(tubeless ready)를 지원한다.

핸들바와 스템은 엘파마 고유브랜드의 카본 컴포넌트를 장착했다. 이 부분은 솔직히 아쉬움이 남는다. 엘파마는 완성차의 일부 부품을 바꿔 주문할 수 있는 커스텀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핸들바는 선택할 수 있는 모델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라이더마다 손의 크기와 손가락의 길이, 선호하는 포지션이 다르고 당연히 핸들바 드롭부분의 깊이(리치)와 낙차(드롭)와 같은 취향도 제각각이다. 이런 세세한 부분의 커스텀이 가능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핸들바를 감아 마무리하는 바테이프는 셀레이탈리아의 스무테이프(SMOOTAPE)를 장착했다. 테이프를 감았을 때 겹쳐지는 부분의 두께를 얇게 마무리해 매끄러운 촉감을 제공하는 독특한 제품이다. 안장 역시 셀레이탈리아의 제품을 선택했다. 공격적인 포지션을 취하기에 적합한 경량 레이스안장인 SLR 키트 카보니오 플로우(SLR KIT Carbonio FLOW)가 장착된다. 타이어는 슈발베 원 700×25C, 완성차의 무게는 실측 6.45kg. 라이더의 취향에 따라 교체를 고려할만한 부품은 있지만, 전동식 구동계를 장착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휠을 포함해 더 이상 업그레이드 할 부분이 없다.

 

시승

작년의 2015 FR1 F9000 시승 때 무척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2016년 모델의 프레임은 작년과 거의 동일하지만 휠에 변동이 있으니, 사실상 휠의 차이를 체감하는 시승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평지나 언덕에서 자전거를 흔들며 빠르게 가속할 때의 느낌, 전체적으로 프레임이 탄력 있고 페달을 밟을 때 힘을 손해 보는 느낌 없이 뒤쪽을 잘 받쳐주는 느낌이다. 지나치게 딱딱하지 않지만, 라이더의 힘을 받아 전달하는 BB셸과 체인스테이는 마치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는 근육처럼 페달링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레이스 프레임이지만 승차감은 편하다. 노면에서 올라오는 충격과 진동이 의외로 적다. 시승기간 동안 100km 이상 코스의 중장거리 라이딩을 해보니 승차감과 성능의 밸런스가 좋아 어깨와 엉덩이에 누적되는 피로부담이 적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반면 스프린터를 위한 단단한 자전거를 원하는 이들은 조금 자전거가 부드럽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작년 모델의 RC38 스플라인 T 휠세트에 굉장히 만족했기에 신형 RC28 스플라인 C 몬 체세랄 휠세트가 오히려 조금 아쉬웠다. 분명 등급으로는 업그레이드지만 림의 높이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라이더들이 집단을 이루어 고속주행 하는 레이스를 고려한다면 작년 모델의 세팅이 조금 더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이 같은 아쉬움도 잠시, 언덕에 들어가자 신형 휠세트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평소보다 오르막에서 죽죽 앞으로 뻗어나가는 느낌이 다르다. 휠의 무게가 가벼워졌을 때 몸이 느끼는 차이는 의외로 크다. 회전관성이 줄어든 만큼 가속반응이 빠르다는 느낌을 분명히 받는다.

로우프로파일 림의 경량 휠세트이기 때문에 혹시 지나치게 부드럽지 않을까 생각했다. 걱정은 기우, 부드럽기는커녕 오히려 단단하다. 허브의 SYNC 베어링은 최상의 부드러움을 보여준다. 아마 지금까지 사용해본 휠 중 가장 좋은 허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허브로 특히 유명한 DT스위스 컴포넌트 중에서도 최고의 것을 사용했다. 허브보디와 액슬 사이의 유격 없이 꽉 들어찬 듯한 단단함 가운데 기름 위를 구르는 듯한 매끄러움이 느껴진다. 이는 가히 명불허전, 지금도 그 느낌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2016 FR1 F9000, 엘파마의 가장 우수한 컴포넌트로 꾸며진 기함이라는 데 동의한다. 특히 엘파마의 자전거들은 라이더가 주문할 때 부품 사양의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잘 이용하면 라이더마다 자신의 주행성향에 맞는 자신만의 자전거를 꾸밀 수 있다.

우수한 밸런스의 올라운더, 여기에 에어로다이내믹 디자인과 가벼운 무게가 더해진 FR1은 레이스와 아주 잘 어울리는 자전거다. 높은 완성도의 프레임은 해외 브랜드의 레이스모델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남은 것은 이를 더욱 보듬어 엘파마가 자신의 색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라이더를 위한 무난함도 좋지만, 플래그십인 만큼 조금은 더 강한 개성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FR1과 동일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자전거 중 이만한 성능을 내는 모델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엘파마 FR1은 분명 ‘레이스바이크’를 원하는 이들에게 강력한 경쟁력 있는 모델로 자리 잡으며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낼 모델이다.

 

엘파마 FR1 F9000 제원

프레임 : FR1 T800/T700 풀 카본
포크 : FR1 PD-FK-02
크랭크 : 시마노 듀라에이스 9000, 50/34T, 170mm, PF30 프레스핏
시프터 : 시마노 듀라에이스 9000
앞 디레일러 : 시마노 듀라에이스 9000, 브레이즈 온
뒤 디레일러 : 시마노 듀라에이스 9000
카세트 : 시마노 듀라에이스 9000, 11-28T
체인 : 시마노 듀라에이스 9000, 11단
브레이크 : 시마노 듀라에이스 9000
타이어 : 슈발베 원 튜블러, 700X25C
휠세트 : DT스위스 RC28 C SPLINE 몬 체세랄, 카본 클린처
스템 : AS-007CF FANTASIA EXT, 31.8, 90mm
핸들바 : DH21 ROAD CARBON, 31.8, 420mm
그립 : 셀레이탈리아 SMOOTAPE 그란폰도, 블랙
헤드셋 : FSA IS-2-138
안장 : 셀레이탈리아 SLR KIT Carbonio FLOW, 블랙
시트포스트 : 16 PD-SP02, 레드, FR1 전용
사이즈 : 480, 510, 540, 560
색상 : 매트블랙+글로스 블랙
가격 : 89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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