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어느 날 특별한 체험을 위해 BMW 드라이빙 센터를 찾았다. 7시리즈를 타고 서킷을 체험하는 아카데미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뜨겁게 타오르는 아스팔트 위로 육중한 검정색 7시리즈가 내달렸고, 말도 안 되는 조합이라 생각했던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순간이었다. BMW가 생각하는 플래그십 세단은 단순히 편하고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것에 그치지 않았다. 달려 나가는 자동차의 본질을 우선에 두고 운전 재미를 향한 BMW의 철학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플래그십 세단이었다.

이번 체험은 7시리즈 고객을 위한 전용 멤버십 서비스 ‘BMW 엑세런스 클럽’의 혜택 중 하나인 ‘드라이빙 아카데미’ 체험이다. 연 1회 사용할 수 있으며, BMW 드라이빙 센터가 문을 닫는 오후 6시부터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된다. 오직 7시리즈 고객만을 위한 맞춤 교육과 서킷 주행을 할 수 있어 ‘황제 드라이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서울 근교에서 대형 세단을 가지고 굽이치는 트랙을 빠르게 돌 수 있는 경험은 오직 BMW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크고 긴 차체에 검정색으로 칠해진 7시리즈를 보니 서킷과는 조금 어색하게 느껴진다. 한편으론 “잘 달릴 수 있을까?”, “버겁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라는 의심도 들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시동을 켜고 인스트럭터의 지시에 따라 멀티플 코스로 이동했다. 차폭과 브레이크 감각 등을 미리 파악하기 위한 간단한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예상보다 민첩한 핸들링에 놀랐고, 짧은 제동거리는 정말 내가 멈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믿음을 줬다. 자신감도 절로 생긴다. 7시리즈 맛보기 주행은 여기까지, 본격적으로 트랙 안으로 들어갔다.

서서히 해가 지는 서킷을 두 대의 7시리즈가 달리고 있으니 한 없이 여유로워 보인다. 엔진소리는 물론 바닥소음과 풍절음, 에어컨 소리조차 고요하다. 바워스 앤 윌킨슨 사운드 시스템으로 음악까지 들으니 움직이는 콘서트장이 따로 없다. 게다가 이 차는 롱휠베이스 모델이다. 뒷좌석에 앉은 동료 기자는 “7시리즈는 이렇게 타야지”라며 졸린 눈을 비빈다. BMW의 기함 7시리즈다운 안락한 주행이다. 하지만 이런 여유는 딱 한 바퀴만 허용됐다. 곧바로 7시리즈의 또 다른 진가를 찾기 위해 있는 힘껏 속도를 올렸다.

시승에는 V형 8기통 4.3리터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을 장착한 750Li x드라이브가 준비됐다. 최고출력 450마력, 최대토크 66.3kg.m를 발휘하며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시간은 4.5초, 최고속도는 시속 250km에서 제한된다. 매력적인 숫자들이지만 이 많은 정보를 굳이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 가속 페달에 조금만 힘을 줘도 무섭게 튀어나가고, 언제 어디서나 빠르게 멈춘다. 스포츠 모드에 놓으면 굵직한 배기음과 함께 플래그십 세단이라는 생각을 잊게 만든다. 마치 고성능 스포츠 쿠페를 모는 것 같은 짜릿함도 느낄 수 있다. 복잡한 숫자싸움보다는 감각으로 느끼며 의외의 매력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7시리즈 주행의 절정은 코너에서 나온다. BMW 특유의 민첩한 핸들링은 7시리즈라고 다르지 않았다. 사륜구동 x드라이브 시스템은 시종일관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했고, 에어 서스펜션은 극한의 상황에 오면 바퀴와 차체 사이를 단단하게 움켜쥔다. 덕분에 바닥에 바짝 붙어 예리하게 돌아 나간다. 일반적인 후륜구동 차였다면 뒤가 돌며 위험한 상황이 왔을 텐데 7시리즈는 더 밟으라고 말하는 것처럼 안정적인 곡선을 그렸다. 연속 코너에서도 좀처럼 출렁거림을 찾아볼 수 없다. 칼 같은 독일차 특성이 온전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믿음은 자신감으로 바뀌고 자신감은 곧 미소와 감탄사로 돌아온다.

7시리즈와 함께 드라이빙 센터 서킷을 원 없이 돌았다. 뒤에 누가 기다리거나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궁금하면 언제든지 임시 주차장에 차를 세워 물어볼 수 있었다. 주행 중에는 날렵한 움직임과 폭발적인 성능으로 대형 세단이라는 감각을 잊은 지 오래다. 트랙 주행을 마치고 나서야 뒷자리를 열어보며 롱휠베이스 대형 세단이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느낀 7시리즈는 다른 플래그십 세단과 많은 차이를 보였다. 대형 세단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품격은 물론 BMW 특유의 감각과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런 차를 구입하고 매일 운전대를 잡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뒷좌석에만 타는 것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어느 곳 하나 포기하지 않고 이중적인 매력을 뽐내는 플래그십, 다른 차들과 같은 방향으로 따라가기 보다는 진취적이며 도전적인 자세로 나아가는 차가 BMW 7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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