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여 년간 로드바이크 전문 숍 영원사이클을 운영했던 오영원 대표가 최근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자전거 부품 만들기다. 영원사이클의 홈페이지 주소는 지금도 남아있는데 www.youngwonbike.com 을 들어가 보면 여러 유명 메이커의 로드바이크 대신, 오영원 대표가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1223 브랜드의 다양한 자전거 부품이 전시되어 있다.

오영원 대표가 1223 브랜드를 시작한지는 사실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오히려 브랜드가 만들어지기 전 준비하는 기간이 더 길었을 정도이며, 만들어진 제품의 수도 많지 않다. 하지만 1223의 자전거 부품은 입소문을 통해 일부 자전거 마니아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뛰어난 디테일 덕분에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찾는 이가 더 많다고 한다.

새로운 브랜드와 지금까지 없었던 제품의 탄생과정, 그리고 디테일에 목숨을 거는 이 부품개발자가 가려는 길이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시작, 내가 만들면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1223의 오영원 대표가 로드바이크 전문 숍을 그만두고 자전거 부품개발에 뛰어든 계기는 다른 메이커가 만들어낸 부품을 판매만 하는 일에 지루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제법 오랜 기간 동안 자전거와 부품을 다뤄왔기 때문에 좋은 제품을 알아보는 눈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물건 보는 눈이 높아진 만큼 만족스러운 제품을 만나기는 점점 더 어려웠다고 한다. 어느 날 우연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들면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오영원 대표에게 제품이란 곧 자신의 생각을 상품으로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해왔고, “자전거에 대한 나의 생각을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제조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바로 숍을 그만두고 부품제작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간단한 부품? 쉽지 않은 제품 개발

가장 처음 만든 부품은 자전거의 뒷변속기에 장착되는 ‘체인 풀리’였다. 일명 ‘빅 풀리’라 부르는 순정부품보다 더 큰 사이즈의 풀리가 동호인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었고, 비교적 구조가 단순해 만들기 쉬울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해서는 금형을 만들어야 하는데, 금형 값이 굉장히 비싸고 제품에 문제가 있을 경우 수정도 어렵다. 알루미늄과 같은 금속을 정밀하게 깎아서 만드는 쪽이 소량생산에는 알맞았다. 제품의 설계는 직접했고, 여러 가공업체를 찾아다니면서 시제품을 만들었다. 직접 부품개발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시중에 나온 다른 메이커의 제품과 차별화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브롬톤 서드 파티 컴포넌트 개발

오영원 대표가 가장 자신있는 분야는 물론 로드바이크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순정상태를 탈피해 튜닝이나 드레스 업을 많이 하는 자전거는 브롬톤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친 오영원 대표는 브롬톤을 위한 튜닝 부품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단, 순정은 물론 지금까지 출시된 어떤 부품과 비교해도 가장 뛰어난 제품을 목표로 말이다. 기존에 나와 있는 튜닝 부품을 사용해본 오영원 대표는 불만이 있었다. 부품을 장착할 때 간격 조절용 와셔 등 군더더기 부품이 많이 들어가고 구조가 복잡했다. 

‘기능적으로 잘 작동하고, 보기에 좋아야 할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완벽한 부품’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오영원 대표의 욕심이다. 오영원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계미를 살린다’고 하는데, 완성된 부품의 디테일을 보면 완벽한 부품에 대한 집착이 보이는 수준이다.

1223 브랜드의 대표적인 제품이 브롬톤을 접어서 쉽게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바퀴인 ‘라이트웨이트 이지 휠(Light Weight Easy Wheels)’이다. 기존 브롬톤의 바퀴를 분리한 다음, 1223의 라이트웨이트 이지 휠을 포장 비닐에서 꺼내 나사로 죄어주면 끝. 라이트웨이트 이지 휠 이외에도 브롬톤용 서스펜션, 버디용 서스펜션 등 몇 가지 제품이 출시되었다. 물론 개발기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길었다. 

 

완벽에 대한 집착

오영원 대표에게 좀 더 구체적인 부품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오영원 대표는 ‘알루미늄보다 더 가벼우면서 비슷한 강도를 가진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소재를 써보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당장 실행에 옮겼다. 최근에는 자동차를 가볍게 만들기 위한 부품의 소재로도 사용되는 플라스틱인데 심지어 가격은 알루미늄보다 비쌌다.

그래도 조금 더 가벼운 부품을 만들기 위해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깎아 부품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부품은 마모에 강하고, 매끄럽게 가공된 표면은 마치 금속과 비슷한 광택이 난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내화학성이 너무나 뛰어난 탓에 표면에 잉크가 배어들지 않아 로고 인쇄가 불가능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인쇄 전문가를  찾아다니고 몇 번이나 샘플 제작을 시도한 끝에 드디어 1223이라는 브랜드를 새기고, ‘MADE IN KOREA'라는 문구를 집어넣었다. 

브롬톤의 짐받이에 화물을 고정하는 고무끈 설치를 위한 ‘이지 휠 훅 롤러’는 단순한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개발에 많은 공을 들였다. 기존 브롬톤의 짐받이는 긴 나사에 와셔를 겹겹이 끼우고 볼트를 고정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구조가 번잡하고 깔끔하지 못하며 마무리도 아름답지 않아 고급자전거라는 명성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그저 고무끈을 아주 예쁘고 깔끔하게 설치하기 위해 정교한 부품을 설계한다는 것에 놀라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니아의 시선은 다르다. 완벽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거나, 오영원 대표가 만드는 부품은 그 완벽함을 사랑하는 보는 눈이 높은 이들을 위한 제품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부품들, 공정이 복잡한 탓에 가격도 비싸다. 이지 휠 훅 롤러의 가격은 3만 원,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으로 만든 ‘라이트웨이트 이지 휠’은 6만 원이다. 최근에는 타오바오와 이베이 등을 통한 해외 판매도 시작했다. 해외 판매 가격은 제품의 가격에 배송료 10달러가 추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판매되는 것보다 해외 판매량이 더 많고, 최근에는 해외 딜러와 공급 계약을 맺기도 했다.

1223이 가고자 하는 길

“사실 우리나라 브랜드로 중국시장에 수출하는 제품이라는 점에 자부심도 느껴요.” 중국에서 많은 제품이 수입되고, 이제는 중국 제품의 품질도 무서울 만큼 향상되었다. 우리나라 브랜드 제품이 중국 제품보다 당연히 비싸니, 가격을 능가하는 품질과 아이디어가 없이는 도저히 판매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제품을 계속 생각하지 않으면 경쟁우위를 잃는다는 것이 오영원 대표의 생각이다. 여러 가지로 현실의 벽은 높지만 1223의 제품은 앞으로도 국내 제조를 고수할 계획이며, 보다 경쟁력있는 제품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이 필자에게는 마치 스스로를 위한 다짐처럼 들린다.

“누구나 다 기존에 나와 있는 물건보다 더 나은 것을 제품을 원하죠. 하지만 막상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지나치게 비싸거나 현실과 괴리감을 느끼게 만드는 물건이라면 팔리지 않아요. 1223이 추구하는 것은 몇 만 원짜리 수제 햄버거보다는, 맥도날드 정도 가격에 조금 더 맛있는 햄버거와 같은 제품입니다.”

이 말에서 오영원 대표가 가고자 하는 길이 언 듯 보였다. 그동안 필자가 만났던 많은 개발자, 기업이 야심차게 출발했으나 해외진출에 실패하고 사라졌던 기억이 오버랩된다. 이들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오영원 대표의 1223이 가고자 하는 길에 그 해답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진짜 전문가가 만들어내는, 품질에 대한 집착이 담긴 제품들. 오영원 대표의 1223 브랜드 제품에 새겨진 MADE IN KOREA가 단순히 국산품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자부심을 넘어서, 해외 라이더들에게도 인정받는 보증수표가 될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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