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에어로다이내믹스(Aerodynamics)라는 단어에서 자전거를 떠올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비행기나 우주선의 날개, 고성능 스포츠카에 공기역학기술이 사용된다고 하면 쉽게 수긍하면서도 ‘자전거에 공기역학이 접목 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연 그게 얼마나 큰 효과가 있겠어?’라고 반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실제로 자동차나 비행기, 우주선에 접목된 공기역학적 디자인의 효과를 우리가 몸으로 직접 느낄 기회는 거의 없다. 하지만 자전거는 다르다. 당장 자전거의 바퀴를 ‘높은 림(High Profile Rim)’으로 바꾸기만 해도 달라진 자전거의 성능을 내 다리로 직접 느낄 수 있다. 

특히 0.1초의 승부를 가르는 올림픽과 같은 레이스의 경우 자전거의 공기역학적 성능은 온전히 선수의 기록단축으로 이어진다. 자전거와 헬멧의 디자인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메달의 순위가 달라질 정도다. 트렉과 같은 세계 최고의 자전거를 만드는 메이커는 지금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를 가르며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달리기 위한 자전거 개발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와의 싸움, 그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트렉의 엔지니어가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플래그십 에어로 로드바이크 ‘마돈(MADONE) 9 시리즈’ 개발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트렉의 공기역학 분석 엔지니어 스즈키 미오(鈴木未央)를 만났다. 

 

트렉 마돈 9시리즈 개발의 핵심 인물을 만나다!

트렉의 여러 영상과 자료, 특히 공기역학적 디자인인의 연구개발 성과를 소개하는 내용을 주의 깊게 보았다면 ‘스즈키 미오’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수도 있다. 트렉은 자전거와 장비의 공기역학적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자체 연구개발 팀을 운영하고 있다. 공기역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을 컴퓨터를 이용해 계산하고 분석하는 것이 중요한데, 스즈키 미오는 이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엔지니어이다. 

스즈키 미오는 트렉에서 일하기 전 UC 버클리(UC Berkeley)에서 화학공학과 원자력공학, 유체역학을 전공했으며, 실리콘밸리에서 모터사이클의 공기역학적 디자인을 개선하는 스타트업 기업의 프로젝트에 참가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위스콘신-메디슨 대학원에서 전산 플라즈마 물리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이때 친구의 소개로 메디슨 근처에 있는 트렉 바이시클 본사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벌써 5년 이상 트렉에서 주요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마돈 9시리즈를 비롯한 트렉의 최신 레이스바이크 개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엔지니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라이드매거진은 지난 8월 16일, 서울 양재동의 트렉 콘셉트스토어 어썸바이크를 방문한 스즈키 미오를 만났다. ‘마돈을 만든 엔지니어’를 실제로 만나보고자 하는 많은 라이더들이 어썸바이크를 방문했으며, 다양한 이벤트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스즈키 미오는 트렉의 플래그십 에어로 로드바이크 마돈 9시리즈의 개발 과정부터 트렉의 최신 에어로다이내믹스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평소 궁금해 했던 내용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Q. 간단한 자기소개와 트렉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스즈키 미오라고 합니다. 트렉에서 분석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전산유체역학(CFD, Computational Fluid Dynamics)을 활용해 자전거의 프레임과 부품을 공기역학적으로 최적화하고, 프로토타입을 제작해 윈드터널에서 테스트하는 일이 저의 주요 업무입니다. 프레임뿐 아니라 헬멧, 휠 등 여러 제품을 더 빠르게 업그레이드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평가하여 다음 세대 모델을 준비하는 것도 저의 역할입니다.

 

Q. 트렉은 자체적으로 공기역학적 디자인과 분석을 위한 부서를 운영한다고 들었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나요?

트렉은 전 세계에서 공기역학 분야에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는 자전거 메이커입니다. 물론 다른 여러 자전거 메이커도 공기역학적 기술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자체적인 연구개발 팀을 운영한다기보다는 외부 회사와 공동 연구개발이나 혹은 위탁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트렉은 이미 오래전부터 회사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연구개발 부서를 운영해왔고, 기술과 데이터를 축적해왔습니다. 현재 92명의 엔지니어가 일하고 있으며, 아마도 자전거 업계 최대 규모가 아닐까 싶습니다. 

 

Q. 트렉의 공기역학적 기술을 아낌없이 투입하여 탄생시킨 로드바이크가 바로 마돈 9 시리즈죠? 마돈 9 시리즈의 차별화된 특징에 대해 소개하자면?

마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사실 뛰어난 공기역학적 성능뿐 아니라 레이스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 최적화시킨 로드바이크라는 점이죠. 단순히 한 가지 성능을 높이기 위해 다른 요소를 희생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공기역학적으로 우수한 디자인과 함께 라이더의 편안함을 위한 ISO SPEED 콘셉트를 적용한 것이 핵심인데, 라이더는 불편한 자전거를 탔을 때 결코 좋은 성적을 낼 수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보통 로드바이크와 전혀 다를 것이 없다’는 점이 중요해요. 사실 이 점은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지만 무척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죠. 공기역학적으로 뛰어난 성능을 갖추기 위해 조작성을 희생하거나, 무게를 더 늘리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타보면 가볍고 민첩할 뿐 아니라, 편안하면서도 굉장히 빠르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Q. 마돈 9 시리즈의 개발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어떤 부분인가요?

ISO SPEED 콘셉트와 공기역학적 디자인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데 굉장히 많은 신경을 썼어요. 아시다시피 ISO SPEED 콘셉트가 적용된 도마니의 디자인은 마돈과 많이 다릅니다. 마돈의 공기역학적인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ISO SPEED를 적용하기 위해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고, 여러 차례 프로토타입 프레임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디자인도 끊임없이 수정해야만 했습니다.

 

Q. 공기역학적 디자인을 위해 전산유체역학이라는 기술을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CFD란 어떤 기술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전산유체역학(Computational Fluid Dynamics, 이하 CFD)은 말 그대로 컴퓨터를 이용해 공기의 흐름을 분석하고, 한편으로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입니다. 자전거가 달릴 때 주위의 공기는 무척 복잡하게 흐르는데요, 실제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CFD를 이용해서 공기의 흐름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나타내고, 공기저항과 같은 수치를 계산할 수도 있어요.

무엇보다도 CFD를 이용하면 실제 프로토타입이나 목업(Mock Up)을 제작하기 전, 컴퓨터에서 프레임과 부품의 모양을 바꾸고, 이에 따른 공기저항의 변화를 즉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양한 디자인을 실험하고 즉석에서 최적화된 형태로 다듬을 수 있죠.

그런데 이런 CFD 시뮬레이션을 위해서는 굉장히 빠른 컴퓨터가 필요합니다. 트렉은 외부 기관의 도움을 받아 온라인으로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프레임을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은 STAR-CCM+이라는 것을 사용하는데, 트렉 외에도 여러 회사가 CFD 분석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더라도 분석과정과 입력되는 수치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져요. 트렉에는 오랜 기간 동안 누적된 데이터가 있고, 이를 통해 더욱 실제에 가까운 연구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Q. 컴퓨터를 이용해 프레임을 디자인한다는 뜻이군요? 그렇다면 윈드터널 테스트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CFD가 프레임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면, 윈드터널 테스트는 이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을 실제로 확인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어요. 때로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오차가 있을 수도 있고, 또 결과물을 실제로 확인하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Q. 트렉에도 윈드터널이 있나요?

트렉이 직접 윈드터널을 운영하지는 않아요. 대학교 연구소의 윈드터널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캔자스 주에 있는 대학교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사실 트렉 본사와 별로 거리가 멀지 않아요.

 

Q. 마돈의 프레임 디자인을 보면 군더더기 하나 없는 예술 작품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이것 역시 컴퓨터의 작품인가요?

프레임의 설계에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프레임을 디자인하는 사람의 아이디어와 감성입니다. 마돈의 디자인 과정에서 무엇보다 먼저 콘셉트 스케치를 하고, 이것을 다시 설계로 구현합니다. 그리고 불필요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고 프레임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를 최적화하는데 컴퓨터를 사용한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네요.

컴퓨터가 사람보다 더 뛰어난 영역도 있어요. 마돈의 프레임에는 2개의 물통 케이지가 부착되는데, 에어로다이내믹 디자인의 전용 물통이 아니라 일반적인 물통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물통 케이지의 위치에 따라서도 공기역학적인 성능차이가 발생해요. 이를 조율해서 최적화 하는 것은 컴퓨터의 몫이죠. 하지만 벡터 윙과 같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컴퓨터가 해낼 수 없는 사람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했습니다.

 

Q. 그러고 보니 벡터 윙과 브레이크를 잊고 있었네요. 마돈 9 시리즈의 포크는 정확히 말해 기존의 포크 블레이드가 전방으로 연장된 것으로 봐야겠죠?

네. 보통은 납작한 포크블레이드를 후방으로 연장하지만, 트렉은 마돈의 포크 블레이드 앞전을 연장해 브레이크 캘리퍼와 그대로 이어지도록 했어요. 그리고 브레이크 상단부의 케이블을 벡터 윙으로 감싸 공기역학적 성능을 크게 끌어올렸죠. 언뜻 복잡해보이지만 실은 기존 로드바이크의 포크 및 브레이크와 기본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뛰어난 제동력뿐 아니라 굉장히 부드럽고 민감한 조작감을 보여주죠.

리어브레이크의 경우 케이블이 시트튜브 중앙을 통과해서 브레이크캘리퍼 중앙의 웨지를 당기도록 했습니다. 케이블이 지나는 경로가 단순한 만큼 직관적인 조작감과 우수한 제동력을 보여주고, 공기역학적으로도 뛰어난 성능을 갖게 되었죠.

 

Q. 최근 디스크브레이크를 장착한 로드바이크가 이슈입니다. 그런데 혹시 디스크브레이크를 장착한 자전거는 공기역학적으로 불리한가요? 그리고 마돈에 디스크브레이크를 장착한 모델이 출시될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사실 맞바람을 가정할 때 디스크브레이크를 장착한 자전거와 기존의 로드바이크의 공기저항은 큰 차이가 없어요. 자전거를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의 면적이 별로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차이가 나는 것은 옆에서 바람이 불 때(Cross Wind)예요. 이 경우 디스크브레이크의 로터 면적은 생각보다 큰 영향을 주게 되죠.

어떤 제품을 출시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저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아마 현재의 마돈이 충분한 성능을 낸다고 판단한다면 디스크브레이크 모델은 출시되지 않을 수도 있겠죠.

 

Q. 여러 메이커가 프레임이 자전거 바퀴를 감싸는 디자인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돈의 프레임은 직선의 튜빙을 사용했는데요, 이 부분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맞아요. 프레임의 튜빙이 자전거 바퀴를 감싸면 공기저항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예를 들자면 트렉의 타임트라이얼 바이크인 스피드콘셉트 프레임도 시트튜브가 바퀴를 감싸고 있죠.

하지만 마돈의 프레임은 공기저항뿐 아니라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설계되었습니다. 바람과 마주한 상황뿐 아니라 옆바람이 부는 상황, 그리고 프레임의 강성, 그리고 핸들링과 같은 요소를 모두 고려해야 해요. 스피드 콘셉트의 경우 타임트라이얼 바이크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공기저항을 줄이는데 초점을 두고 개발했습니다. 하지만 이 디자인을 마돈에 적용한다면 아마 민첩한 핸들링을 이끌어내기는 어려울 거예요. 마돈의 디자인은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적화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죠.

 

Q. 트렉은 최근 시트튜브가 없는 콘셉트 바이크를 공개하기도 했죠. 마돈 9 시리즈 이후 어떤 자전거를 개발하고 있나요? 혹시 신형 스피드 콘셉트를 개발 중이라거나?

지금은 말할 수 없어요. 아마 출시될 때가 되면 알게 되겠죠? 한 가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트렉의 자전거들은 개발이 끝나면서 동시에 다음 모델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마돈 역시 다음 모델을 이미 준비하고 있어요. 물론 지금의 마돈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마돈은 트렉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구현한 최고의 로드바이크라는 데 확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트렉은 앞으로 더 나은 자전거를 보여드리기 위한 노력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 기대 이상의 자전거를 만나보시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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