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스럽고 화려하며 멋진 탈 것’의 대명사로 이탈리안 슈퍼카 브랜드 ‘페라리(FERRARI)’가 떠오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아니라고? 하지만 ‘비행기의 페라리’라거나 ‘요트의 페라리’ 심지어 ‘세발자전거의 페라리’가 등장한다면 분명 대부분의 사람이 “대체 얼마나 고급스럽고 멋지기에 페라리라는 이름이 붙었어?”라며 살펴보지 않을까? 물론 예를 든 것뿐이지만 말이다.

이것은 자전거도 마찬가지고 세상에는 페라리의 라이선스 상표를 붙인 자전거도 존재한다. 하지만 실상 살펴보면 페라리라는 이름을 팔아 덕을 좀 보려는 브랜드가 태반, 페라리와 유전자를 공유하는 ‘진짜 페라리 자전거’는 어딜 가야 만나볼 수 있을까?

 

피닌파리나 디자인의 콘셉트 바이크

이탈리아의 전기자전거 메이커 디아벨로(DIAVELO)는 올해 유로바이크에서 전기자전거 콘셉트 ‘이-볼루지오네(E-voluzione)’를 발표했다. 사실 전기자전거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는 가운데 많은 메이커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독특한 디자인의 자전거를 내놓는다. 디아벨로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이번에는 손에 쥐고 있는 카드가 다르다.

디아벨로라는 이름만 봐서는 어쩐지 람보르기니의 디아블로가 떠오른다. 하지만 수많은 전기자전거들 가운데 시선을 끌 수 있는 단 한 대의 자전거를 내놓기 위해 이들이 준비한 카드는 바로 ‘페라리 디자인의 아버지’에게 자전거 디자인을 맡기는 것이었다.

자동차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탈리아의 자동차디자인 전문회사 피닌파리나(Pininfarina S.p.A.)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페라리 테스타로사, F40, F50, 엔초 페라리를 비롯해 마라넬로, 모데나 등 수많은 모델이 피닌파리나의 스튜디오에서 탄생했다. (물론 페라리만을 디자인하지는 않았다. 현대 라비타도 피닌파리나의 작품이다.)

디아벨로가 이-볼루지오네 콘셉트를 ‘전기자전거의 페라리’라 자칭하지는 않았지만, 이 전기자전거의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의 자전거는 페라리를 떠올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자전거의 오랜 전통이라 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 형 프레임을 미래 지향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이라고 할까? 프레임의 전체적인 실루엣은 남성적인 직선을 강조했고, 배터리를 탑재한 다운튜브와 디스플레이가 내장된 탑튜브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볼륨을 살렸다. 

사실 피닌파리나는 과거에도 ‘푸오리 세리에(Fuori Serie)’라는 자전거를 디자인한 적이 있었는데, 디아벨로의 이-볼루지오네 콘셉트는 마치 피닌파리나 푸오리 세리에의 미래형 버전처럼 보인다.

탑튜브의 디지털 디스플레이는 주행속도와 배터리의 충전상태와 같은 자전거의 주행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핸들바 일체형 스템은 마치 SF영화의 우주선의 조종석에나 나올 법한 디자인이다.

게다가 디아블로 이-볼루지오네 콘셉트는 디자인만이 전부가 아닌, 현실에 당장이라도 등장할 수 있는 자전거다. 라이더의 페달링에 힘을 더해줄 모터는 크랭크 쪽에 장착되며, 벨트드라이브를 통해 뒷바퀴로 동력을 전달한다. 변속기를 외부에 장착하지 않은 대신 뒷바퀴 허브의 안에 내장했고, 디스크브레이크를 장착했다. 소음이 적고 정장을 입고 자전거를 타더라도 체인의 기름에 옷이 더러워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자전거를 디자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콘셉트 바이크를 현실로 - 디아벨로 비즈니스 젠트

물론 콘셉트 디자인과 실제 양산 모델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디아벨로 ‘비즈니스 젠트’는 이-볼루지오네 콘셉트의 전체적인 디자인을 살린 전기자전거이다. 콘셉트의 디자인에 충실하지만 탑튜브 디스플레이의 위치는 핸들 스템 위쪽으로 바뀌었다. 우주선을 떠올리게 하는 멋진 핸들바가 생략된 점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프레임의 소재는 알루미늄, 모터는 브로스(Brose) 제품을 장착하며 벨트드라이브 구동계는 ‘게이츠 카본드라이브’ 시스템을 사용한다. 이미 시티바이크에서 MTB에 이르기까지 많은 자전거에 사용되어 신뢰성을 인정받고 있는 구동계이다. 변속기가 내장된 리어허브는 시마노 알피네 11단을 사용하며, 포크에는 모노 서스펜션이 장착되어 노면의 충격을 흡수한다.

36볼트 250와트의 브로스 미드 모터 시스템은 파나소닉 셀을 사용한 프로태니엄 배터리로부터 동력을 공급받으며 13.6암페어 배터리를 장착할 때 1회 충전으로 160km를 달릴 수 있다. 자전거의 무게는 16kg으로 전기자전거치고는 무척 가벼운 편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전기자전거가 교통수단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 번 충전으로 100km가 넘게 달릴 수 있는 실용성과 경제성, 여기에 멋진 디자인이 어우러진 디아벨로의 전기자전거라면 출퇴근과 여가를 위한 탈 것으로 충분히 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이런 고급 전기자전거가 유럽에서는 이미 대중화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비싸다’는 인식을 먼저 극복해야 하며, 자전거가 도로로 나오는 것을 고깝게 보는 시선도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늘어감에 따라 우리 주변 또한 빠르게 변해갈 것이다. 아마 그때가 되면 전기자전거의 페라리, 전기자전거의 람보르기니를 우리 주변에서 만나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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