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 3년간 모터사이클 브랜드별 신차 목록에는 최소 하나 이상의 어드벤처 모터사이클이 들어있을 만큼 이 쪽 시장은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런 시장의 변화의 이유는 적당한 성능과 편안한 포지션, 각종 편의‧안전 기능으로 장거리 투어에 적합하기 때문으로, 덕분에 원래 목적인 오프로드 주행보다는 온로드에서 편하게 타기 위한 목적으로 더 많이 활용되어 왔다. 하지만 라이더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모터사이클의 최종 종착점은 오프로드’라는 농담처럼 온로드 투어에 지친 사람들은 조금씩 오프로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각종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새로운 경험에 빠져드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브랜드에서도 이런 흐름을 감지한 것인지 그동안은 어드벤처 모터사이클을 온로드에 적합한 형태로 구성해 발매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오프로드 지향의 구성을 갖춘 어드벤처 모터사이클을 하나 둘 발매하기 시작했다. 스즈키 역시 마찬가지로, 스즈키의 대표 어드벤처 모터사이클인 브이스트롬 시리즈 중 최상위 모델인 브이스트롬 1050의 최신 세대로 오프로드에 적합한 장비를 갖춘 브이스트롬 1050DE를 출시했다. 직접 시승차를 타고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모두 달리며 무엇이 달라졌는지 확인해봤다.

스즈키 브이스트롬 시리즈는 2002년 처음 출시되어 이번 신형까지 3번의 세대교체를 거친 모델로, 이름의 브이스트롬은 탑재된 V형 2기통 엔진의 ‘V’와 ‘흐름’ 뜻하는 독일어 ‘strom’을 합친 것이다. 스즈키는 새로운 엔진의 개발보다는 충분히 성능이 검증된 엔진을 사양에 맞춰 디튠해 적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브이스트롬 1050도 마찬가지로 TL1000 시리즈에 적용된 V트윈 엔진을 적용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996cc 엔진을 장착해 브이스트롬 1000이라는 이름이 사용됐으나, 2세대에서 배기량을 1,037cc로 늘리고 3세대 모델에서 이름을 브이스트롬 1050으로 변경했다.

스즈키 브이스트롬 시리즈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모델은 바로 다카르랠리에서 챔피언을 거머쥐었던 1988년의 DR-Z일 것이다. 지금은 어드벤처 모터사이클의 상징이 된 ‘비크(beak)’라고 하는 부리를 처음으로 장착했던 이 모델은 2014년 2세대 브이스트롬부터 지금까지 스즈키 어드벤처 모터사이클의 디자인 유산으로 이어지는데, 이번 신형에서도 곧게 뻗은 부리, 사각형에 가까운 헤드라이트 등 전면부 디자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1세대 모델에서는 지금과는 방향성이 다른데, 현행 모델과 달리 전면부의 거대한 페어링과 윈드스크린, 캐스트 휠 등 거의 투어러에 가까운 형상으로 온로드에서 편하게 탈 수 있는 모델로 기획,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2세대부터는 페어링의 크기를 줄이는 등 오프로드 지향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화했다. 특히 연료탱크부터 부리 끝까지 일직선으로 쭉 뻗은 라인의 디자인은 3세대부터 적용되어 지금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 4세대 신형의 가장 큰 변화는 오프로드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그동안의 브이스트롬 1000이나 1050XT 모두 온로드 쪽에 보다 초점을 두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가장 큰 부분은 바로 휠로, 그동안은 앞 19인치, 뒤 17인치 구성에 1세대는 캐스트휠, 2세대부터 스포크휠이 적용되어 왔는데, 이번 신형에선 앞을 21인치 튜브 타입 스포크휠로 구성했다. 이는 휠 크기가 커질수록 오프로드에서 만나는 장애물을 넘기가 보다 수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전의 튜브리스 스포크 휠에서 달리 튜브 타입 휠이 세팅된 점도 오프로드 주행에 염두를 둔 구성으로 이해하면 된다. 참고로 앞 타이어 사이즈는 90/90이다.

또하나의 변화는 계기판이다. 기존 LCD 방식에서 5인치 풀컬러 TFT 디스플레이를 채용했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것은 바로 첨단 기능의 투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탑재되는 전자기능들이 그리 많지 않아 온/오프 정도를 알려주는 경고등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지금은 이전에 비해 탑재되는 전자기능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이러한 기능들 각각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정보를 표시할 수 있는 TFT 디스플레이를 선택하는 것이다. 스즈키 역시 마찬가지로, 기본화면에 주행에 필요한 주요 정보, 속도계와 회전계, 기어 위치, 연료계, 적산거리 등을 표시하고 이와 함께 트랙션 컨트롤, 스즈키 드라이브 모드 셀렉터(출력 모드), ABS 등의 상태를 표시하고 변경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이 외에도 퀵 시프트 기능이나 언덕 밀림 방지 기능에 대한 설정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한 차량 기능에 대한 설정이 가능하도록 구성했다. 다만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이런 TFT 풀컬러 디스플레이를 장착하는 차량들은 대부분 스마트폰 연동 기능을 탑재해 전화 송수신이나 음악 재생 등을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좀 더 나아가면 커넥티비티 기능이나 전용 앱으로 내비게이션 등까지도 사용할 수 있게 하는데, 브이스트롬 1050DE에는 이런 기능들이 하나도 탑재되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기능 구현을 위해선 통신을 위한 장비가 더해져 가격 인상의 요인이 되긴 하지만, 고객 편의나 상품성을 생각한다면 탑재되는 쪽이 더 나은 부분인 만큼 향후 연식변경이나 마이너 체인지에서 추가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대 변경 치고는 외형에서의 변화는 그리 크지 않다. 대신 데칼과 그래픽을 새롭게 적용했으며, 유광 색상과 무광 색상을 혼합해 세련미를 강조했다. 외관에서 눈에 띄는 변화로는 그동안 기본사양으로 적용되지 않았던 언더 가드, 즉 섬프 가드가 적용됐다는 점이다. 이 언더 가드가 장착되지 않으면 자칫 돌과 같은 단단한 장애물이 차량 하부에 부딪힐 경우 엔진오일이 새어나가 결국 차량이 산속에서 멈추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오프로드 주행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필수적으로 장착해야 하는 장비인데, 그동안에는 옵션으로 발매됐으나 이번에 기본사양으로 적용된 것이다. 이 밖에도 앞 휠이 21인치로 바뀌며 지오메트리 역시 바뀌게 되는데, 이에 맞춰 사이드 스탠드와 센터 스탠드의 위치가 변경됐으며, 윈드 스크린은 오프로드에서의 시야 개선을 위해 크기를 줄인 스모크 스크린이 채택됐다. 또한 스텝도 주행 중 일어선 자세에서 발을 잘 지지하도록 더 넓어졌고, 핸들바는 이전보다 넓어져 조종성이 향상됐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시승해볼 시간이다. 요즘 스즈키 제품들에 기본으로 장착된 이지 스타트 기능 덕분에 원터치로 시동을 걸 수 있어 편리할 뿐 아니라 스타트 모터에 무리를 주지 않는 점이 좋다. 출발할 때 클러치 레버를 서서히 놓으면 일시적으로 엔진 회전수가 올라가 시동을 꺼뜨리지 않고 출발할 수 있게 해주는 저회전 보조(Low RPM Assist) 기능이 자연스럽게 개입하기 때문에 과도하게 엔진 회전수를 높이지 않고도 출발할 수 있다.

도로로 나서서 서서히 스로틀을 감아주자 차체가 거세게 치고 나간다. 순간 당황해 속도를 줄이며 계기판을 확인하니 SDMS, 스즈키 드라이브 모드 셀렉터가 1로 되어 있는데, 1이 가장 강력하고 3은 가장 약한, 타사의 ‘레인 모드’ 수준의 출력을 보여준다. 중간인 2로 맞추자 스로틀 반응이 덜 예민해져 시내 주행이 한결 수월해진다. 그렇지만 스로틀을 좀 더 세게 감아주면 언제든 치고 나갈 준비가 돼 있는 만큼 결코 방심해선 안된다.

이번 신형에 새로 투입된 반가운 기능은 퀵 시프트다. 트랙도 아니고 오프로드를 달리는 ‘어드벤처’에서 꼭 필요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드벤처 라이더라고 해서 경쾌한 가속이 불필요한 건 아니다. 온로드에선 클러치 조작 없는 빠른 상단 변속으로 흐름을 이어가며 빠르게 가속해나가는 재미도 있고, 반대로 코너 진입 전 하단 변속으로 탈출 직후에 빠른 재가속을 가져가며 코너를 공략해나가는 재미도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어드벤처 모델인 만큼 오프로드에서 상황에 따라 엔진 브레이크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클러치 조작이 없으니 빠른 변속으로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고 슬리퍼 클러치로 뒷바퀴의 불안한 움직임 없이 안정적으로 속도를 줄여나갈 수 있는 점들 때문에 오프로드에서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기능이다.

1,037cc 수랭 V트윈 엔진은 특유의 고동감과 함께 차체를 쭉쭉 밀어준다. 최고출력은 107.4마력/8,500rpm, 최대토크는 10.2kg‧m/6,000rpm으로, 2기통 엔진에 기대하는 강력한 토크가 파워풀하게 차체를 쭉쭉 밀어낸다. 특히 출발과 가속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1단 기어비가 3.000(36/12)에서 2.666(32/12)로 변경되어 이전에 비해 부드러우면서도 힘있는 가속을 보여준다. 여기에 엔진 연소실 온도를 낮추는 중공 나트륨 배기밸브를 처음으로 적용해 엔진 작동감을 향상시키고 내구성 향상을 도모했다. 드라이브 체인은 자갈길이나 흙길 등 오프로드 주행에서의 내구성 향상을 위해 더 견고한 링크와 더 큰 직경의 핀이 적용된 드라이브 체인과 전용 변속 레버가 적용됐다.

한참을 달려 드디어 오프로드 코스에 도착했다. 이제 브이스트롬 1050DE의 진짜 성능을 확인할 차례. 출발 전 옵션으로 판매하는 패니어 케이스, 일명 '삼박스'를 모두 탈거하고 트랙션 컨트롤 모드를 G로 바꿔준다. 이번에 새롭게 추가된 G 모드는 ‘Gravel’의 약자로, 점화 타이밍을 지연시켜 뒷바퀴가 약간 미끄러지는 정도까지는 허용해 주파력을 높인다. 오프로드 주행의 요령 중 하나는 급격하지 않은, 일관된 움직임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G 모드 역시 일관된 움직임을 위해 뒷바퀴에 일정한 동력이 계속해서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 시승 중 진창을 지나가다 뒷바퀴가 빠지는 상황이 있었는데, 더 깊게 빠져드는 걸 방지하기 위해 클러치 조작으로 구동력을 끊어가며 조금씩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트랙션 컨트롤이 작동하지 않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니 제대로 어드벤처 구성을 갖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시승 코스 주변에는 벌목이나 관련 차량 이동 등으로 노면이 매끄럽지 않고 장애물도 많았는데, 21인치의 앞바퀴는 거친 노면에서도, 장애물을 넘으면서도 안정적인 주행을 보여준 덕분에 안심하고 시승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255kg의 가벼운 차체도 반가운 부분으로, 특히 저속으로 주행할 일이 많은 오프로드에서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아 조종이 수월해 험지 주파에 유리하다.

브레이크는 앞에 4피스톤 캘리퍼와 310mm 디스크가 좌우 양쪽으로, 뒤에 2피스톤 캘리퍼와 디스크가 장착되고 2채널 ABS가 더해졌는데, 온로드에서는 강력한 제동성능에, 오프로드에서는 직관적인 조작감 덕분에 만족스러웠다. 오프로드에선 앞서 말한 것처럼 ‘급격한 움직임’을 피해야 하는 것이 안전한, 안정적인 주행에 도움이 되는데, 레버 조작에 따라 갑작스레 제동력이 높아진다면 익숙해지기 전엔 자칫 앞바퀴가 미끄러져 다칠 수 있다. 브이스트롬 1050DE는 일정하게 제동력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해하기 쉬워 오프로드에서도 안전하게 제동력을 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슬로프 디펜던트 컨트롤, 즉 내리막에서 제동 시 앞 브레이크를 제동할 경우 자칫 앞바퀴가 잠겨 그립력을 잃으며 넘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차량이 관성측량장치(IMU)를 기반으로 차량 기울기나 움직임을 감지해 앞뒤 제동력을 세밀하게 조절하기 때문에 차체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온로드 주행시엔 하중에 따라 브레이크 압력을 조절하는 로드 디펜던트 컨트롤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짐을 많이 싣거나 동승자가 탑승하는 상황에서도 우수한 제동력을 발휘할 수 있게 도와줘 보다 안전하다.

서스펜션은 앞에 KYB 역방향 텔레스코픽 포크, 뒤 모노 쇼크 업소버가 적용됐는데, 온로드에선 승차감을 향상시키는 효과도 있지만, 오프로드에서는 넓은 작동 범위로 거친 노면에서도 차량 제어가 한결 수월하다. 기본 설정 상태에서도 충분한 성능을 발휘하지만, 주행 조건이나 환경에 맞춰 세팅을 달리하면 온로드에선 보다 스포티한 움직임을 기대할 수 있고, 오프로드에서는 더욱 험난한 지형을 돌파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신형은 오프로드에 보다 초점을 맞춘 만큼 서스펜션 작동 범위를 넓힌 덕분에 꽤 거친 비포장길에서의 주행이었음에도 마치 비단길 임도를 타는 것처럼 차량을 제어하는 것이 한결 수월했다.

경쟁자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선 나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어드벤처 시장 역시 그러한데, 거의 모든 브랜드에서 어드벤처 모터사이클이 출시되는 상황에서 스즈키의 브이스트롬 시리즈가 계속 그 명맥을 이어가려면 특별한 것이 필요하고, 스즈키는 오프로드 성능을 특화시킨 브이스트롬 1050DE를 통해 그 해답을 찾았다. 여기서 좀 더 나은 구성들, 전자식 서스펜션이나 보다 높은 제동력의 브레이크 캘리퍼 등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즈키는 대중성을 추구하는 브랜드인 만큼 가격 인상 요인이 될 수 밖에 없는 고사양 장비들을 선택할 수는 없었으나, 부족하지 않은 성능의 장비들로 대체하며 소비자의 부담을 크게 줄인 가격으로 제품을 선보였다. 특히 이번 신형은 환율이나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여러 요인에도 불구하고 이전 세대인 브이스트롬 1050XT 대비 딱 100만 원밖에 오르지 않은 1,980만 원으로 책정되어 어드벤처 모터사이클을 꿈꾸는 라이더들에게 합리적인 선택지를 제시하고 있다.

20년 넘게 한 이름을 고집하며 이어온 스즈키의 어드벤처 모터사이클인 브이스트롬 시리즈, 여기에 스즈키의 역사적인 모델 DR-Z의 정신을 이어가는 디자인과 각종 첨단 기능, 오프로드에 특화된 장비들을 더한 브이스트롬 1050DE라면 온로드와 오프로드 모두에서 내달리고 싶은 라이더들에게 최적의 선택이 될 것이다. 880mm의 높은 시트고가 부담이라고? 걱정할 필요 없다. 30mm 낮은 옵션 시트도 발매하고 있으니 이제 남은 건 어드벤처에 걸맞은 도전 정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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