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300km가 넘는 주행거리를 갖춘 알짜배기 전기차인 현대자동차 캐스퍼 일렉트릭이 공개되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처음 공개된 부산국제모빌리티쇼에서 실물을 보고 든 생각은 작은 차체에 알뜰살뜰하게 요소들을 구성한 덕분에 작지만 강한 전기차가 나왔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곧 시판을 앞둔 캐스퍼 일렉트릭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테크토크 행사가 진행되어 지난 6일 현장을 찾아 차량의 개발과정과 특성들에 대해 들어보았다.

일단 가장 궁금했던 ‘왜 크기를 키웠냐’는 부분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경쟁력 있는 주행거리를 목표로 개발하다보니 전장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300km 이상의 주행거리를 확보하자는 목표로 개발을 시작했는데 “기존 크기를 그대로 유지했을 경우 배터리 용량이 줄어 최대 270km 정도밖에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전장과 휠베이스가 늘어나게 되어 경차 혜택이 사라졌지만, 다행히 정부 보조금이나 통행료 및 주차할인 등과 같은 전기차 혜택이 있으니 경쟁력이 있고, 만일 주행거리보다 취등록세 면제와 같은 혜택이 마음에 든다면 이웃집 기아의 레이 EV를 선택하는 대안도 있다.

이렇게 배터리 용량을 결정했으니 다음은 사양이다. 현대차는 이 과정에서 기존 캐스퍼 고객들이 아쉬워했던 부분들을 수용해 개선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경차에서 가장 많은 지적을 받는 가속감의 부족과 함께 잔진동이나 변속 충격 등의 문제는 전기차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된 부분이다. 49kWh NCM 배터리와 84.5kW 출력의 PE 모듈을 조합해 1회 충전으로 315km의 주행가능거리를 확보했다. 더불어 아쉬움을 느낀 수동식 에어컨과 오디오 시스템에 대해서도 10.25인치 클러스터와 AVNT, 풀오토 에어컨을 기본 적용하고 컨트롤 노브를 블랙 컬러로 마감하며 차량의 최첨단 이미지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바꿨다. 변속기는 시트 사이 콘솔에서 칼럼형으로 변경한 덕분에 운전석 무릎 공간이 더 넓어졌고 필요에 따라 앞좌석에서 좌우로 넘어가는 ‘워크스루’도 가능하다. 이 밖에도 내연기관 모델에선 적용하지 못했던 스마트폰 무선 충전 기능,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 적용으로 스탑 앤 고가 가능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기능 등 내연기관 대비 편의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편의장비도 여러곳에 투입됐는데, 현대차그룹 전기차의 대표 기능인 실내 V2L용 콘센트의 경우 뒷좌석 시트 하단에 장착된 다른 차량과 달리 공조장치 조작부 아래로 배치한 점이 다르다. 이에 대해 “원래는 위생과 살균에 효과적인 자외선 살균(UVC) 오픈 트레이 기술을 도입하려 했으나, 트레이(커버)가 열린 상태에서 발생하는 시트와의 간섭 문제, 그리고 사용 시 손을 넣을 공간이 나오지 않는 문제가 있었고, 여기에 팬데믹 종결로 인해 V2L 기능 탑재로 변경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PMSA의 작동 조건

이번 캐스퍼 일렉트릭에서 예상 외였던 부분은 안전 기능이다. 바로 페달 오조작 안전보조(PMSA)라는 기능인데, 차량이 정차하거나 정차 후 천천히 움직이는 상황에서 앞뒤로 1m 이내에 장애물이 있을 때 가속 페달을 강하게 조작하면 이를 오조작으로 판단해 토크와 제동을 제어해 충돌을 방지하는 것이다. 즉 차량 혹은 벽 등의 장애물이 근접해 있는 상황에서 급제동을 한다고 페달을 꾹 밟았는데 그것이 브레이크 페달이 아닌 가속 페달인 경우 이를 오조작으로 판단해 차량을 제어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최근 이슈가 되기도 했던 급가속 문제에 대한 방지 기술은 아니고, 제한적인 상황에서의 급출발을 방지하는 기능이다. 기능의 작동 조건이 있는데, 1m 이내에 차량의 초음파 센서로 감지될 정도의 장애물이 있어야 하고, 25도 이하의 경사와 430도 이하의 조향각에서 0.25초 안에 가속페달을 100%까지 밟았을 때 작동한다. 즉 급제동을 위해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정도의 수준으로 가속 페달을 밟아야 작동한다는 것.

페달 오조작 방지 기술을 설명해놓은 혼다 홈페이지

물론 이러한 기준이 너무 까다로운 게 아니냐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러한 문제에 대해 선제적으로 기준을 만들어 대응하고 있는 일본의 페달 오조작 급발진 억제 장치(PMPD, Pedal Misapplication Prevention Device) 기준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한국보다 좀 더 일찍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도 고령 운전자의 오조작으로 인한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고, 그 결과 2020년까지 90%의 신차에 PMPD가 탑재되어 관련 사고가 10년 새 절반으로 감소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곧 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예정이고 관련한 사고 소식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만큼 이러한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이러한 신기술을 확대 적용하는 것도 필요한데, 현재 적용한 PMSA에서 장애물 감지 거리를 확대해 안정적으로 정차할 수 있게 하는 PMSA 2.0 기술도 개발 중이어서 향후 전기차는 물론이고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모델에도 확대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유체 챔버를 사용한 하이드로 부싱

두 부분(빨간색/파란색 원)의 소재를 달리하는 듀얼 컴파운드 기술을 적용한 트레일링 암의 고무 부싱

경차는 상대적으로 소음이나 진동에 노출이 커 장거리 운행에서 상당한 피로를 유발하는데, 전기차는 내연기관 대비 소음이나 진동이 줄어 이러한 부분에서도 이점이 있다. 하지만 이 부분으로 인해 오히려 기존에 엔진이 가려주던 작은 진동이나 소음들이 고스란히 탑승자들에게 전달되어 또다른 불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을 위해서도 여러 가지 개발이 이뤄졌다고 한다. 먼저 기존 엔진을 지지하는 마운트에 고무 소재를 사용해 충격을 흡수하는 방식을 썼던 것과 달리 모터 마운트에 유체 챔버가 적용된 하이드로 부싱을 사용해 외부에서의 충격을 흡수하는 동시에 모터 작동으로 인한 진동도 줄여준다. 또한 전체적인 주행 진동이 줄어들며, 스티어링 휠의 진동도 크게 감소했다고. 또한 노면 충격 흡수에서 큰 역할을 하는 쇼크 업소버의 경우에도 동급 대비 업그레이드된 어드밴스드 밸브를 적용해 더 많은 충격을 흡수하도록 했다. 특히 후륜의 경우 토션빔의 충격을 흡수하도록 쇼크 업소버의 사이즈를 키웠다. 토션빔과 차체를 연결하는 트레일링 암에 더해지는 고무 부싱의 경우 승차감과 핸들링을 모두 보여줄 수 있도록 부싱의 경도를 달리하는 듀얼 컴파운드 기술을 적용했다.

소음 유입 억제를 위한 방안들. 왼쪽부터 언더커버, 웨더 스트립, 휠 가드, 러기지 보드

또한 정숙성 업그레이드를 위해 저주파 노면 소음(로드 노이즈)를 줄이도록 제진재의 위치와 면적을 최적화했고, 고주파 노면 소음을 줄이기 위해 리어 휠가드 면적을 확대하고 러기지 보드를 적용했다. 그리고 차체에만 적용되던 웨더 스트립을 도어에도 추가해 유입되는 소음을 크게 줄였으며, 각 문의 창문 유리 두께를 0.3T 증가시키고 풀 언더커버 적용, 스트립 헤드램프 적용 등의 노력이 더해졌다. 고속 주행시 스티어링 휠의 진동을 줄이기 위해 체결 부위 차체를 보강하고 스티어링 휠 내부 댐퍼를 튜닝했으며, 모터 소음 감소를 위해 모터 내부 회전자를 구성하는 영구 자석의 적층 최적화를 진행하고 고른 토크 밀도를 위해 V자 형의 적층을 적용하고 회전자 적층을 4단에서 6단으로 늘렸다. 그리고 PE 시스템에서도 소음이 발생하는 부분이 있어 이를 위해 소음 분석을 실시, 최적화된 위치를 찾아 감싸줘 전체를 감쌌을 때와 동일한 흡차음 효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기존 전기차들에서 부족했던, 혹은 아쉬웠던 부분들을 보강하며 올 하반기 전기차 시장의 돌풍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캐스퍼 일렉트릭. 300km 넘는 주행거리와 작은 차체임에도 넉넉한 실내공간, 각종 안전/편의 기능들이 더해진 만큼 사회 초년생부터 은퇴 후 부부가 탈 부담 덜한 전기차를 찾는 노년층까지, 다양한 고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오조작으로 인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기능이 투입된 최초의 모델인 만큼 이 부분에서 부담을 갖고 있던 소비자들이라면 캐스퍼 일렉트릭이 좋은 답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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