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모터사이클 브랜드는 슈퍼스포츠 모델을 하나쯤 선보이고 있다. 단순히 라인업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닌 브랜드의 기술력을 선보이고자 하는 목적으로, 슈퍼바이크 월드 챔피언십(SBK)을 비롯해 각 국가별로 치러지는 로드레이스 경기 등 양산제품 기반의 경기들도 개최되고 있어 이런 레이스 현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제품의 성능이나 기술력을 뽐내는 것이다.

혼다에서는 CBR로 대표되는 슈퍼스포츠 라인업을 구축해왔고, 그 중 플래그십 모델로 CBR900RR, CBR929RR, CBR954RR에 이어 지난 2004년 CBR1000RR로 이어지는 파이어블레이드 모델을 내세워왔다. 그러다 지난 2020년, 대대적인 변화가 이뤄지며 이름 뒤에 R을 하나 더 붙인 CBR1000RR-R(트리플 알)을 출시, 새로운 세대를 맞이했움울 선포했다. 그리고 올해 부분변경을 거친 CBR1000RR-R 파이어블레이드 SP가 출시되어 지난 9일 경기도 성남의 혼다 모빌리티 카페 더 고를 찾아 실물을 직접 살펴보았다.

부분변경이지만 외관에선 눈에 띄는 큰 변화는 없다. 낮게 깔린 헤드라이트나 다운포스를 높이기 위한 윙렛 등 주요 요소들은 그대로 이어진다. 다만 세부적인 요소에선 변경점이 있는데, 우선 핸들바를 살짝 앞으로 당기고 스텝 위치를 아래로 낮췄으며 연료탱크 형상을 니그립이 용이하도록 개선하는 등의 변화를 통해 트랙 주행 시 체중 이동을 위한 움직임의 자유도를 높였다. 윙렛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형상을 변경해 고속 주행에서 차체 안정성을 높이고 코너링 성능을 강화했으며, 언더 카울도 공기역학 성능을 높이기 위한 변화가 더해져 뒷타이어의 접지력을 향상시켰다. 아크라포빅 티타늄 머플러는 기존보다 약간 더 커졌지만 배기음은 5dB 낮췄고 엔진 회전 수에 맞춰 일정하게 증가한다.

강화된 유로 5+ 환경규제를 충족시키기 위한 변화가 이뤄졌지만 중속대 가속 성능을 높이기 위해 캠샤프트와 밸브 스프링, 흡기 밸브 등 관련 부품을 개선해 오히려 성능이 향상됐다. 탑재된 1,000cc 직렬 4기통 엔진은 6단 변속기와 결합해 최고출력 218마력/14,000rpm, 최대토크 11.5kg·m/12,000rpm의 성능을 낸다. 여기에 트랙에서의 스포티한 주행이 가능한 퀵시프트가 채용됐는데, 기능을 켜고 끄는 건 물론이고 3단계로 조절이 가능하다. 그리고 혼다에서는 처음으로 듀얼 모터 스로틀 바이 와이어 시스템이 적용되어 더욱 세밀한 제어가 가능해졌으며, 가속이나 엔진 브레이킹에서 즉각적인 응답성을 제공한다.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상태로 세팅이 가능하다

주요 부품 역시 높은 성능에 걸맞은 고사양 제품들을 탑재했다. 서스펜션은 전면에 올린즈 3세대 전자제어 포크를, 리어는 올린즈 쇼크 업소버를 탑재했다. 여기에는 단순히 감쇠력 조절은 물론이고 라이더 체중 입력 시 권장 프리로드값을 안내하는 기능이 함께 적용되어 라이더가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상태로 주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브레이크는 앞 330mm, 뒤 220mm 디스크에 브렘보 최신의 스틸레마 R 캘리퍼를 적용해 높은 제동력을 발휘하며, ABS는 레이스와 트랙, 스탠다드 3개 모드로 조절이 가능하고 뒷타이어 들림을 억제하고 다양한 기울임 각도에 대응하는 스포츠 모델 전용이 탑재됐다.

보쉬의 6축 관성측량장치(IMU) 기반의 기능들은 그대로 이어진다. 우선 스탠다드와 트랙, 레이스의 3단계 라이딩 모드를 통해 출력과 엔진 브레이크, 앞바퀴 들림 등의 기능을 일괄적으로 변경할 수 있다. 휠 속도 센서와 IMU의 정보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전자식 스티어링 댐퍼(HESD)도 탑재되어 계기판을 통해 3단계로 제어가 가능하다. 이 밖에도 HSTC는 9단계로 개입도를 조절할 수 있으며 엔진의 새로운 출력 특성과 바뀐 기어비에 맞춰 최적화했다. 그리고 레이스 참가자를 위한 스타트 모드도 있어 사전에 미리 설정해놓으면 스로틀을 끝까지 열어도 지정된 회전수에 맞춰 회전하는 상태로 대기하기 때문에 라이더가 클러치 연결에만 집중할 수 있다.

계기판은 5인치 풀 컬러 TFT 디스플레이가 탑재되어 시인성이 우수하고, 좌측 핸들바의 4방향 스위치를 통해 주요 기능 설정은 물론이고 필요한 정보로의 변경이 가능하다. 일상에서도 편리한 스마트키 시스템의 적용 덕분에 램 에어 시스템의 탑재가 더 수월해졌다고. 또한 도로 주행 시 급제동을 하면 후행 차량에 경고를 보내는 비상 정지 신호(ESS) 기능도 갖추고 있다.

2025년형 CBR1000RR-R 파이어블레이드 SP는 그랑프리 레드 단일 컬러로 판매되며, 가격은 이전보다 크게 낮아진 2,980만 원으로 책정됐다. 이번 출시를 기념해 오는 22일까지 2주간 혼다 모빌리티 카페 더 고에서 전시가 진행될 예정이므로 실물이 궁금하다면 직접 방문해서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신형 CBR1000RR-R 출시가 단순히 ‘바뀔 때가 됐으니 바뀐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선 이번이 마지막 변화일 수 있다. 오는 2027년 모토GP 레귤레이션 변경에 따라 출전 모터사이클의 배기량이 1,000cc에서 850cc로 내려갈 예정이고, 레이스에서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양산제품에 적용하는 점을 생각하면 파이어블레이드 역시 지금처럼 1,000cc가 아닌 850cc로 낮아질 수 있다. 여기에 지난 EICMA에서 발표된 E-컴프레서 엔진은 낮아지는 배기량에서 성능을 보강하기 위한 조치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지금의 파이어블레이드가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야 기자 역시 동일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고, 집중도가 낮은 제품이 계속 출시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마지막이 될 수 있는 파이어블레이드의 출시가 반갑기도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명차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실력과 성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저작권자 © 라이드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