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탈 때 헬멧 착용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사실 설명이 필요 없다. 아마 대부분의 라이더가 헬멧을 쓰는 것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실제 자전거 도로에서는 헬멧을 쓰지 않고 달리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헬멧을 써야 하는 이유만큼이나 착용하지 않는 이유도 다양하다. 이유를 물어보면 귀찮아서, 멋이 없거나 패션상의 이유, 헬멧이 비싸서, 심지어 싼 티 나는 헬멧을 쓰기 싫어서 유행하는 헬멧을 사기 위한 돈을 모으는 중이라는 대답까지 들을 수 있다. 헬멧을 갖고 있지만 집에 놓고 나온 경우는 제외하고도 말이다.



자전거 헬멧이 의무착용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이를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안전을 위해 헬멧을 쓰고자 한다면 좋은 제품을 고르기 위한 조언을 할 수는 있다. 좋은 헬멧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다. 하지만 적당한 가격에 충분히 머리를 보호할 수 있고, 어딘가의 모임에 쓰고 나가더라도 촌스럽다고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의 디자인을 가진 헬멧이라면 일단 어떤 물건인지 한 번 살펴봄직 하지 않을까?

30년 전통의 헬멧 브랜드 ‘지로’(Giro) 자전거의 역사와 비교하면 헬멧의 역사는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75년 미국의 벨(Bell)사가 자동차 레이스용 헬멧을 개량해 만든 충격흡수 폼을 이용 한 바가지 모양 헬멧이 그 시초라 볼 수 있다. (참고로 지로는 현재 사이클링 및 윈터스포츠용 고급 헬멧 생산 브랜드로 이스턴 벨 스포츠에 의해 인수되었다.)   지로는 1985년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에서 설립된 스포츠용품 전문 메이커다. 지로는 자전거 헬멧이 사용되기 시작한 초창기의 메이커로, 현재는 헬멧 뿐 아니라 스포츠용 고글, 장갑, 슈즈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든다. 미국의 스포츠 영웅이었던 랜스 암스트롱을 비롯한 많은 프로선수들이 지로 헬멧의 애용자였다.   특히 지로의 헬멧은 가장 가볍지는 않았으나, 늘 당대 최고수준의 보호능력을 자랑했다. 2007년에는 미국에서 자전거를 타던 청년이 머리를 대형 트럭에게 밟히는 사고를 당했으나, 지로 헬멧 덕분에 전혀 다치지 않고 살아난 사건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이 청년은 선수용의 최상급 기술이 적용된 모델이 아닌 비교적 저렴한 헬멧을 쓰고 있었음에도, 지로 헬멧은 확실하게 머리를 보호했다. 이를 통해 지로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헬멧을 만드는 메이커 중 하나임을 증명했다.

지로의 아시안 핏 적용 모델 ‘서반트’



동양인과 서양인의 두상은 다르다. 우리나라 사람의 머리 모양은 대부분 서양 사람들에 비해 이마가 넓고, 뒤통수가 납작한 형태라고 한다. 반면 서양인의 두상은 이마의 폭이 좁고 앞뒤의 폭이 넓은 경우가 많다. 서양인 두상에 맞는 헬멧을 쓸 경우, 앞뒤가 헐겁고 머리 양 옆이 꽉 끼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때문에 헬멧에 표시된 착용 가능한 머리둘레가 비슷하더라도 한 사이즈 이상 큰 헬멧을 써야 편안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사실 안전을 생각하면 바람직하지 않다. 헬멧은 머리에 확실히 밀착되어야 제대로 된 보호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로는 동양인의 머리에 맞는 헬멧 디자인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4년간의 연구 끝에 ‘아시안 핏’ 모델을 내놓게 되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서반트(SAVANT) 헬멧이다.



로드바이크 입문용으로 적합한 헬멧



자전거 입문자들이 헬멧을 고를 때, 안전성 이상으로 신경 쓰는 부분이 바로 가격과 디자인이다. 물론 프로 선수들이 쓰는 헬멧과 같은 모델은 고급스럽고 멋지다. 하지만 헬멧에 30여 만원의 비용을 지불하기에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무조건 저렴하기만 한 촌스러운 헬멧을 구입하기는 싫다. 일단 스타일은 선수들이 쓰는 것과 비슷하면서, 가격은 보다 저렴한 모델이 바로 입문자들이 원하는 헬멧의 조건 아닐까?



일단 서반트의 디자인을 살펴보자. 지로의 최상급 헬멧인 에이온이나 아트모스의 디자인과 닮았다. 물론 디테일한 부분은 차이가 있지만, 옆에서 봤을 때 앞쪽이 둥글고 뒤쪽이 날렵하게 올라간 실루엣이나, 앞에서 봤을 때 불꽃 모양으로 보이는 통기구의 형태에 이르기 까지 닮은 부분이 많이 보인다.



컬러는 눈에 띄는 형광연두색과 은회색, 무광검정의 기본컬러 모델, 그리고 무광검정 바탕에 적색, 청색으로 포인트를 준 모델이 각각 나와 있다. 기본적으로 어떤 유니폼과 함께 착용했을 때라도 어색함이 없는 컬러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예를 들어 평소에 캐주얼한 평상복으로 자전거를 탄다면 은회색이나 무광검정 헬멧이 대체로 잘 어울린다. 야간 라이딩을 자주 하며 형광색 윈드브레이커를 자주 입는다면 형광연두색이 최고의 조합이다. 자전거의 프레임이 붉은색, 혹은 푸른색이라면 이에 맞춰 헬멧에도 같은 컬러로 포인트를 주면 좋다. 대체로 무난하면서도 멋있다고 생각되는 컬러다.



카탈로그나 제조사 홈페이지의 사진으로는 알아보기 힘든 부분이 바로 헬멧의 마무리다. 사실 카탈로그의 작은 사진으로 볼 때는 멋있는데, 실물을 보면 조잡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서반트 헬멧을 볼 때 적어도 그런 걱정은 접어두어도 괜찮을 것 같다.



헬멧의 컬러, 그리고 무늬의 인쇄상태 등 디자인의 마무리는 지로의 다른 최상급 헬멧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고급스럽다. 고급 헬멧의 디자인을 어설프게 흉내 낸 비슷한 가격대의 제품들과 비교를 거부하는 완성도를 자랑한다.



편안한 착용감

서반트 헬멧은 지로의 'Roc Loc 5 피트 시스템'이라는 방식으로 머리에 고정된다. 간단하게 말해 헬멧을 쓰고 후두부의 다이얼을 돌려 머리를 둘러싼 밴드 길이를 조절해 딱 맞게 고정하는 방식인데, 여기에 지로 헬멧만의 특별한 설계가 적용되었다는 뜻이다.

사실 서반트 헬멧에 적용된 ‘Roc Loc 5'는 지로의 다른 최상급 헬멧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방식이다. 입문용으로 적합한 헬멧이지만, 최상급 헬멧과 동급의 기술을 적용했다고 보면 된다. 일단 무게가 가볍고, 표면이 부드러운 소재를 사용해 착용감이 무척 좋다. 게다가 최대한 가볍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후두부에 위치한 다이얼의 크기가 작은 편이지만, 장갑을 끼고도 돌리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지로 서반트 헬멧의 특징 중 하나는 머리를 둘러싼 밴드의 위치를 상하로 조절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밴드의 상하 위치는 3단계로 조절되며, 다이얼을 이용해 꽉 죄지 않아도 후두부 아랫부분에 위치한 밴드가 자연스럽게 머리를 감싸며 헬멧을 편안하게 고정해준다.

헬멧 내피의 구성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이마의 헬멧이 닿는 부분을 부드럽게 감싸도록 디자인 되었다. 정수리 부분에는 패드가 들어가지 않는다. 다소 단촐한 구성이 아쉽지만, 정수리 부분의 패드는 생략하더라도 별로 착용감에 영향을 주지 않으니 큰 단점이라 지적할 정도는 아니다.

턱끈은 자전거용 헬멧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Y자 형태의 지지방식이다. 헬멧 끈이 갈라지는 부분이 귀 바로 아래에 위치하도록 조절하면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다. 양쪽의 턱끈의 결합부는 원터치 버클을 적용해 쉽게 착용하고 벗을 수 있다.



우수한 통풍성과 가벼운 무게



서반트 헬멧의 특징 중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통풍성이다. 서반트 헬멧에는 무려 25개의 벤트홀(통풍구)이 통풍을 담당하며, 지로 윈드터널 벤틸레이션(WIND TUNNEL™ VENTILATION) 기술이 적용되었다.

사실 통풍성은 헬멧의 보호능력과도 관계가 있다. 벤트홀이 많을수록 헬멧의 통풍성은 좋아지지만, 보호능력은 떨어질 우려가 있다. 게다가 단순히 벤트홀이 많기만 해서 통풍성이 우수한 것은 아니다. 구멍이 뚫려있어도 내부가 꽉 막혀있다면 실제 바람이 통과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지로의 윈드터널 벤틸레이션 디자인이란 헬멧 앞쪽의 벤트홀을 통해 들어온 공기가 뒤쪽으로 흘러나갈 수 있도록 내부에 공기의 길을 만들어놓았음을 의미한다. 헬멧이 두부에 꽉 밀착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짝 공간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장기간 착용 시 느끼게 되는 피로감도 줄어든다.



서반트 헬멧은 지로의 다른 상급 모델과 비교했을 때, 벤트홀 주변의 충격흡수재 두께가 두꺼운 편이다. 최상급 헬멧에 들어가는 고가의 카본파이버나 나일론 보강재를 넣지는 않았지만, 헬멧의 보호능력을 충분히 높이기 위함이다.



인몰드 공법으로 제작된 서반트 헬멧은 충격흡수재(EPS : 발포폴리스틸렌)와 플라스틱 외피 사이의 들뜸이 전혀 없는 깔끔한 모양새를 보여준다. 인몰드 공법으로 만들어진 헬멧은 복잡한 모양임에도 마무리가 깔끔할 뿐 아니라, 사고 발생 시 헬멧 전체에 충격을 고르게 분산시켜 부상을 줄이는데도 도움을 준다.



이번 리뷰에 사용된 서반트 헬멧은 일반적인 성인 남성이 가장 많이 구입하는 라지(Large) 사이즈로, 실측 무게는 헬멧에 표기된 무게보다 2g 더 가벼운 246g이었다. 서반트 헬멧은 머리둘레를 기준으로 Small(51-55cm), Medium(55-59cm), Large(59-63cm)의 3가지 사이즈의 아시안 핏 기본모델이 나온다. 머리둘레 61-65cm의 빅사이즈 모델은 서반트 아시안 핏 모델과 별도로 나온다.



지로는 서반트 헬멧을 로드바이크 라이딩 및 트라이애슬론, 투어링, 어번 라이딩용으로 구분하고 있다. 산악주행 시 사고가 발생할 경우 머리에 2차, 3차 충격이 가해질 수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비한 보강재를 헬멧에 넣을 경우, 강력한 보호능력을 얻는 대신 무거워진다는 단점이 있다. 서반트는 가벼운 무게와 통기성, 편안한 착용감에 초점을 맞춰 개발된 헬멧인 만큼 가급적 도로주행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지로 서반트 2014 아시안 핏 모델의 소비자 가격은 12만원이다. 빅사이즈 모델(XL)의 가격은 13만원으로 1만원 더 비싸다. 서반트를 비롯한 지로 헬멧과 벨 헬멧은 참좋은레저(주)( www.cellosprts.com )가 국내 수입하고 있다.





총평 :

서반트 헬멧은 지로의 중급 모델이다. 국내의 레저/스포츠용 자전거 입문자들이 주로 저가형 헬멧보다 중급 모델 이상의 헬멧을 선호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서반트는 로드바이크 입문자용으로 적합한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서반트의 특장점은 아시안 핏 디자인으로 착용감과 통기성이 우수하다는 점이다. Roc Loc 5와 윈드터널 벤틸레이션이라는 지로의 최상급 헬멧과 같은 기술이 적용되었다. 디자인은 튀지 않고 무난하여 대부분의 복장에 잘 어울린다. 외관의 소재와 마무리도 깔끔하며 고급스럽다. 무게는 Large 사이즈가 실측 246g으로 비교적 가벼운 편이다. 서반트는 12만원이라는 소비자가격을 생각할 때 전체적으로 굉장히 품질이 우수한 헬멧이라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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