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타는 시속 100km/h가 넘는 속도로 달릴 수 있는 놀라운 순발력을 갖고 태어났다.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다. 뛰어난 반사 신경과 탄력 있는 근육으로 민첩한 턴과 점프를 할 수 있으며, 고속으로 달리다가 넘어지더라도 유연한 몸으로 충격을 흡수한다.
사람은 원래 치타보다 느리다. 걷는 속도는 시속 4km/h 정도이며, 달리더라도 시속 25km/h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면서 시속 30km/h, 40km/h, 50km/h... 프로 레이서라면 내리막길에서 100km/h이상의 속도를 내기도 한다.
자전거라는 놀라운 도구를 손에 넣음으로서 우리는 속도를 얻었다. 하지만 이 속도는 완전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몸은 원래 이처럼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그저 넘어지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만큼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 있다. 빠른 속도로 달리려면 우선 안전하게 몸을 보호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특히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헬멧은 반드시 써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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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트래거는 1995년까지 자전거 프레임과 각종 부품을 만들었고, 이후 트렉에 의해 인수되어 각종 컴포넌트 개발을 담당하는 자회사가 된다. 본트래거의 브랜드 철학은 ‘첫째 강하고, 둘째 가볍다’로 요약될 수 있다. 본트래거의 컴포넌트와 헬멧은 트렉이 후원하는 프로 사이클링 팀과 선수들이 사용함으로서 그 성능과 품질을 증명한다. |
벨로시스, 본트래거의 새로운 톱모델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 사이클링 팀과 선수들이 그에 어울리는 장비만을 사용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해마다 7월에 프랑스에서 열리는 투어 레이스인 ‘투르 드 프랑스(Le Tour de France : TDF)’는 전 세계에서 선택받은 팀과 선수들만이 참가하는 꿈의 리그이며, 트렉이 후원하는 프로 사이클링 팀인 ‘라디오섁 레오파드 트렉(RadioShack Leopard Trek)’팀도 TDF의 스타트라인에 선 팀의 하나였다.
사이클링 마니아들은 프로 선수들의 장비를 많은 관심을 갖고 살펴본다. 이들이 사용하는 장비 중에는 종종 아직 발표되지 않은 테스트중인 신제품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썰미가 뛰어난 이들은 레오파드 트렉 팀의 선수들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헬멧을 쓰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이 헬멧의 정체는 바로 본트래거의 새로운 톱클래스 헬멧인 ‘벨로시스(Velocis)였다.
벨로시스는 아직 트렉의 공식 홈페이지에도 소개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모델이지만, 테스트를 위한 샘플로 소량 국내에 들어온 제품을 입수해 미리 사용해볼 수 있었다.
본트래거의 홈페이지에는 현재 ‘오라클’이라는 모델이 프로 레이서가 사용하는 최상급 모델이며, 타임트라이얼 레이스에서 세계 최강의 선수 중 한명인 파비안 칸첼라라가 이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본트래거에 의하면 벨로시스는 기본적으로 오라클과 같은 수준의 보호능력을 가진 레이스용 헬멧이며, 가벼운 무게와 함께 내부의 공기터널을 이용한 통풍성을 극대화했음을 강조한다.
벨로시스 헬멧을 앞이나 위에서 보면 전체적으로 둥글고 심플한 느낌이다. 하지만 옆과 뒤에서 본 느낌은 전혀 다르다. 옆모습에서는 둥근 앞쪽과 달리 뒤로 갈수록 뾰족하고 날렵하게 변하는 실루엣이 잘 드러난다. 뒷모습에서는 커다란 공기배출구가 흡사 우주선의 노즐을 떠올리게 된다. 리뷰를 위해 사용된 헬멧은 M사이즈였는데, 무게는 실측 223g으로 제원 상 무게인 229g보다 6g 더 가벼웠다.
골격을 내부에 감춘 인몰딩 콤포지트 구조
자전거 헬멧의 구조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얼핏 스티로폼 덩어리에 플라스틱 껍질과 머리끈을 달아놓은 제품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대략적인 구조는 맞지만, 몇 가지가 틀렸다.
우선 자전거 헬멧에는 일반적인 스티로폼이 아닌 EPO라는 소재가 사용되는데, 충격을 받으면 물컹거리며 찌그러지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파열되면서 충격을 보다 효과적으로 흡수한다. 한 번이라도 큰 충격을 받은 헬멧은 충격 흡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절대 재사용해서는 안 되지만, 이러한 특성 때문에 단순한 스티로폼 덩어리 이상의 놀라운 충격흡수 능력을 보여준다.
또한 레이스용 모델을 비롯한 본격적인 스포츠용 자전거 헬멧은 대부분 내부에 스켈레톤 혹은 케이지라 부르는 보강재가 들어있다. 이는 큰 충격을 받아도 헬멧이 쪼개지면서 머리에서 벗겨지는 것을 방지하는데, 저가형 헬멧에는 이러한 보강재가 생략된 경우가 많다. 헬멧이 충격으로 벗겨질 경우 2차 충격에서 머리를 보호할 수 없다. 평소 자전거도로를 벗어나 도로나 산악 주행과 같은 본격적인 스포츠 라이딩을 즐긴다면, 그에 합당한 충분한 보호능력을 갖춘 헬멧을 써야 할 필요가 있다.
많은 레이스용 헬멧이 외관에 골격을 노출하지만, 벨로시스 헬멧의 외관에서는 스켈레톤을 찾아볼 수 없다. 스켈레톤을 EPO 내부에 삽입하는 인몰딩 복합재(In-molding Composite) 기술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카본이나 유리섬유 같은 복합재가 외부로 드러난 헬멧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이라면 아쉬움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켈레톤을 완전히 내부로 감춘 헬멧의 보호능력이 더 우수하다고 한다.
이러한 스켈레톤은 헬멧의 통풍성 및 무게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골격이 들어있기 때문에 통기구를 더욱 키워도 헬멧의 보호능력과 내구성이 충분히 유지되며, 경량 헬멧을 디자인하기에도 유리하다.
우수한 통풍성, 쾌적한 착용감
헬멧의 통풍성을 이야기 할 때, 그저 구멍이 몇 개가 나있는지를 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머리에서 발산되는 열기가 단순히 위쪽으로 난 구멍으로 빠져나간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자전거가 달리는 동안 헬멧 앞쪽에서 들어온 공기가 뒤로 빠져나갈 때 헬멧 안에 열기가 모이지 않고 제대로 머리를 식혀줄 수 있다. 마치 자동차의 라디에이터를 식히기 위한 공기흡입구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여러 헬멧 메이커들이 최신형 헬멧을 내놓을 때 외부 통기구의 숫자가 아닌 내부의 공기 순환이 잘 이루어짐을 강조하고, 더욱 통풍성이 우수한 헬멧을 만들기 위해 경쟁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본트래거 벨로시스 또한 마찬가지다. 헬멧을 썼을 때 머리의 정수리와 맞닿는 부분의 면적을 줄이고, 최대한 많은 공기가 유입되어 내부에서 쉽게 흘러나갈 수 있게 유도하는 ‘인터널 채널링’이라는 디자인을 적용했다. 앞에서 뒤로, 세로방향으로 공기가 흐르도록 내부가 터널처럼 디자인 된 것을 눈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마와 맞닿는 패드의 촉감은 수준급이다. 꽤나 두툼한데 무척이나 부드럽다. 썼다 벗은 직후의 복원력도 무척 우수한 편. 다양한 메이커의 헬멧을 써봤지만, 벨로시스의 패드는 자신 있게 별 다섯 개 만점을 줄 만 하다.
패드에는 AG+라는 항균처리가 되어있다고 한다. 포함된 은성분 세균의 번식과 악취를 막는다고 한다. 물론 세탁을 안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한여름 라이딩에 헬멧이 땀에 젖어도 세균이 번식하는 시점을 조금 더 늦춰준다는 의미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패드 뿐 아니라 턱 끈에도 항균처리가 되어있다. 이전 최상급 모델인 오라클보다 통기성이 좀 더 우수하고 부드러운 소재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턱 끈을 바싹 조이고 머리를 움직여 보았지만, 턱이나 뺨에 쓸리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는다.
:: 스트랩의 길이 조절 다이얼은 장갑을 낀 상태에서도 조작이 편리하다.
:: 후두부를 감싸는 스트랩의 위치는 3단계로 높이 조절 가능하다.
후두부를 감싸며 헬멧을 머리에 고정하는 플라스틱 스트랩은 ‘헤드마스터 2’라는 기술이 적용되었다. 다이얼을 통해 스트랩의 길이를 늘이고 줄여 머리에 꼭 맞게 고정하고, 스트랩이 후두부에서 고정되는 부분의 높낮이를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모든 조작을 한 손으로 할 수 있어 편리하며, 장갑을 끼고도 쉽게 다룰 수 있다. 다만 지로를 비롯한 다른 메이커의 헬멧에도 유사한 기능이 있으니 본트래거 헬멧만의 특징이라 강조하기에는 다소 애매하다.
반면, 정말 마음에 들었던 기능이 있는데 바로 ‘네오바이저’라는 천 소재의 햇빛가리개다. 로드바이크 라이더 중에는 간혹 쪽모자를 쓰고 그 위에 헬멧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여름에는 무척 더울 뿐 아니라 헬멧이 머리에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 보호능력을 저하시킨다. 벨로시스의 네오바이저는 헬멧 앞쪽에 작은 챙이 튀어나와 마치 쪽모자를 쓴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벨크로를 이용해 간단히 탈착 가능하며, 각도도 조절할 수 있다. 다만 헤어스타일이 흐트러지는 것 때문에 헬멧 안에 쪽모자를 쓰던 라이더에게는 별 소용없는 기능일지도 모르겠다.
완벽함에 다가간, 약간의 아쉬움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물건이란 없다. 머리에 편한 헬멧은 버섯돌이 같다는 이유로 외면되기도 하며, 날렵하고 멋진 헬멧이지만 불편해서 쓰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본트래거 벨로시스 역시 이 같은 딜레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일단 테스트를 위해 받은 제품은 아시안 핏 모델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좌우로 넓은 두상보다는 앞뒤로 넓은 두상에 적합하게 디자인 된 모델이라는 뜻이다.
테스트에 사용된 모델은 M사이즈로, 본트래거의 제원을 참조하면 머리둘레 54-60cm에 적합한 제품이다. 하지만 머리둘레 57cm와 58cm의 두 기자가 벨로시스 헬멧을 써보았는데, 머리둘레가 비슷했음에도 한 기자에게는 너무나 편했던 헬멧이, 평소 버섯돌이를 자처하는 다른 한 기자에게는 머리 좌우가 헬멧에 끼여 제대로 써볼 수도 없었다. 이는 헬멧의 피팅만으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역시 헬멧은 직접 써보고 구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버섯돌이 기자의 머리가 특수한 경우다.
벨로시스는 총 3가지의 컬러로 출시된다. 맷 블랙 컬러와 레드 차콜 컬러, 티타늄 컬러가 출될 예정이다. 튀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무게감을 실을 수 있는 컬러 조합이다. 해외 시장에서 출시되는 네온 컬러가 국내 시장에 들어오지 못한 것은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벨로시스 헬멧의 사이즈는 S(51-57cm), M(54-60cm), L(58-63cm)의 3가지로 출시되며, 가격은 25만 9000원 이다. 저렴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감각적인 디자인과 헬멧의 뛰어난 품질, 완성도를 생각하면 납득이 갈 만한 가격이다.
한 가지 더, 벨로시스 헬멧을 구입했다면, 구입 후 1년 내에 사고로 헬멧이 파손되었을 경우 트렉코리아를 통해 새 헬멧으로 교체 받을 수 있다. 물론 사고는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헬멧을 통해 조금이라도 부상을 줄이고 혹시 모를 또 다른 사고에서 라이더를 지키고자 함이니, 보험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본트래거 벨로시스 헬멧은 트렉코리아( www.trekbikes.com/kr/ko/bikes/ )를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글
라이드매거진 sjlee@ridemag.co.kr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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