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레이스는 떼놓을 수 없는 관계다. 당장 우리가 타는 자전거만 놓고 보더라도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만들어진 탈것이며, 경쟁자를 누르기 위해 더 빠른 자전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진화해왔다. 그리고 경쟁자를 누르고 정상에 자리에 오르기 위한 레이스의 과정 속에서 각양각색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생겨났다. 레이스를 보는 것은 위대한 자전거의 역사를 지켜보는 것이라는 한 프랑스 평론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자전거 레이스에는 수많은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초인적인 힘을 내뿜으며 경쟁자들을 물리친 위대한 챔피언의 이야기, 부상당한 경쟁자를 도와주기 위해 자신의 레이스를 포기하거나, 팀 에이스의 우승을 위해 희생된 라이더의 사연, 경기 도중 탈진하거나 사고로 생명을 길에 묻은 안타까운 라이더의 삶에 이르는 마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올해도 분명 새로운 드라마가 펼쳐질 것이다.

 

또한 레이스에 등장하는 새로운 자전거들은 올해, 혹은 다음해 등장할 최신모델이다. 챔피언 팀의 컬러를 입힌 한정판 모델에서, 프로 선수들의 유니폼, 관련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들을 미리 만나볼 수 있다. 승부의 결과에 관심 없는 순수하게 자전거만 좋아하는 이라도 가끔씩 레이스에 관심을 가져볼만한 이유로는 충분하다.

 

지로디탈리아(Giro d'Italia) : 5/9 ~ 6/1

 

 

Fight for Pink. 1909년 시작된 세계적인 로드 레이스이며, 세계 3대 그랜드 투어 중 하나다. 이탈리아의 수려한 자연경관 속을 수많은 라이더들이 달리는 모습이 가히 장관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자전거의 축제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수많은 체인과 휠이 촤르륵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다. 2014년에 열리는 97번째 지로는 총 21개의 스테이지, 약 3,400km의 기나긴 거리를 자전거의 물결로 수놓게 된다.

 

 

지로는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이 거쳐간 레이스다. 챔피언 중의 챔피언이자 전설적인 이태리의 사이클 영웅인 파우스토 코피, 자동차 사고로 인해 왼쪽 다리의 길이가 오른쪽 다리보다 짧다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챔피언으로 등극한 마르코 판타니 등 수많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유서 깊은 대회이다. 과연 이번 대회를 통해 또 어떤 선수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줄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뚜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 7/5 ~ 7/27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이클 대회. 1903년 시작된 뚜르 드 프랑스는 수많은 사이클 선수들의 꿈의 무대로 참가하는 것 자체로 영광이라 여겨지는 세계적인 대회다. 세계 최상위급의 프로 콘티넨탈 팀과 월드투어 팀 및 선수들이 초대받아 참가할 수 있는 드림매치다.

 

 

뚜르 드 프랑스는 랜스 암스트롱이라는 거물 선수를 배출해낸 대회로도 유명하다. 무려 종합우승 7연패를 달성한 랜스 암스트롱은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며 모든 사이클 선수들의 귀감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이 모든 경력이 약물에 의존한 결과라는 미국반도핑기구(USADA)의 결과 발표에 따라 과거의 모든 영광이 영원히 기록에서 삭제되었다. 이 사건은 뚜르 드 프랑스를 제패한 ‘황제’의 추락으로 전 세계 사이클링 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3000km가 넘는 거리를 오직 자전거 하나만을 이용해서 달려야 한다는 것은 제아무리 날고 기는 프로 선수들이라도 부담스러울 일일 것이다. 자칫하다간 한순간에 체력적, 정신적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릴 수 있는 어렵고 힘든 경기이기 때문에 선수들은 도핑의 유혹을 끊임없이 받게 된다. 그만큼 처절하고 가혹한 레이스라는 뜻이다.

 

 

경쟁자와 자신을 이겨야 하는 가혹한 대회, 뚜르 드 프랑스는 올 해로 101번째를 맞는다. 총 21개의 스테이지로 진행되며, 약 3600km의 거리를 내달리게 된다. 대회가 열리는 프랑스 뿐 만 아니라 전 세계를 로드 바이크의 열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마성의 대회가 기다려진다.

 

 

부엘타 에스파냐(Vuelta a España) : 8/23 ~ 9/14

 

 

안달루시아의 여름. 앞에서 소개한 두 개의 대회들과 함께 세계 3대 그랜드 투어로 분류된다. 아프리카에 가까운 남쪽 나라에서, 한여름에 펼쳐지는 가장 뜨거운 레이스로 여름의 대미를 장식한다. 이번 2014 부엘타 에스파냐는 69번째 대회로 총 21개의 스테이지로 진행 될 예정이며, 약 3100km의 거리를 내달리게 된다. 태양의 나라 스페인에서 뜨거운 열정을 내뿜으며 거침없이 내달리는 사이클 선수들의 모습을 하루빨리 보고 싶다.

 

 

여담이지만 일본의 유명 자전거 애니메이션인 ‘나스 : 안달루시아의 여름‘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바로 이 부엘타 에스파냐다. 키타로 코시카 감독의 2003년 작품으로 자전거를 좋아하는 라이더라면 한번쯤 봐야 할 문화 작품 중 하나다. 사이클 선수들의 행동 하나하나까지 생생하게 표현해낸 키타로 감독의 묘사력에 극찬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UCI 세계선수권대회(UCI World Championship)

 

 

2014년 시즌에서 주목할 만한 세계선수권대회 경기로는 노르웨이 하프젤에서 열리는 MTB 세계선수권, 스페인 폰페리다에서 열리는 도로사이클 세계선수권 경기, 마지막으로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리는 트랙 세계선수권 경기다. 이 세계선수권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출신 국가를 상징하는 유니폼을 입게 되며, 대회에서 우승한 자는 5개 대륙을 상징하는 레인보우 저지를 1년 동안 입을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진다.

 

 

MTB 세계선수권 대회는 9월 2일부터 9월 7일까지 열린다. 전 세계 MTB 팬들의 눈과 귀가 집중되는 세계적인 대회다. MTB 세계선수권 대회는 MTB 최강국을 결정짓는 자리로 크로스컨트리(XCO), 크로스컨트리 엘리미네이터(XCE), 다운힐(DHI), 크로스컨트리 릴레이(XCR)를 통해 우승자를 결정짓는다. 올 해는 과연 어떤 나라가 포디엄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을지 기대 된다.

 

 

9월 21일 스페인 폰페리다는 뜨거운 사이클 선수들의 무대로 탈바꿈 할 것이다. 우승은 국가나 선수 모두에게 명예로운 일이다. 사이클 선수들 간의 어택과 견제가 쉴 새 없이 이루어질 이번 대회에서 과연 어느 나라가 가장 빠른 속도로 결승선을 통과할 것인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0월 5일부터 10월 11일까지 영국 맨체스터에서 트랙 자전거만의 축제가 열린다. 실내 경기장인 벨로드롬에서 진행되는 트랙 세계선수권 대회는 빠른 속도감과 더불어 터질 듯한 퍼포먼스와 박진감을 느낄 수 있는 대회다. 또한 픽시를 타는 라이더라면 트랙 세계선수권을 특별한 관심을 갖고 볼 만 하다.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가장 멋진 디자인을 지닌 트랙 바이크들이 엄청난 속도로 경기장을 누비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타고 있던 자전거가 저렇게 멋진 매력을 지닌 자전거 였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묘한 동질감을 느낄수 있을지도 모른다.

 

 

직접 자전거를 타고 라이딩을 하는 것도 재밌지만 지인들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스릴 넘치는 대회를 시청하는 것도 자전거를 즐기는 재미 중 하나다. 아쉽게도 위에 소개한 유명 대회들을 현재 우리나라 지상파 채널을 통해 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간혹 가다 몇몇 케이블 채널에서 대회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곳이 있긴 하지만, 그냥 지나간 경기를 재방송해주는 방송으로 현장의 생생함을 온전히 전달 받을 수 없다.

 

 

최근에는 몇몇 해외 스포츠 채널을 통해서 이러한 사이클링 이벤트를 관람할 수 있어 국내 사이클 팬들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고 있다. 하지만 처음 레이스를 관람하는 이들은 너무나 긴 경기시간에 당황하고, 몇 시간에 걸쳐 대회를 보는 것이 나의 자전거 라이프에 도움이 되는 일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기도 한다.

 

 

솔직히 반나절이 넘는 긴 시간동안 레이스를 지켜보는 것은 자전거 광이라 해도 쉽지 않다.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볼 필요는 없다. 각 스테이지마다 하이라이트가 되는 부분이 있다. 평지 스테이지라면 골인 지점으로 달려드는 스프린터들의 질주와 치열한 몸싸움을, 산악 스테이지라면 온 몸의 근육을 쥐어짜며 가파른 산을 무지막지한 속도로 오르는 선수들의 놀라운 모습과 지켜보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시원한 다운힐을 즐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레이스를 보는 것은 분명 당신의 자전거 라이프에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사람들과 공통 된 주제를 갖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즐거운 일이다.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의견으로 논쟁을 벌일 수도 있다. 올 해는 과연 어떤 일들이 사이클 팬들의 흥미로운 이야기 주제가 될지 기대된다.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로 가득한 각종 자전거 대회들은 분명 당신의 자전거 라이프를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유명 프로 팀들의 레이스를 보면서 나만의 라이딩 롤모델을 찾을 수도 있고, 그 롤모델을 보면서 레이스에 대한 마음 속 깊은 열정을 불태울 수도 있다. 또 그 열정을 잃지 않고 꾸준히 연습하다보면 롤모델 못지않은 멋진 기량을 선보일 수도 있다. 이젠 자전거를 타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보고 듣고 느껴보는 건 어떨까.

 

 

제공 : 문서우 기자 / 라이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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