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의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고도 파워 넘치는 엔진은 모터사이클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동력원이다. 모든 모터사이클은 장르를 불문하고 이러한 엔진을 개발하기 위해 메이커의 사명을 걸고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쏟아 붓는다. 엔진이 뒷받침되어야 다양한 퍼포먼스가 가능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프릴리아는 오랜 시간 2스트로크 엔진 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섰던 모터사이클 메이커다. 얼마 전까지 존재했던 MotoGP 125, 250클래스는 모두 2스트로크 기반이었으며 당시 경량화와 고출력 설계를 기본으로 했던 아프릴리아의 RS시리즈는 뚜렷한 경쟁력을 가지고 많은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양산 모델 또한 그러한 레이서 머신들을 기반으로 현실에 타협한 설계를 주로 진행했지만 2스트로크 엔진의 사양세와 더불어 일상생활에서 운전자가 요구하는 엔진 특성을 맞추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했던 아프릴리아는 대형 슈퍼바이크에 적용되어 왔던 65도 V형 2기통 엔진 기술력을 이용해 750cc 미들클래스에 어울리는 크기로 축소했다. 실린더 배치는 90도로 수정해 저중속에서의 파워에 치중했으며 네이키드 바이크인 쉬버 750과 슈퍼모타드 도르소두로 750에 채용했다. 

 

두 모델에 실린 V2 엔진은 날카로운 반응성을 무기로 라이드 바이 와이어(Ride-by-Wire) 시스템, 즉 전자제어 스로틀 맵핑을 ECU에 업그레이드 하면서 더욱 뚜렷한 성격을 갖게 됐다. 아프릴리아 엔진만 가진 무언가가 필요했던 시점에 적절한 자극제였다. 당시 2기통 엔진은 두카티가 꽉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사의 L트윈과도 확연히 구분되는 맥동이 빠른 90도 V2 엔진은 저회전부터 맹렬하게 회전했으며 무엇보다도 엔진과 운전자의 직결감이 훌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200cc 급으로 업그레이드 된 V2 엔진은 도루소두로 1200에 적용돼 두카티 하이퍼모타드 1100에 대항하는 대형 슈퍼모타드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엔진은 좀 더 부드럽고 토크풀했다. 최대출력도 120마력대의 높은 수치를 자랑해 가속은 끝없이 이어졌다. 성능대비 주목받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대로 사장하기 아까운 엔진임은 분명했다.

 

 

세계적으로 유명세인 듀얼퍼포즈 시장에 아프릴리아가 꺼내 든 카드는 카포노드(Caponord) 1200 이다. 베스트 투어링 패키지를 표어로 걸고 나온 이 모델은 아프릴리아가 새로이 개발한 다양한 기술이 곳곳에 녹아들었다. 슈퍼바이크인 RSV4가 자랑하는 APRC 통합 시스템과는 또 다른 일반 도로용 전자제어 패키지가 가득하다. 이미 시장을 선점한 타 브랜드에 경쟁하기 위한 당연한 투자로 볼 수 있다.

 

 

개발 모토는 라이딩 퍼포먼스와 편안함 사이의 밸런스 유지다. 여행을 위한 완벽한 모터사이클을 추구하면서도 운전하는 재미를 추구한 것이 카포노드 1200의 지향점이다. 엔진은 V 트윈 90도 엔진으로 이미 검증된 성능을 갖췄지만 내부 유동 역학을 고려해 손실 가능한 마찰을 최대한 줄이며 성능을 최적화하는 작업에 몰두한 결과 극히 낮은 회전수에서도 부드러운 가속감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3가지 모드로 구분되는 라이딩 모드로 즉시 원하는 스타일로 엔진 맵핑을 조절할 수 있는데, 평소에는 투어링 모드를 이용하는 것이 편안하지만 스포츠 주행을 원한다면 스포츠 모드로 좀 더 날카로운 엔진 반응성을 얻을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레인 모드로 최대한의 트랙션 컨트롤 기능을 작동해 안전을 추구할 수도 있다. 라이딩 모드 셀렉터는 이 급에서는 상식적인 전자장비 중 하나가 됐다.

 

 

알루미늄 다이캐스팅 프레임은 아프릴리아의 상징과도 같다. 강성이 높을 뿐 아니라 비틀림 강성에서 최적의 밸런스를 가진 프레임이 카포노드 1200에 탑재됐다. 섀시와 연결된 서스펜션은 ADD(아프릴리아 다이내믹 댐핑)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운전자와 동승자의 편안한 주행을 돕기 위한 전자 장비인 이 시스템은 서스펜션을 주행상황에 맞게 알아서 전자 제어하는 기능이다. 

 

 

다시 말해 현재 가속도와 스로틀 개도 상황, 브레이킹 상황 등 다양한 변수를 모두 고려해 전/후 서스펜션의 감쇄력을 실시간 조절하는 시스템이다. 특히 아프릴리아는 서스펜션이 압력센서를 이용해 감응치를 계산하는 일련의 솔루션에 대해 독보적인 기술이라 홍보하고 있다. 초기 하중은 운전자가 조건에 따라 버튼을 눌러 간단히 변경할 수 있다. 주행 중 노면 충격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ADD의 최대 목표다.

 

 

오랜 여행을 가능케 하는 카포노드 1200의 마법은 ADD로 끝나지 않는다. ACC(아프릴리아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으로 스로틀 조작 없이 원하는 속도로 정속 주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그것과 같은 시스템으로 연료 효율을 높게 유지할 수 있고 고속도로를 이용하거나 오랜 직진 구간을 이동할 때 매우 요긴하게 쓸 수 있다. 운전자는 잠시 운전에 대한 집중이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주변을 둘러보며 여유롭게 여행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된다.

 

 

놀라운 기술은 또 한 가지 있다. AMP(아프릴리아 멀티미디어 플랫폼) 시스템은 모터사이클과 스마트폰을 연동해 각종 계기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 속도계, 회전계, 엔진 출력 및 토크나 순간 연비 및 평균 연비 등 다양한 주행 정보를 실시간으로 살펴볼 수 있고 데이터를 저장해 주행 습관을 관찰할 수도 있다. 

 

 

아이폰의 경우 전용 소프트웨어를 스마트폰에 설치하면 아프릴리아 레이싱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모터사이클과의 연동 신호로 자이로스코프 기능을 활용해 모터사이클의 기울기나 기어 조작 속도, 가속순간 타이어의 슬립이 몇 퍼센트 진행됐는지 등 섬세한 데이터를 마치 전담 미케닉이 분석해 준 것처럼 정확한 데이터를 확인할 수도 있다. 양산형 모터사이클에 적용된 기술치고는 확실히 첨단 장비다.

 

 

차량 무게는 228킬로그램으로 듀얼퍼포즈 모델 평균 수준이다. 25리터에 달하는 연료탱크는 장거리 여행에도 넉넉히 대응할 수 있는 크기라 안심이다. 아마도 크루즈 컨트롤 기능과 접목하면 국토 횡단은 우습게 치러낼 만한 엔진 효율을 기반으로 투어링 모터사이클로써의 조건을 잘 만족시켰다. 

 

 

ABS(잠김 방지 브레이크)와 ATC(아프릴리아 트랙션 컨트롤)도 기본 사양이다. 온갖 첨단 장비를 싣고 두 가지 필수 요소를 빼 놓았을 리 없다. 최대출력 125마력에 토크는 11.4kgm으로 약 6,800rpm 정도의 비교적 낮은 회전역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특징이다. 1,197cc에 달하는 큰 배기량을 자랑하지만 부드러운 회전감각으로 원하는 때에만 묵직한 힘을 발휘하는 순종적인 엔진이다.

 

 

프론트 마스크는 슈퍼바이크 RSV4와 닮은 3연장 헤드라이트로 평범한 인상이다. 편안한 라이딩 포지션을 가진 높은 핸들 바와 크고 넓직한 시트, 그리고 차체와 잘 어울리는 패니어 케이스 등 디자인상 특별히 모난 구석이 없다. 스즈키 DL 시리즈가 시초인 부리모양의 페어링도 굳이 따라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처럼 온로드 지향인 주행 특성상 일반 스트리트 바이크와 같은 휀더가 장비되는 것도 무난한 설정이다. 

 

 

한눈에 봐도 긴 서스펜션 트래블(작동범위)이 얼마나 편안한 주행감을 선사할지 기대된다. 윈드 스크린은 수동으로 조절 가능한 타입이며 사외품으로 다양한 어드벤처용 액세서리가 준비되어 있다. 진정한 오프로드로 모험을 떠나고 싶다면 차체를 보호할 수 있는 몇몇 옵션을 추가하면 충분히 도전할 수도 있다.

 

 

순한 듯한 인상을 가진 카포노드 1200은 기계미 넘치고 날카롭고 무섭게 생긴 요즘 듀얼퍼포즈 모터사이클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그런 면에서는 한편으로 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과시욕 없는 아프릴리아 카포노드 1200은 넉넉한 파워를 바탕으로 '편안함, 그리고 즐거움'을 목표 달성한 다용도 여행용 모터사이클이다. 

 

 

특히 반 능동형 전자제어 서스펜션이나 스마트폰과 연계되는 디스플레이 시스템 등은 획기적이라 할 만 하다. 비록 평범해 보이는 외모지만 내실은 그 어느 최신 모델보다도 파격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루소두로 1200이 슈퍼모타드의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한 신개념 모터사이클이었다면 카포노드 1200은 듀얼퍼포즈를 더욱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또 사용자에게는 한결 취급하기 쉬운 편안한 여행용 모터사이클로 다가온다. 

 

 

아프릴리아는 모터사이클 퀄리티에 비해 흥행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이어왔다. 국내 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평은 좋지만 소위 말하는 '대박'을 친 사건은 드물다. 마케팅의 부족일 수도 있고 차후 관리 서비스의 문제일 수도 있다. 카포노드 1200 역시 제품 자체의 상품성만으로 놓고 본다면 세계 톱 수준이다. 여타 아프릴리아의 명기들처럼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도 저평가 받는 안타까운 일이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공 : 임성진 기자 / 라이드매거진

라이드매거진(www.ridemag.co.kr)은 자동차, 모터사이클, 자전거 등 다양한 탈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전문매체입니다. 각 탈것들의 전문적인 시승기부터 국내외 관련뉴스, 행사소식, 기획기사, 인터뷰, 칼럼,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는 문화 이야기까지 다양한 볼거리들을 제공합니다.

<저작권자 © 라이드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