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인디언, 자유를 노래하다

인디언 모터사이클은 미국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모터사이클 브랜드다. 그들이 만든 모터사이클은 전통적인 형태의 크루저로 ‘아메리칸 크루저’ 장르를 탄생시킨 셈이다. 미국 대륙에서 인디언 모터사이클은 그런 의미에서 모터사이클 계의 원조로 지칭된다.

인디언 모터사이클은 사실 이미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여타 크루저 브랜드처럼 여럿이 떼를 지어 단체 주행하는 문화가 많지 않다. 한 명 한 명이 개성이 무척 강하고 모터사이클 자체에 자긍심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모터사이클은 자긍심이 없겠느냐마는, 인디언 모터사이클 특유의 ‘정통성’을 특별한 가치로 소중히 하는 사람들이 타는 브랜드임은 확실하다.

한국에서도 그러한 자긍심이 가득한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수는 많지 않지만 인디언 모터사이클을 만드는 미국인들에 비해도 ‘인디언’에 쏟는 사랑이 부족하지 않다. 인디언 오너스 클럽은 국내 인디언 모터사이클 오너들 중에서도 각별한 인디언 사랑을 가진 극소수의 오너들이 모인 동호회다.

대한민국 ‘인디언’들의 작은 의식

그들이 모여 라이딩을 떠날 때는 항상 작은 기도로 시작한다. 손을 한 데 모으고, 라이딩 중 일어날 수 있는 불의의 사고로부터 지켜달라는 의미다. 인디언들이 오랜 세월 치러온 고대 의식처럼 경건한 모습은 의외다. 한낮 터프가이로 불릴 것 같은 거친 외모의 그들이 이러한 섬세한 감성을 지녔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이딩 전 마음을 추스린 그들은 소중한 자신만의 인디언 모터사이클에 오른다. 인디언 모터사이클은 전통적으로 모델 수가 많지 않다. 무척 긴 역사를 가졌지만 사정 상 문을 닫았던 적도 몇 번 있는데다 대량 양산 체계가 아니기 때문에 소수의 모델을 베이스로 삼아 자신의 입맛대로 치장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움직임이 많이 변했다. 거대한 레저 운송기기 기업인 폴라리스가 인디언 모터사이클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오랜 정통성을 가진 인디언 모터사이클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산하에서 적극적으로 키워볼 요량이다. 그들은 현재 썬더 스트로크 111엔진과 개량된 섀시를 바탕으로 3개의 치프 시리즈 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치프 시리즈에 투어링 풀 패키지를 적용한 로드마스터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곧 이어 인디언 고성능 모터사이클의 상징인 스카우트의 부활도 예고했다. 이미 많은 전문 매체에서 이를 다루고 높은 완성도를 치하했다. 젊고 강력한 신모델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인디언 모터사이클의 의지가 엿보이는 것이다.

110주년 기념 한정판 모델을 증명하는 뱃지, 오너의 사랑이 각별하다.

인디언 오너스 클럽 회원들은 대부분 신형 치프 시리즈를 탄다. 105큐빅 인치 엔진을 소유한 한정판 모델을 소유한 오너도 있다. 해당 인디언 모터사이클에 대해 관심을 비추면 역시 자부심이 대단하다. 전 세계에 몇 대 없는 모델을 타고 있다는 자부심외에도 마치 자신의 보물을 이야기 하듯 애정이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서울을 출발한 이 날의 여정은 맑은 하늘 아래 시작됐다. 그들이 시동을 거니 주목을 한 몸에 받는다. 이색적인 컨트리풍 모터사이클이 10대 가량 무리지어 달리는 모습은 거리를 지나는 일반 시민들에게도 독특한 볼거리다. 호기심 어린 얼굴로 쳐다보다 결국 휴대폰을 꺼내들어 사진을 남기는 이들도 있다. 인디언 오너라면 이 정도 관심은 기본이라는 눈치다.

가을이 이제 막 시작되려나 보다. 습하지 않은 바람과 따가운 햇살이 공존하는 서울 하늘을 등지고, 목적지인 서해 바다를 향해 달린다. 한적한 국도를 수놓는 인디언 모터사이클이 고동치는 것을 보니 멀찌감치 지켜보는데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흡사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인디언 모터사이클은 모터사이클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최고급 크루저로 인식된다. 가격도 비싸지만 희소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량 양산 체계로 바뀌고 있지만, 원래는 소량 수제 모터사이클로써 이름이 높았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접하기는 더 어려웠다. 사실 크루저 동호회를 떠올리자면 마치 공장에서 나온 듯 하나같이 시커먼 가죽 의상을 입고 수 십대가 국도를 떼 지어 달리는 장면을 연상하기 쉽다. 반면 인디언 바이크 오너스 클럽은 한 명 한 명이 의상이나 대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를 누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들은 인디언 모터사이클 특유의 라이딩 문화를 허심탄회하게 드러낸다.

초대 회장을 맡은 한정호(59)씨는 길산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호회에서는 독특한 인디언식 이름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회장인 그는 ‘길을 여는 바람’이다.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모터사이클을 접하기 시작해 본격적으로 대형 모델을 탄 것은 2002년 부터다. 그는 작년 11월에 인디언 치프 빈티지를 구입했다.

워보닛 휀더 램프는 인디언 모터사이클의 오랜 상징이다.

투박한 클래식 모델을 좋아하는 그는 인디언을 타면서 기존에 소유했던 할리데이비슨과 BMW 모터사이클을 모두 처분했다. 지금은 오히려 인디언과 비슷한 클래식 바이크를 더 갖고 싶은 생각이 앞선다고 한다. 인디언 모터사이클은 할리데이비슨 크루저를 타면서도 동경심을 가져왔다. 회장인 그도 할리데이비슨을 타면서 아쉬웠던 라이딩 문화를 좋은 쪽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다. 하지만 이미 커질대로 커진 할리데이비슨 동호회 문화에 비하면 인디언 모터사이클은 그러한 네트워크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흠이었다.

인디언 오너스 클럽은 직접 인디언만의 동호회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지난 4월 5일, 인디언 모터사이클 오너 5명이 모여 발족했다. 전체 회원은 16명이지만 그 중 실제 인디언 모터사이클을 가진 사람은 12명이다. 이렇게 회원이 적은 이유는 입회 기준이 까다로운 이유도 있다. 일단은 기존 회원이 신입 회원의 인성적인 면을 인정해 전원 찬성 해야만 일원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한정호 회장이 말하는 인디언 오너스 클럽은 다수가 하는대로 움직여 온 기존 동호회와 달리 각자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는 것이 최고 가치다. 이들이 말하는 인디언 정신은 ‘자연과 함께 하는 라이딩’이다. 적어도 이들과 함께 하려면 이런 가치를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한 가지 회장이 강조하는 것은 모터사이클 라이딩에 대한 열정이다. 잘 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모터사이클 라이딩이 1순위가 될 만큼 사랑해야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디언 오너스 클럽은 일본 현지 라이딩 투어도 추진하고 있다. 물론 클래식 크루저 특성상 성능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극한의 장거리를 달리기는 어렵지만 가능한 범위 내에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회장으로써 정통성을 유지하며 오너스 클럽을 존속하는 것에 대해 회원들 간의 인간관계를 중립적으로 관리하고 중재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한다. 사소한 회원 간의 대립으로 클럽이 와해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동호회 대표로써 그런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이고 싶다는 입장이다.

목적지 꽃지 해수욕장에는 때 늦은 피서객들로 붐빈다. 그들 역시 물놀이에 여념이 없다가도 풍채 좋은 인디언 모터사이클 열 대가 지나가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인디언 모터사이클 특유의 고풍스러운 디자인도 그렇지만 천연 가죽 액세서리가 주렁주렁 달린 모습이 신기한 눈치다. 인디언 모터사이클의 특기 중 하나는 섬세한 가죽 세공이다. 천연 Tan 가죽을 사용한 안장과 양 쪽으로 달린 투어링용 가방이 무척 클래식하다.

인디언 바이크 오너스 클럽의 평균 연령은 50대다.

커다란 물방울 모양 헤드라이트가 한 자리에 도열하자 분위기가 압도된다. 모터사이클 덩치가 워낙 커 자동차용 주차 칸을 가득 메운다. 신형 111 썬더 스트로크 엔진을 사용한 인디언 모터사이클은 운전자의 피로감을 극도로 줄인 것이 특징이다.

오랜 라이딩에도 지친 기색 없는 인디언 바이크 오너스 클럽 회원들의 평균 연령은 50대다. 보통 가정을 지키며 주로 전문 직종에서 상당한 입지를 가진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매주 주말 라이딩을 나오기는 쉽지 않지만 인디언 모터사이클을 타면서 여유와 낭만을 만끽하며 인생의 큰 낙으로 삼는다고 한다.

오랜 시간 다양한 모터사이클을 타 온 이훈 씨는 알아주는 인디언 마니아다.

배우 이훈 씨도 인디언 모터사이클을 무척 사랑하는 평범한 남자로써 라이딩을 함께 했다. 재미있게도 그가 이 동호회에서 가장 막내다. 도착하자마자 형님들 식사 챙기랴, 쉴 곳 찾느라 분주하다. 그 또한 40대가 훌쩍 넘은 가장이다.

막내 역할을 혼자 도맡아 하니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당연한 일인데 무슨 소리하느냐고 되묻는다. 인디언 모터사이클이라는 훌륭한 매개체가 없었다면 배우인 그의 이런 따뜻한 모습을 볼 기회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스크린에서 배역에 충실한 그의 모습만 보다 소탈하고 싹싹한 인디언 라이더 이훈을 보니 그저 ‘좋은 사람’같아 흐뭇하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그들의 보금자리에는 인디언 모터사이클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자신의 애마에 대한 애정도 듬뿍 묻어난다.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에서 한 남자로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그들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또 모터사이클은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한편의 동화 같아 절로 빠져드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인디언 모터사이클은 분명 쇠로 만들어진 기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일백년 넘게 이 기계를 만들고 가슴을 울리며 살아온 남자들의 무언가가 남아있는 기계다. 인디언 모터사이클 곳곳에는 그런 향취가 듬뿍 묻어있다. 한 편의 영화 같은 삶을 사는 그들은 인디언 오너스 클럽 회원이기 이전에 인생을 뜻 깊게 즐기고 싶은 대한민국 남자들이다.

분명한 것은 그들의 인생에 조용히 들어온 ‘인디언’들이 이제는 가슴속에서 빼낼 수 없는 낭만의 불씨가 되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모터사이클을 타온 경력을 인디언 모터사이클로 마치고 싶다는 그들의 훈훈한 미소에 삶의 강약을 조절할 줄 아는 여유가 묻어난다. 한 달에 한번 안전한 라이딩을 위한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는데 모쪼록 이들의 멋진 라이딩 모습을 오래토록 지켜볼 수 있다면 좋겠다.

제공 : 임성진 기자 / 라이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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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드매거진 sjlee@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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