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0년째 MotoGP 직접 관람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지난 9일 한국을 출발해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렌터카를 빌리고 있는데 Moto2 Paginas Amarillas HP 40 팀, 시토 폰스(Sito PONS) 팀 보스와 Pramac Ducati의 메카닉이 같은 렌터카를 빌리러 왔다. 쉽게 알아보고 기념 사진 촬영을 했다. 공항부터 팀 관계자들을 만나니 MotoGP에 온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MotoGP 꼬마 팬들

렌터카를 타고 서킷에서 7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의 숙소로 갔다. 2년 만에 찾은 일본의 우핸들 차량은 오랜만에 타다보니 좌우회전을 할 때마다 헷갈리고 어둠이 깔리니 더욱 어려웠다. 나리타 공항을 출발한 지 2시간여 만에 숙소에 도착했다. 먼저 대형 마트를 찾아 먼저 일본의 캔맥주부터 샀다. 2012년 일본과 한국의 환율은 15:1 이었는데 올해는 10:1이 되니 체감 물가가 무척 싸게 느껴졌다. 따져보면 30퍼센트 세일을 하는 것과 같다. 아사히 맥주로 갈증을 풀고 금요일부터 있을 MotoGP를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전통복을 입은 일본인들

10일 오전부터 Moto3 클래스부터 MotoGP, Moto2 클래스 순으로 Free Practice 세션이 진행되는 관계로 숙소에서 일찍 나섰다. 서킷까지는 1시간 30분가량 걸려 드디어 모테기 트윈링 서킷에 도착했다. 개인적으로는 모테기 서킷에 네 번째 방문이지만 여전히 설레임이 가득하다. 우선 프레스 카드를 발급 받기 위해 미리 준비한 서류와 여권을 들고 서킷 남문에 위치한 Accreditation Centre에 갔다. 입구에는 벌써부터 관람을 위해 온 바이크 부대가 가득 주차되어 있다. 일본 GP에 오면 정말 연대별, 기종별 다양한 바이크를 보는 즐거움이 무척 크다. 일본인들의 바이크 관리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다.



1997년 오픈한 모테기 서킷은 혼다 소유로 1999년 MotoGP를 처음 개최했고 올해로 16번째 연속 개최되는 서킷이다. 작년에 2018년까지 MotoGP를 개최하기로 연장 계약에 합의하기도 했다. 일본 동경시내에서 140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있으며 자동차로 약 3시간 반 정도 소요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총 연장 4.801킬로미터로 좌코너 6개, 우코너 8개로 이루어져 있다. 롱 스트레이트 구간은 762미터로 전형적인 스톱 앤 고(Stop & Go) 서킷이다. 특히 T6 코너는 진입속도가 4단 시속 200킬로미터가 넘는 고속코너로 박진감이 넘친다. T11은 롱 스트레이트 가속 이후 다운힐 우코너로 급격한 브레이킹이 필요한 구간으로 많은 코스아웃을 유발하는 코스다. 반면 이를 이용해 추월 포인트로 삼는 선수가 많다.

모테기 서킷의 평균 주행속도는 시속 162킬로미터다. MotoGP 개최서킷의 평균속도 정도로 보인다. 결승 레이스는 115.2킬로미터 거리를 24바퀴 주행하게 된다. 이 서킷의 가장 빠른 주행 기록은 2012년 로렌조가 세운 1:44:969다. 최고속도는 페드로사 선수가 세운 시속 310.3킬로미터다. 

모테기는 2007년 두카티 소속 케이시 스토너가 월드 챔피언에 등극했던 곳이기도 하며 2008년에는 야마하 소속 발렌티노 롯시도 마찬가지로 월드 챔피언이 됐던 곳이다. 작년인 2013년에는 로렌조(Jorge LORENZO)가 우승, 마르케즈 2위, 페드로사(Dani PEDROSA) 3위 였으며 통산 롯시와 페드로사가 2승씩 거두고 있고 로렌조가 1승을 거두고 있다. 챔피언쉽 포인트 리더인 마르케즈는 2010년 125cc, 2012년 Moto2 클래스에서 우승 경험이 있다.

발렌티노 롯시

우선 패독으로 가서 분위기를 살폈다. 아직 Moto3 세션이 시작되기 전이라 한산하다.  MotoGP 클래스 선수들은 한창 출근 하는 분위기다. 역시 패독에서 최고의 인기 선수는 발렌티노 롯시(Valentino ROSSI)다. 롯시 팀 빌딩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를 직접 볼 수 있는데다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받기 좋기 때문이다. 물론 사인 한 장 받기도 경쟁률은 무척 높다. 마르케즈(Marc MARQUEZ)도 롯시의 인기에 비하면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실력은 롯시를 뛰어 넘을 수 있지만 인기는 아직 멀었다.

호르헤 로렌조

Moto3부터 연습 세션이 시작됐다. 일단 선수들이 코스인 하는 모습부터 흥미진진한 볼거리다. 가까이 선수들을 볼 수 있고 머신의 엔진음도 직접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MotoGP가 개최되는 서킷에서는 프레스들의 이동을 도와주는 미디어 셔틀이 주기적으로 돌아다니면서 기자들이 원하는 코너까지 데려다 준다. 모테기 서킷은 레이아웃 상 인/아웃 코너를 다니는 두 가지의 셔틀을 운행하고 있었다.

터널 코스에 자리를 잡고 경기를 지켜보자 감탄이 절로 나온다. T5를 지나 T6로 진입하는 MotoGP 머신의 속도는 4단 시속 200킬로미터를 간단히 오버하는 무시무시한 코너다. 실제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을 정도다. 촬영은 둘째치고 넋을 잃고 눈으로만 감상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노면의 불균형 속에 이 정도의 속도로 달리는 머신이라면 서스펜션 세팅이 도대체 어떻게 되어있을지 궁금하다. 최고의 머신, 최고의 메카닉, 최고의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라이딩 퍼포먼스라 몇 마디로 담아내기가 쉽지 않다. 

대니 페드로사

첫날이라 그런지 정신없이 걸어다니다 보니 두 번씩 있는 Free Practice 세션이 순식간에 모두 지나갔다. 환상적인 시간이 고작 이틀 남았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아쉬움이 밀려온다. 

4년 째 이곳에 왔기 때문에 혼다 박물관은 들르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와본다면 반드시 이곳 박물관 방문을 추천하고 싶다.

 

주니어 세션을 달리는 소년 레이서들

11일은 예선이 있는 중요한 날이었다. 모테기 서킷은 메인 스탠드와 피트 사이가 굉장히 멀다. 트윈링 구조 원형 서킷이 중간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2층 구조로 되어 있는 메인 스탠드상부만 사용하고 스탠드와 메인 스트레이트 중간에 있는 원형 서킷노면에 라스트 코너부터 T1 코너에 걸쳐 8,400석에 달하는 Victory 관중석을 설치해뒀다. 관중으로서는 아주 좋은 관람석이기도 하다. 

MotoGP 클래스에서 예선 막판 도비지오소(Andrea DOVIZIOSO)가 4년 만에 두카티에게 폴포지션을 안겨줬다. 역시 그는 대단하다. 2위는 검지를 뺀 나머지 세 손가락으로 브레이킹을 했던 발렌티노 롯시가 차지했다. 브레이킹을 해야 하는 오른손 검지의 골절로 자신의 스타일이 아닌 케이시 스토너(Casey STONER)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대체 어떤 감각으로 바이크를 컨트롤하기에 부상에도 불구하고 저런 테크닉을 보일 수 있을지 상상이 안간다. 2년 연속 월드 챔피언에 도전하는 마르케즈는 4위를 차지했다. 결승 레이스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무척 궁금했다.

12일 일요일, 드디어 결승 당일이 밝았다. 결승 당일이다 보니 가까이서 관람하려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MotoGP 클래스 결승은 가장 마지막 하이라이트다. 오전 세션은 Moto3 선수들의 레이스로 시작됐다. Moto3가 워밍업이 진행 되자 MotoGP 라이더들이 그제야 출근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이미 사람들이 사인을 받기 위해 모여 들었다. 마르케즈는 헬멧을 쓰고 스쿠터를 타고 쏜살같이 팀 빌딩으로 가버렸다. 그래도 싸인은 해주는 모습은 매너있어 보였다. 

발렌티노 롯시는 워낙 구름같이 팬을 몰고 다니기 때문에 차량을 팀 빌딩에 가까이 붙여서 경비들의 경호를 받으며 이동했다. 연예인과 마찬가지로 사인을 한명씩 해주다 보면 한도 끝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롯시를 가리키는 “Vale! Vale!”를 외쳤다. 

마크 마르케즈

Moto3 클래스 결승은 마크 마르케즈의 친동생인 알렉스 마르케즈(Alex MARQUEZ)의 우승과 함께 동생도 시즌 월드 챔피언을 기대 할 수 있게 됐다. 2위 잭 밀러(Jack MILLER)와 25포인트 차이로 앞서 나가고 있는데 앞으로 남은 세 경기에서 운영만 잘 한다면 역사상 최초의 형제 월드 챔피언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Moto2 클래스는 토마스 루씨(Thomas LUTHI)의 압도적인 레이스로 조금은 지루한 레이스가 펼쳐졌다. 결승에서 3위를 차지한 티토 라밧(Esteve RABAT)이 챔피언쉽 리더를 고수하면서 월드 챔피언 등극에 한걸음 더 다가갔다. MotoGP 결승은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예보가 있어서 각 팀들은 Flag To Flag를 염두에 두고 준비를 했다. 가끔 구름 사이로 해가 보일뿐 흐린 날씨가 지속됐고 온도가 낮아 노면온도가 최고 27도밖에 되지 않았다.

스즈키 전설 케니 로버츠가 프로토타입 머신을 테스트 중

결승 레이스에는 24명의 선수가 프론트에 미디엄 컴파운드 타이어를 선택했고 리어 타이어는 15명이 소프트 컴파운드, 나머지 선수들이 엑스트라 소프트 컴파운드를 선택했다. 이번 레이스의 중요 포인트는 마크 마르케즈가 최연소 2연속 월드 챔피언에 등극하느냐는 것이었다. 경우의 수를 따졌을 때 롯시와 페드로사보다 순위가 높으면 남은 세 경기에 상관없이 타이틀을 가져가게 된다. 

우승을 거머쥔 마크 마르케즈

결승 레이스 스타트부터 발렌티노 롯시가 선두로 나섰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로렌조에게 선두 자리를 내줬다. 나는 시상대 바로 앞 관중석에서 레이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지막 10랩을 남겨두고 마르케즈가 롯시를 추월하는 장면을 생생히 지켜봤다. 하지만 곧 롯시가  재추월했다. 정말이지 흥미진진한 장면이 연달아 연출됐다. 그런데 9랩을 남겨둔 시점에서 마르케즈가 롯시를 완벽하게 추월하는 장면을 보고 마르케즈의 월드 챔피언 등극이 확실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세레모니 중인 챔피언 마르케즈

그리고 위닝 랩에서 세레모니 하는 마르케즈를 직접 촬영하고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10년째 경기를 직접 다녀봤지만 운 나쁘게도 단 한 번도 월드 챔피언이 탄생하는 장면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승한 마르케즈가 사무라이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르케즈 팀은 챔피언 헬멧의 디자인, 우승 퍼포먼스를 이미 한 달 전부터 계획했다고 한다.

시상대에 나란히 오른 마르케즈, 로렌조 그리고 롯시

이제 앞으로 세 경기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월드 챔피언은 이미 결정됐다. 시즌 2위를 향한 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발렌티노 롯시와 페드로사가 230점, 그 뒤를 3점 차이로 바짝 따라 붙은 호르헤 로렌조. 지금 상황에서 살펴보면 로렌조의 초반 부진이 정말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개막전 크래쉬, 2전 점프 스타트 등 여러 부진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2위 경쟁을 지켜보는 재미가 가장 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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