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계의 가장 혹독한 모터스포츠 중 하나인 내구레이스. 일반적인 레이스에서 상상할 수 없는 횟수의 서킷 주행을 정해진 시간 내 달리는 경기다. 특히 이 경주는 오랜 시간 연속적으로 고속주행과 격렬한 스포츠 주행을 하며 모터사이클의 엔진 및 섀시를 혹사하기 때문에 차량 내구성이 우승의 중요 요소 중 하나다. 모터사이클 내구레이스 중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레이스는 단연 스즈카 8시간 로드 레이스다.

 

 

스즈카 서킷은 1962년 개장해 현재까지 MotoGP와 F1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이다. 스즈카 8시간 로드 레이스는 1978년 시작해 매년 7월 열리는 일본 최대 로드레이스 이벤트 중 하나다. 이 대회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예로 1990년 대회를 꼽을 수 있다. 당시 스즈카시의 인구는 14만에 그치지만 그 해 결승 레이스 관람객만 시 인구보다도 많은 16만 명을 동원해 인기를 실감케 했다. 올해는 MotoGP에서 챔피언 경력이 있는 호주 선수 케이시 스토너가 참가해 1990년 이후 최대 흥행이 예상된다. 

 

▶ 2014년도 참전한 요시무라 스즈키 GSX-R1000

 

스즈카 8시간 내구레이스는 1980년 FIM(국제 모터사이클 연맹)이 주최하는 세계 내구레이스 선수권 시리즈에 편입되었다. 그 이후 스즈키의 SERT(스즈키 내구 레이싱 팀)는 레이스에서 두각을 나타내 1983년부터 올해까지 약 30년 간 총 13회 시즌 챔피언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특히 2005년부터는 4년 연속 시즌챔피언을 기록하는 등 총 8번의 우승을 기록하며 스즈키 슈퍼바이크의 저력을 여전히 과시하는 중이다. 

 

▶ SERT를 구성하는 세 명의 선수와 스즈키 GSX-R1000 

 

스즈카 8시간 내구레이스는 스즈키를 비롯해 일본 4대 브랜드가 참가해 자사의 모터사이클 내구성을 테스트하는 좋은 기회다. 따라서 참가팀에게는 무한 엔지니어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세계를 주름잡는 일본 4대 브랜드가 심혈을 기울이는 이 대회 초대 우승팀과 머신은 요시무라 스즈키의 GS1000이다. 

 

▶ 요시무라 스즈키 GS1000 베이스 머신

 

요시무라 스즈키는 당시 양산모델인 GS1000으로 이 레이스에 참전했다. 당시 혼다의 RCB는 맨섬TT레이스 등 각종 대회에서 무적함대이란 별명에 걸맞은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한편 스즈키의 GS1000은 혼다 머신을 견제하기위해 GS1000의 건조중량 중 60킬로그램 이상을 감량하며 열정으로 맞섰다. 팀 레이스 작전은 ‘스타트부터 피니쉬까지 풀 스로틀’. 자칫하면 엔진이 타버릴 수도 있는 무모한 전략이었다. 

 

▶ 요시무라 스즈키의 GS1000

 

작전은 먹혀들었다. 이유로는 엔진튜닝을 담당한 요시무라의 집념과 기술력도 있지만, 탄탄한 기본기가 갖춰진 하드웨어, 즉 스즈키 베이스 머신의 내구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좋은 성적을 기록한 스즈키와 요시무라는 이후 매년 긴밀한 파트너쉽을 유지하면서 스즈키와 요시무라 배기시스템을 환상의 궁합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 1984년부터 스즈키 GSX-R 시리즈가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78년 스즈카 8시간 내구레이스 에피소드 중 하나로 요시무라 스즈키 팀의 기지를 엿볼 수 있다. 팀의 머신은 피트 스탑 때 프론트 서스펜션을 고정하는 볼트 두 개 중 하나가 부러지는 사고를 겪었다. 레이스는 일분일초를 다투는 상황이지만, 팀 레이서인 마이크 볼드윈은 “하나의 볼트만 있어도 한동안 달릴 수 있다. 달리는 동안 어서 대책을 마련해달라” 말하고 처음의 팀 전략대로 전력질주를 이어나갔다. 두 번째 피트 스탑에서 임기응변으로 서스펜션 브라켓을 가공해 단단히 체결. 그 결과 초대 우승팀이라는 명예로운 업적을 추가할 수 있었다.

 

 

스즈키는 현재 내구레이스 세계에서 명실공히 ‘가장 잘 나가는’ 모터사이클 제조사다. SERT, 요시무라 스즈키, 팀 카가야마가 참전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SERT의 활약은 눈부실 정도다. 올 시즌 역시 순조롭게 챔피언 타이틀을 향해 뛰어가고 있으며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다. 시즌 총 4라운드를 참전하고 있는 SERT는 1전인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슈퍼바이크 GSX-R1000으로 자본력으로 무장한 쟁쟁한 대형 메이커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두 번째 라운드인 스즈카 8시간 내구레이스도 이변이 없다면 우승컵을 들어 올릴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전문가들은 점치고 있다.

 

▶ 2015 FIM Endurance World Championship에 참가하는 스즈키 GSX-R1000

 

내구레이스에는 국내 레이서도 참가한다. 올해는 국내 모터사이클 레이서 송규한 선수가 참가한다. 이 선수는 1998년 제1회 코리아 로드레이스로 데뷔해 현재까지 활약하고 있는 선수다. 2014 한중일 슈퍼바이크대회 SB1000에서 1위를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스즈카에서는 트랜스 맵 레이싱 팀 소속으로 역시 GSX-R1000을 타고 내로라 할 일본 프로 레이서들과 함께 달린다.

 

▶ (좌) 송규한 선수

 

우리가 타는 양산형 모터사이클은 MotoGP에 참가하는 프로토 타입 머신 한 대와는 차이가 많다. 우리가 타는 모델과 동일한 양산형 모터사이클로 경쟁하는 WSBK나 내구레이스에 많은 팬이 크게 늘고 있는 이유다. 양산형 모터사이클을 기본으로 한 내구레이스는 높은 엔진 파워는 물론 이 힘을 지속적으로 견딜 수 있는 내구성을 천하에 증명하는 계기다. 

 

▶ 스즈키 팀의 올 시즌 내구레이스 테스트 주행 영상 

 

스즈키 플래그십 슈퍼바이크 GSX-R1000은 수년간 경쟁 브랜드대비 머신의 변화가 없지만 꾸준히 내구레이스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추대 받아왔다. 이유가 뭘까? 현존하는 그 어떤 슈퍼바이크보다도 전자장비도 적을뿐더러 수치상 기본 파워로 봐도 도드라지지 않는 상황. 하지만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내구레이스의 슈퍼스타가 바로 GSX-R1000이다. 이런 점은 많은 부분을 시사한다.

 

▶ 2015 MotoGP에 참가하는 스즈키 GSX-RR머신

 

심지어 올해부터는 GSX-R을 개량한 프로토타입 GSX-RR으로 MotoGP에도 출전한다. 새롭게 만든 머신이라고 믿기 힘들만한 퍼포먼스를 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훨씬 큰 자본력과 과거의 월드 챔피언들을 따라잡는 기량을 보면 GSX-RR은 이미 준비되어 있는 머신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선수의 기량보다는 머신 성능의 영향이 큰 퀄리파잉 레이스에서 폴 포지션을 따내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렇게 쌓은 데이터는 내구레이스의 꼭대기에 서는데 더욱 도움될 것이고, 우리가 탈 수 있는 양산형 GSX-R도 혜택을 볼 것이다. 

 

 

내구레이스는 우리 같은 일반인들의 주행환경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모터사이클을 탈 때 MotoGP 선수들처럼 말끔하게 정비된 새 머신으로 잠깐 타보는 것이 아니다. 지속 소유하며 때로는 뻥 뚫린 국도에서 한계까지 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꽉 막히는 시내에서 라디에이터 팬이 돌 때까지 거북이 주행을 하기도 한다. 시시때때로 알게 모르게 엔진에게 극한의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끔 점검시기를 놓쳐 엔진 성능이 저하되기도 하고 비가 내리거나 좋지 않은 라이딩 습관을 반복해 서스펜션이나 브레이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일반인인 우리는 선수들처럼 숙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빠른 속도를 경쟁하는 화려한 MotoGP보다도 다양한 머신의 내면을 확인할 수 있는 내구레이스를 주목해 봐야하는 이유다. 동시에 그 정상에서 활약하는 GSX-R1000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