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 스즈키 GSX-R1000은 30년 동안 백만 대 이상 팔려나간 GSX-R 라인의 기함이다. 6세대를 맞은 이번 모델은 스즈키가 대표하는 슈퍼스포츠 모델의 풀 체인지라는 점에서 상당한 노력이 들어간 머신이다. 양산차 중 마력 대 중량비 1위였던 과거 첫 GSX-R1000의 탄생 시기에 받았던 스포트라이트는 스포츠 바이크 마니아라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의 슈퍼바이크는 대중을 매혹하는 멋지고 아름다운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우는 최첨단 전자제어 시스템의 향연이라고 해도 과언 아니다. 지난 15년여간, 스즈키는 유독 그런 부분에서 한걸음 떨어져 있었다.

어찌 보면 상품으로써 시장에서 모터사이클이 가장 쉽게 팔리는 조건에서 스스로 한발 물러서 있던 셈이다. 고집스러운 영감처럼, 오로지 달리기 1등, 스포츠 바이크는 자고로 가장 빨라야 하고 가장 가벼워야 한다는 정신만으로 버텨온 2000년 초반과는 확연히 달라진 시장 풍토에 적응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터사이클은 전자제품이 아니라 기계다. 쇠 냄새나는 엔지니어링이 기본이다. 이번 신형 모델은 오로지 성능 하나에 집중하던 과거의 스즈키다운 철학이 그대로 담겨있다. 이런 고집스러움이 시장에서 주목받을지 아닐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미 대중은 화려하고 예쁘며 누구나 GP레이서처럼 쉽게 달릴 수 있는 전자제품에 가까운 슈퍼바이크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스로틀을 1밀리미터만 감아도 컴퓨터가 개입해 얼마나 가속해도 될지를 결정해주는 판에 어려운 코스를 극복하면 마치 자신의 실력인 양 여기는 일도 일상이다. 이것이 잘못되었든 아니든 간에, 아무튼 현재 시장의 트렌드임은 부정할 수 없다. 

스즈키 또한 그런 흐름을 완강히 등진 것은 아니다. 트랙션 컨트롤이나 ABS, 심지어 IMU(관성측정장치) 등 사람들이 환호할 만한 제어시스템은 모두 갖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기본적으로는 잘 달리는 기계를 만들고 싶다는 의지는 그대로였다. 그중 중심이 되는 엔진 기술에는 언제나 그랬듯 양보가 없었다. ‘스즈키는 엔진이 좋다’는 한 마디가 대중에게 입으로 전파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구와 피드백의 과정이 있었을지 상상해보라. 

이번 엔진 개발의 모토는 간단했다. ‘모든 영역’에서 손실 없이 파워풀한 출력의 엔진, 200마력이 넘는 최고출력을 가졌으면서도 출발하는 순간부터 중간회전영역에서 최고속까지의 다다름이 일체의 주저 없이 동일한 느낌의 엔진. 그러면서도 내구레이스에서 입증해온 단단한 내구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엔진. 이것이 전부였다.  

스즈키는 광역 파워 시스템(Broad Power System) 이름으로 이를 설명했다. 한 줄로 설명하자면 ‘중저 영역대 출력의 손실 없이 고속 파워를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대부분 엔진 개발자의 모토이지만 이론적으로는 쉽지 않은 이야기다. 기본적인 개념상 어느 한쪽을 늘리려면 반대쪽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로 중저속토크가 강한 크루저의 경우 필연적으로 고속영역의 파워를 포기할 수밖에 없고, 가볍고 날랜 600cc급의 슈퍼스포츠 바이크는 우유 한 팩 조금 넘는 배기량의 엔진을 가지고도 최고속도를 300km/h 가까이 뽑아낸다. 

그만큼 회전수를 높여 출력을 쥐어 짜내는 설계이기에 상대적으로 저속/중속 영역에서는 맥을 못 춘다. 배기량이 높은 리터급 슈퍼바이크는 비교적 토크가 넉넉해 약간 유리한 면이 있지만 200마력을 내는 최대 회전 영역대에 비하면 저속/중속 영역에서는 초라할 정도로 반응이 느리고 힘도 없다.

스즈키가 이름 붙인 이 시스템은 4가지의 기술이 결합해 효과를 낸다. 가변 밸브 타이밍 시스템, 핑거 팔로어 밸브 트레인 시스템, 탑 피드 인젝터(전자제어 스로틀바디), 배기 튜닝 알파(파이프 가변 밸브)의 조합이다. GSX-RR이 MotoGP에서 입증한 기술이기도 하며 결과적으로는 광역 파워 시스템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먼저 가변 밸브 타이밍 시스템, 스즈키가 레이싱 VVT라고 이름 붙인 시스템을 살펴보자. 사실 시스템이라고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간단한 메커니즘의 모임이다. 밸브타이밍은 회전수가 높지 않은 엔진, 이를테면 크루저나 오프로드 바이크의 경우는 별문제 없지만, 2만 rpm가까이 회전해야 하는 슈퍼스포츠 바이크라면 세팅이 쉽지 않다. 개발 시 최대출력이 나오는 고속 영역에 맞추어 타이밍을 맞춰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다른 영역에서는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상식적인 회전역에서의 운동은 관계없지만, 슈퍼스포츠의 경우 엔진이 초고속 회전영역에 들어서게 되면 흡기/배기 밸브를 빠르게 여닫는 과정에서 타이밍이 조금씩 틀어져, 결국에는 흡기/배기 밸브가 동시에 개방되는 현상, 오버랩이 발생한다. 당장 엔진이 고장 나거나 회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오버랩이 시작되면 고회전으로 갈수록 당연히 충전 효율이 떨어진다. 이는 연소효율을 높여 피크 파워를 끌어올려야 하는 목표에도 반대된다. 

가변 밸브 타이밍 기구가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다. 다양한 제조사에서 이러한 맹점을 해결하고자 밸브 타이밍 기구를 사용하지만 설계가 복잡하고 무게가 증가하는 등 문제가 있다고 판단, 스즈키는 다른 방식을 생각했다. 원심력을 이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뜬금없이 웬 원심력인가 싶겠지만 회전하는 모든 물체에 생기는 것이 원심력이다. 외부적으로 모터사이클은 앞으로 달리지만, 내부적으로는 필연적으로 회전해야 하는 부품이 부지기수다. 

밸브를 여닫는 인테이크 스프로켓에 내장된 12개의 철 공(스틸 볼)은 경사 홈을 통해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아마 이미지를 그려보면 확실히 이해가 될 것이다. 하우징 역할을 하는 스프로켓에 회전 속도가 붙으면 자연히 철 공은 바깥쪽으로 이동한다. 곧 스프로켓의 회전력에 반응을 미치며, 고회전일 때의 밸브 개폐 타이밍을 늦출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저회전과 고회전의 밸브 타이밍을 원심력에 따라 조절하면서 저회전/고회전에 최적의 밸브타이밍을 맞출 수 있다. 

스즈키는 아주 기본적인 원리를 이용해 오버랩 현상을 방지하고자 했다. 1마력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대로 1마력의 손실을 줄이는 것 또한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SR-VVT(스즈키 레이싱 가변 밸브 타이밍)시스템은 무엇보다 단순한 구조가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 거기에 크기도 작고 가볍다. 무엇보다 ECU를 이용한 전자제어가 아니라는 점도 신뢰가 높다. 여기에 이용하는 원심력은 엔진이 작동되는 때라면 언제나 발생하기 때문에 별도의 동력원이나 전력이 필요치도 않다. 어차피 구동해야 하는 부속품에 슬쩍 숟가락을 얹은 셈이다. 

사실 이 시스템은 10년 전 개발됐다. 물론 레이서에 의해 경기장에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였다. 처음부터 양산형이 목표는 아니었다. 당시 스즈키 GP 레이서들은 이 시스템이 작동해 밸브 타이밍이 변경될 때를 느끼거나 감지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별다른 이질감 없이 전 영역에서 파워가 고르게 상승했다는 뜻. 이것은 스즈키 엔진 개발진이 궁극적으로 목표했던 바다.

우리가 알던 버킷 태핏을 이용한 밸브 트레인도 바꿨다. 핑거 팔로워(실제로 손가락처럼 생겼다)라고 부르는 이 밸브 트레인시스템은 F1기술에서 가져왔다. 기존 버킷 태핏에 비해 상당히 무게가 가볍고 정확한 작동성이 장점이다. 

최대 엔진 회전에서도 정확하고 가볍게 움직이기 때문에 고회전에서의 정확한 스로틀 반응을 자랑한다.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기본적으로 DLC(Diamond Like Carbon)코팅을 입혔고, 이는 GP머신 GSX-RR에 사용된 것과 같다. 

또 로커 암을 사용해 고정된 샤프트에서 회전하기 때문에 밸브당 이동 질량이 기존의 버킷 태핏 시스템과 비교하면 많이 감소한다. 이 역시 고회전일수록 정확하고 빠른 작동성이 필수인 밸브 개폐에 긍정적인 영향이 크다. 

오랜 역사를 가진 스즈키 공기 과급 시스템(SRAD: Suzuki Ram Air Direct)은 강력한 엔진 파워를 대변하는 닉네임이기도 했다. 새롭게 채용된 신형 전자제어 스로틀 바디(라이드 바이 와이어)는 공학적인 설계의 인젝터 위치로 변경돼 과급 시스템을 더욱 효과적으로 소화해 낸다.

각 실린더에는 두 개의 미립화된 10홀 인젝터가 장비됐다. 1차 인젝터는 스로틀바디에 급경사각으로 배치, 엔진이 작동하는 내내 빠르게 동작한다. 

두 번째 샤워헤드 인젝터는 각 스로틀 바디 속도 스택 위 에어박스 꼭대기에 배치되어 높은 회전영역에서 빠르게 혼합기를 불어 넣는다. 듀얼 인젝터 설계 또한 브로드 파워 시스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모든 영역에서 손실 없는 파워’에 일조한다. 

신형 스즈키 듀얼-스테이지 인테이크(S-DSI)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복잡성을 최소화한 설계로 가변식 흡기 퓨널의 장점을 살렸다. 일반적으로 긴 인테이크 퓨널은 중저속 파워에 더 좋고 짧은 인테이크 퓨널은 고속 파워에 더 낫다. S-DSI 인테이크 퓨널은 두 개의 장점을  모두 내기 위해 중저속 회전에서는 긴 인테이크 퓨널을, 고속 회전에서 짧은 인테이크 퓨널처럼 작동한다. 

중저속 회전에서 대부분의 공기는 위에 있는 긴 퓨널을 통해 짧은 퓨널로 흘러 중저속 파워 및 토크를 증가시킨다. 높은 회전에서는 더 많은 공기가 퓨널 베이스 부근의 낮은 퓨널로 직접 흘러 고속 파워 및 토크를 증가시킨다. 두 개의 S-DSI와 두 개의 기존 퓨널 조합으로 더욱 넓고 부드러운 파워 밴드를 가지게 되고, 중저속에서 고속 회전으로 옮겨가는 가속 과정도 훨씬 부드럽다. 

광역 파워 시스템의 마지막은 배기 시스템이다. 1번-4번 기통과 2번-3번 기통이 연결된 헤드파이프 사이에 버터플라이 밸브를 설치해 엔진회전수나 스로틀 포지션, 기어 포지션에 따라 배기압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SET-A(Suzuki Exhaust Tuning-Alpha)다. 

배기밸브 개폐 시스템은 엔진의 저회전과 고회전에 따라 밸브를 여닫는다. 저회전에서는 밸브를 닫아 배기압을 높이고, 고회전에서는 밸브를 열어 빠른 배기가 원활하도록 돕는다.

언급한 4가지의 시스템은 모두 처음에 언급한 광대역 파워 시스템이 목표다. 온갖 전문용어가 난무했지만, ‘모든 영역에서 파워가 나온다’는 의미는 우리 생활에 접해 예를 들었을 때 아주 간단하다. 우리가 저회전을 주로 쓰는 시내 주행을 통해 가까운 마트에 장을 보러 가든, 6단 톱기어로 중간 회전영역을 이용해 크루징하며 1,000km에 달하는 투어링 코스를 달리든, 혹은 10,000rpm 이상 초고회전만을 쓰는 레이싱 트랙에서 머리가 쭈뼛서는 레이싱 체험을 하든, 어느 때, 어느 공간과 상황에서도 즐겁고 짜릿하게 달릴 수 있도록 고민했다는 뜻이다.

사실 과거에도 도로에서의 짜릿한 스포츠 라이딩이라면 GSX-R시리즈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슈퍼바이크가 고회전에서의 최고 파워만을 자랑하던 시절에도, 유독 스즈키 바이크에게는 저속부터 나오는 두툼한 토크가 특징이었다. 타 모델 대비 (스포츠 바이크 치고) 롱 스트로크 엔진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스포츠 바이크에 레이싱 이미지를 부여해도, 사실상 레이싱 서킷에서만 달리는 바이크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스즈키 스포츠 바이크 라인업인 GSX-R이 우리같은 일반 스트리트 라이더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겠다는 의미다. 다른 것 다 필요없고 오로지 엔진기술로 승부한다는 이미지가 있을 정도로 기본 영역에 충실한 스즈키의 브랜드 철학이 2017년에는 어떻게 해석될지 궁금하다. 실제 포장을 벗겨봐야 알겠지만, 오랜 기간 쉬었으니 마땅히 답이 될 만한 뉴 모델을 내놓지 않겠느냐는 기대감도 있다. 내년 봄 시승차의 엔진에 첫 시동을 걸 때의 느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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