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는 자전거에 ‘무제한급’ 기술이 허용되었던 시기다.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디자인의 프레임과 부품이 난립했고, 온갖 실험적인 자전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스피너지 레브-X(SPINERGY REV-X)는 90년대 말 에어로다이내믹스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낸 돌연변이 같은 휠이다.

공기저항을 줄이면 더 빨라질 수 있다. 두꺼운 것보다는 얇은 편이 공기를 더 잘 가를 수 있다. 이 두 가지 아이디어를 합쳐 놀라운 바퀴가 탄생했다. 언 듯 보기에 네 개의 스포크로 구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8장의 납작한 카본 블레이드로 이루어졌다.

심지어 단순한 카본 판이 아니다. 공기를 ‘베어내기’ 위해 가장자리의 날을 세웠다. 종이를 베어낼 정도는 아니지만, 빠르게 회전하는 바퀴에 오이나 소시지를 갖다 대면 가볍게 썰어낼 정도니 정녕 ‘블레이드’ 스포크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공기역학적으로는 우수한 성능을 가졌고, 마리오 치폴리니를 비롯한 여러 선수가 이 휠을 사용했지만, 레브-X는 여러분의 ‘짐작대로’ 위험한 휠이다. 사이클로크로스 레이스에서 코스에 뛰어든 토끼가 사망한 사례가 있고,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레이스 중의 사고로 이탈리아 출신의 사이클리스트 파올로 베티니의 손목이 거의 잘릴 뻔했고 이를 계기로 스피너지 레브-X는 2001년 UCI가 레이스에서의 사용을 금지했다.

레브-X가 출시되었을 당시에는 더없이 빠른 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기준으로 바라본 레브-X는 무게 1,900g의 무겁기 짝이 없는 바퀴이며, 심지어 승차감은 낭창거리며 둔한 느낌을 준다. 이런 휠을 끼고 레이스에 나간다는 것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코너링 시에는 자전거가 옆으로 기울 때 림이 브레이크패드와 살짝살짝 닿는데, 이건 불량이 아니라 ‘원래 그런 휠’이어서다.

휠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스포크 블레이드 안쪽에 ‘X-빔’이라는 보강대를 설치하기도 하는데, 이 X빔은는 원래 휠에 장착된 게 아니라 별매품을 구입해서 ‘양면테이프’로 붙인 것이다. 카본도 아니고 플라스틱인데 사실 붙이나 떼나 체감성능에는 별 차이가 없다. 

해외 온라인 마켓에서는 지금도 간혹 스피너지 레브-X의 중고를 볼 수 있다. 혹시라도 구입을 생각한다면 블레이드의 날이 깨지지 않고, 알루미늄 림이 마모되지 않았는지를 잘 보기 바란다. 상태가 엉망인 것이 많으며, 특히 픽스드기어바이크에 장착했던 프론트 휠만 따로 판매하는 것은 피하는 것을 추천한다. 스피너지 레브-X는 그리 내구성이 뛰어난 바퀴가 아니며, 섬세한 관리를 필요로 하는 휠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650c나 튜블러 타입은 제법 쉽게 구할 수 있지만 700c 클린처 타입을 구하기는 정말 어렵다.

여기까지 살펴보니 이 바퀴 참 별로다. 클래식 컴포넌트에 정통한 라이드카페 이원호 팀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dung’, 한글로 직역했을 때의 의미는 생략.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스피너지 레브-X가 그 어떤 휠과도 다른 독보적인 스타일을 자랑한다는 것이다. 쓸모는 별로 없지만 갖고는 싶은 ‘꿀맛 X템’이란 이런 것 아닐까?

스피너지 레브-X는 두 번 다시는 나오지 않을 물건이다. 중고가 나오고 있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라는 천사의 유혹과 ‘씀씀이를 줄이고 저축해’라는 악마의 속삭임. 둘 사이에서 갈등하며 모니터에 창을 띄워놨는데 어째선지 며칠 뒤 영국에서 휠이 든 상자가 라이드매거진 사무실로 날아왔다. 덕분에 고성능 하이프로파일 카본 휠세트를 포기했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빨래건조대로 쓴다면 성능보다는 디자인이 먼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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