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모터사이클을 시승하다 보면 묘하게 애착이 가는 제품들이 있다. 제품을 직접 구입하지 않았음에도 여러 번 시승하면서 매력에 빠져드는 것이다. 물론 보유해서 오래 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상황이나 여건이 맞지 않아 그럴 수 없었는데, 이번에 신형이 출시되어 다시 한 번 시승을 하게 됐다. 바로 혼다의 슈퍼 커브다.

시장에 처음 등장했던게 벌써 11년 전인 2013년이니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혼다에서도 이 모델을 출시하며 꽤나 힘주던 것이 떠오르는데, 재밌는 건 당시 비즈니스 시장을 겨냥해 출시했던 모델이지만 지금은 그 자리를 PCX가 차지하고 있고 슈퍼커브는 PCX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린 것이다. 그 사이에 코로나-19 같은 질병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것도, 배달대행 시장이 이렇게 커져버릴 것이라고도 예측한 사람이 없었고, 할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지금은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도심에서의 일상적인 이동수단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슈퍼커브의 꾸준한 인기로 파생 모델에 대한 수요도 이어지며 C125나 CT125 같은 모델까지 출시됐으니 원래의 목적에선 멀어졌지만 제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사실 큰 틀에서의 외관은 현재의 모델이나 10여 년 전 모델이나 1958년 처음 생산된 모델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S자 형태의 언더본 프레임과 원심식 클러치가 적용된 4단 변속기, 레그 가드 등 혼다 소이치로가 오리지널 커브인 C100을 개발하면서 목표로 삼은 ‘누구나 쉽게 한 손으로도 탈 수 있는 모터사이클’을 위한 장비들은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 하지만 세부적인 부분들은 기술 변화에 따라 달라진 곳들도 상당하다. 먼저 사각이었던 헤드라이트는 원형으로 바뀌었는데, 벌브 타입이 아닌 LED 방식으로 바뀌어 전력 소모는 낮추면서 높은 광량을 제공한다. 10여 년 전 슈퍼커브를 타고 전국일주를 하다가 비 오는 야간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있는데, LED라면 그런 걱정 없이 안심하고 탈 수 있으니 반가운 장비다. 헤드라이트 아래로는 캐리어가 추가됐는데, 바구니를 달거나 할 수 있어 적재공간을 늘리는 실용적 효과와함께 조금은 밋밋하던 전면부 모습에 개성을 더하는 느낌이어서 좋다. 키 박스에는 오토 키셔터가 더해져 도난의 위험을 크게 줄여준다.

차량 좌측면에는 좌측에 열쇠구멍이 추가됐는데, 이는 시트를 열기 위한 것으로 연료 도난 방지를 위한 것이라고. 예전에는 평평했던 측면 중앙 부분을 돌출시켜 컬러 포인트를 더한 점도 눈에 띈다. 후면은 라이트 디자인이 바뀐 것과 함께 리어 캐리어가 확대됐다. 비즈니스 용도로의 사용이 예전보다 줄었다고는 해도 정체성을 버릴 수 없다는 의미인 것일까. 일단 동승자를 태우고 다니는 경우를 생각해 별도의 시트도 판매하고 있으니 이 쪽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다.

계기판은 아날로그 속도계에 LCD 창을 더해 연료계와 적산거리, 기어 위치 등을 표시한다. 타다 보면 중립 램프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모든 사람이 숙련자는 아니니 이런 편의기능을 더해놓은 것. 우리나라에서만 만날 수 있는 알루미늄 캐스트 휠은 슈퍼커브의 편의성을 극대화하는 요소 중 하나로, 자칫 타이어에 못이라도 박힐 경우 캐스트휠의 튜브리스 타이어는 쉽게 떼울 수 있지만 스포크휠에 튜브 방식의 타이어라면 그 자리에서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 스타일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전시품이 아닌 일상에서 타고다니는 용도인 점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절충안이다. 그래도 이번 신형부터는 휠의 색깔이 검정색으로 바뀌어 전체 디자인과 잘 어우러진다. 워낙 기본기에 충실한 차량이다보니 더 살펴볼 외관이나 기능도 없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타고 나설 차례다. 확실히 클러치 조작이 필요없어 시동을 걸 때부터 달리는 과정까지 모드느 부분이 편하다. 여기에 기어를 착착 높여가며 가속해나가는 재미도 꽤나 쏠쏠한 편. 그렇다고 슈퍼커브가 성능이 뛰어나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차인 것는 아니다. 

탑재된 108cc 공랭 단기통 엔진이 최고출력 9.1마력/8,000rpm, 최대토크 1.0kg·m의 성능으로, 시내에서 교통 흐름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의 적당히 수준이지만 그 안에서도 나름의 가속하는 맛과 재미가 있는 것. 그리고 예전에 비해 확실히 달라진 점도 있다. 예전엔 1단에서 출발하려면 차체가 울컥거려 보통 2단으로 부드럽게 출발하거나 대기어(드리븐 스프로킷)를 변경하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이번 신형은 굳이 그런 변경이 없는 순정상태임에도 출발하는 과정이 부드럽다. 과거에는 35T의 대기어를 사용했는데 중간에 37T로 바뀌었고, 여기에 기어비까지 바꿔 1단으로 출발해도 울컥거리지 않아 출발 과정에서의 불편함이 없다.

초창기 적은 유지비를 위해 오리지널 사양의 앞뒤 드럼 브레이크 구성을 그대로 가져왔었는데, 제동력에 대한 소비자의 우려가 높아 앞 브레이크를 디스크 방식으로 변경했다. 스타일에선 조금 아쉽겠지만 안전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 감내할 부분. 보통 이런 언더본 방식의 모델은 뒷브레이크를 주로 사용하게 되는 편이었는데, 앞브레이크가 확실하게 속도를 줄여주니 의식하지 않고서는 뒷브레이크를 사용하는 빈도가 크게 낮아진다.

전반적인 승차감은 ‘매우 편안하다’ 정도까진 못미쳐도 일상 정도의 영역에서는 확실히 편하다. 예전 슈퍼커브와 함께 전국일주를 했을 때도 오랜 시간 타다 보니 허리가 아픈 것이지 충격이 고스란히 전달된다거나 해서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쇼크 업소버의 세팅도 승차감 위주로 세팅되어 있고, 시트의 쿠션도 여유있어 노면에서의 자잘한 진동이나 충격은 잘 상쇄시켜준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차량 구조상 탑케이스를 설치하지 않으면 비옷이나 헬멧 등을 계속 들고다녀야 하는 건 슈퍼커브의 약점이지만, 273만 원의 가격이 이런 단점까지도 상쇄시켜 준다. 물론 첫 출시 때와 비교하면 54만 원 올랐지만 그게 벌써 11년 전의 가격이고, 그 사이에 여러 가지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혼다가 이 모델로 돈을 벌 생각이 있는 것인지 궁금해질 지경.

‘휘발유 냄새만 맡아도 굴러간다’는 농담이 있을 만큼 뛰어난 경제성의 슈퍼커브는 비즈니스 시장을 겨냥하고 나왔지만, 이제는 일상에서의 편리한 이동수단으로, 개성있는 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이동수단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여기에 이름 높은 내구성과 크게 오르지 않은 가격, 향상된 장비들까지 생각하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상에서의 이동수단을 추천할 때 슈퍼커브를 상위에 두고 고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저작권자 © 라이드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